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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한국의 역사, 한국사, 코리아히스토리월드, 1555-0001 &amp;gt; 근대사 &amp;gt; 최재형</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choijaehyeong</link>
<language>ko</language>
<description>최재형 (2026-08-31 16:18:44)</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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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두 개의 임시정부에서 주요 직책에 임명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choijaehyeong/6</link>
<description><![CDATA[<p>1914년 권업회가 러시아에 의해 해산되었지만, 독립운동가들은 다시금 독립운동을 위한 조직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 결과 1917년 ‘전로한족회중앙회’라는 조직이 만들어졌어요. 1919년 ‘전로한족회중앙회’는 ‘대한국민의회’로 확대 개편되었지요. ‘대한국민의회’는 우리나라 밖에서 만들어진 임시정부 중 하나에요. 최재형은 ‘대한국민의회’에서 외교부장으로 임명되었어요.</p><p><br /></p><p>한편 1919년 3·1운동 후 중국 상하이에서 이시영, 이동녕, 신규식 등의 독립운동가가 모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어요.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최재형은 초대 재무총장으로 뽑혔지요. 그러나 최재형은 상하이에 가지 않았어요. 자신의 근거지가 있는 연해주에서 활동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p><p><br /></p><p>1920년 일본은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 군대를 보냈어요. 얼마 전 러시아와 한인 유격대가 일본군을 공격하여 큰 피해를 보았다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일본은 연해주 일대에 있는 일본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을 비롯하여 여러 한인 마을을 공격했어요.</p><p>당시 최재형은 우수리스크에 살고 있었는데, 그곳도 일본군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어요. 일본군이 올 것을 예상한 가족들이 그에게 도망가라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어요. 자신이 도망가면 가족들에게 큰 피해가 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p><p><br /></p><p>결국 최재형은 1920년 4월 5일 새벽에 집에서 체포되었어요. 그리고 일본군에게 끌려가 죽임을 당했지요. 이후 그의 가족은 일본에 시신이라도 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일본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돌려주지 않았어요.</p><p><br /></p><p>최재형의 순국 후 그의 가족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의 가족을 비롯하여 연해주 일대의 한인들은 1937년 소련 정부에 의해 중앙아시아에 강제로 옮겨져서 살아야 했어요. 1991년 소련이 해체된 후 지금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의 나라가 들어선 지역이에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8/3bfd430d4cb64df0f1c70d50c3dc0759_1788160709_8534.png" title="3bfd430d4cb64df0f1c70d50c3dc0759_1788160709_8534.png" alt="3bfd430d4cb64df0f1c70d50c3dc0759_1788160709_8534.png" /><br style="clear:both;" />최재형</p><p>독립기념관</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8-31T16:18:44+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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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권업회를 이끌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choijaehyeong/5</link>
<description><![CDATA[<p>최재형은 1911년 연추 도헌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어요. 일제가 퍼뜨린 거짓 소문 때문이지요. 일제는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든 후 자신들에게 큰 피해를 준 최재형을 제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러시아 국적을 가지고 있던 그를 함부로 해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최재형이 대한제국의 첩자처럼 보이도록 거짓 문서를 만들었어요.</p><p>연해주에서 군사 업무를 맡았던 한 러시아 관리는 이 소문을 믿고 최재형을 추방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최재형이 해왔던 일을 잘 알고 있던 또 다른 러시아 관리가 그의 무죄를 강력히 주장하면서 추방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어요. 대신 최재형은 연추 도헌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지요. 최재형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후에도 꿋꿋이 독립운동을 펼쳐 나갔어요.</p><p><br /></p><p>1911년 최재형을 비롯하여 러시아에 모여 있던 주요 독립운동가가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권업회를 조직했어요. 