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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한국의 역사, 한국사, 코리아히스토리월드, 1555-0001 &amp;gt; 근대사 &amp;gt; 대한제국</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daehanjeguk</