이때 회장은 최재형이, 부회장은 홍범도가 뽑혔어요. 그 후 이상설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합류하면서 권업회의 규모는 점점 커졌어요. 러시아 정부는 권업회를 한인 자치 기관으로 인정했어요.</p><p><br /></p><p>그래서 권업회는 러시아와 일본의 외교 마찰을 줄이기 위해 겉으로는 러시아에 있는 한인들의 경제, 교육 등을 장려하는 활동을 펼쳤지요.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항일 독립운동 단체의 성격을 띠고 있었어요.</p><p><br /></p><p>권업회의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권업신문』의 발행을 들 수 있어요. 순 한글로 발행된 『권업신문』은 신채호, 이상설 등이 주로 글을 썼어요. 신문에는 권업회가 러시아 한인의 자치를 위해 각종 활동을 전개했던 내용이 담겨 있고요.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8월 29일이 되면 우리 민족의 독립 의식을 높이기 위한 기사들이 실리기도 했어요.</p><p>그러나 권업회의 활동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중단되었어요. 러시아가 이 전쟁에서 일본과 동맹국이 되면서 두 나라의 관계가 나빠질 것을 우려하여 권업회를 해산하고 『권업신문』의 발행도 막아버렸기 때문이에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8/3bfd430d4cb64df0f1c70d50c3dc0759_1788160550_0345.png" title="3bfd430d4cb64df0f1c70d50c3dc0759_1788160550_0345.png" alt="3bfd430d4cb64df0f1c70d50c3dc0759_1788160550_0345.png" /><br style="clear:both;" />『권업신문』의 논설 기사</p><p>독립기념관</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8-31T16:16:09+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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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동의회를 만들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choijaehyeong/4</link>
<description><![CDATA[<p>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에 을사늑약을 강요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 갔어요. 이에 국내에서는 항일 의병운동이 일어났지요. 얼마 후에는 연해주 지역에서도 항일 의병 단체가 만들어졌어요. 그 단체는 동의회에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8/3bfd430d4cb64df0f1c70d50c3dc0759_1788160367_5327.png" title="3bfd430d4cb64df0f1c70d50c3dc0759_1788160367_5327.png" alt="3bfd430d4cb64df0f1c70d50c3dc0759_1788160367_5327.png" /><br style="clear:both;" />동의회를 결성하는 이범윤, 최재형, 안중근</p><p><br /></p><p><br /></p><p><br /></p><p>동의회는 1908년 4월 연추에 있는 최재형의 집에서 수많은 사람이 참여한 가운데 만들어졌어요. 동의회 회장은 헤이그에 특사로 다녀왔던 이위종이 맡았고, 최재형은 총재가 되었어요. 동의회 소속 의병들은 1908년 여름 두 차례에 걸쳐 두만강을 넘어 함경도 지방으로 들어가 일본에 맞서 싸우기도 했어요. 이때 의병을 이끈 사람 중에는 안중근 의사도 있었어요.</p><p>그런데 동의회의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어요. 동의회의 무장 투쟁을 러시아 정부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거든요. 게다가 조직 내부에서 의병 항쟁을 비판하는 세력까지 생겼어요. 이런 분위기에서 최재형은 의병 항쟁을 고집할 수 없었어요.</p><p><br /></p><p>최재형은 다양한 방법으로 항일 운동에 나섰어요. 그중 하나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를 도운 것이지요.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으로 떠나기 전 최재형의 집에 머물면서 사격 연습을 했다고 해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체포되었을 때는 그 사실을 『대동공보』라는 신문에서 자세히 보도하였는데, 당시 『대동공보』의 사장이 바로 최재형이었어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8-31T16:13:08+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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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연해주 연추의 책임자로 인정받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choijaehyeong/3</link>
<description><![CDATA[<p>세월이 흘러 러시아 선장은 나이가 들고 더는 무역선을 운항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래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친구 회사에 최재형을 소개했지요. 최재형은 그곳에 조그마한 상점을 열어 몇 년간 성실히 일하여 재산을 모았어요. 그 후 가족이 있는 연추로 돌아가 자신이 번 돈으로 땅을 사서 농사를 지었어요.</p><p><br /></p><p>그 무렵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부터 조선 국경 가까이에 있는 크라스노예 마을까지 군사 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했어요. 도로의 일부 구간에서는 조선인들이 일하고 있었지요. 이때 러시아어를 잘하는 최재형이 통역사로 일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동포들을 도와주었어요.</p><p><br /></p><p>그래서 한인 동포들은 그를 ‘최 표트르’ 대신 ‘최 페치카’라는 애칭으로 불렀어요. 1888년 도로가 성공적으로 건설된 후 최재형은 그 공을 인정받아 러시아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어요.</p><p><br /></p><p>1892년 러시아 정부는 연해주 일대에 정착한 조선인들에게 러시아 국적을 주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들이 사는 몇 개의 마을을 묶어 연추읍으로 만들고 지역 행정을 책임지는 ‘도헌’을 두었어요. 최재형은 1893년 연추 지역 도헌이 되었어요.</p><p>최재형은 연추 지역의 한인 마을마다 학교를 짓는 일에 앞장서서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했어요. 가난한 학생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도 내놓았지요. 한편, 최재형은 1904년 러일 전쟁 때 러시아에 군수 물품을 판매하면서 큰 부자가 될 수 있었어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8-31T16:10:38+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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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로 가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choijaehyeong/2</link>
<description><![CDATA[<p>안중근 의사가 말한 인물은 독립운동가 최재형이에요. 최재형은 1860년 함경북도 경원에서 태어났어요. 그가 태어날 무렵 조선의 상황은 매우 힘들었지요. 오랜 세도정치 끝에 1863년 고종이 왕위에 올랐으나 정치는 여전히 혼란했으며 백성의 삶은 매우 힘겨웠어요.</p><p><br /></p><p>1869년에는 조선에 홍수가 나서 큰 흉년까지 들었어요. 그러자 함경도 지역 사람들이 너도나도 짐을 싸서 고향을 떠나 두만강을 건너갔어요. 이때 9살의 어린 최재형도 아버지 손에 이끌려 큰형 부부와 함께 두만강을 건너게 되었지요. 최재형의 가족들은 청의 훈춘 지역을 지나 러시아의 지신허 마을까지 갔어요. 지신허 마을은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한인 마을이라고 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8/3bfd430d4cb64df0f1c70d50c3dc0759_1788159978_676.png" title="3bfd430d4cb64df0f1c70d50c3dc0759_1788159978_676.png" alt="3bfd430d4cb64df0f1c70d50c3dc0759_1788159978_676.png" /><br style="clear:both;" />러시아 한인 마을 지신허 기념비(연해주 우수리스크시)</p><p>독립기념관</p><p><br /></p><p><br /></p><p><br /></p><p>최재형은 11살이 되던 해에 친구 2명과 함께 집을 뛰쳐나왔어요. 형수가 그를 구박하고 밥도 제대로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요. 함께 가출한 친구들은 얼마 후 집에 돌아갔지만, 최재형은 돌아가지 않았어요.</p><p><br /></p><p>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던 최재형은 포시예트라는 항구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러시아 선장 부부를 만나게 되었어요. 선장 부부는 그를 친아들처럼 아끼고 돌봤어요. 러시아정교회에서 세례를 받게 하고 ‘표트르 세묘노비치’라는 러시아식 이름도 지어주었으며, 러시아어를 가르쳐 주었어요.</p><p>러시아 선장은 세계 곳곳에 물건을 실어나르는 무역선을 운영했어요. 최재형은 그 배의 선원이 되어 6년 동안 곳곳을 다니며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러시아어도 아주 능숙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죠.</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8/3bfd430d4cb64df0f1c70d50c3dc0759_1788160015_5282.png" title="3bfd430d4cb64df0f1c70d50c3dc0759_1788160015_5282.png" alt="3bfd430d4cb64df0f1c70d50c3dc0759_1788160015_5282.png" /><br style="clear:both;" />선장의 부인에게 러시아어를 배우는 최재형</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8-31T16:07:18+09:00</dc:date>
</item>


<item>
<title>최재형, 연해주의 독립운동을 이끌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choijaehyeong/1</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8/3bfd430d4cb64df0f1c70d50c3dc0759_1788158729_2076.png" title="3bfd430d4cb64df0f1c70d50c3dc0759_1788158729_2076.png" alt="3bfd430d4cb64df0f1c70d50c3dc0759_1788158729_2076.png" /><br style="clear:both;" />최재형 선생 기념관(연해주 우수리스크시)</p><p>독립기념관</p><p><br /></p><p><br /></p><p><br /></p><p>“연해주 연추에 존경받는 조선 사람이 있다면서요?”</p><p><br /></p><p>“맞아요. 그곳 조선인의 집마다 이분의 사진이 걸려있었어요.”</p><p><br /></p><p>여러분은 안중근 의사를 잘 알지요? 위의 말은 안중근 의사가 1907년 연해주 연추에 가서 직접 본 것을 이야기한 거예요. 안중근 의사가 이야기한 분은 누구일까요? 그는 어떤 일을 했을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8-31T15:45:52+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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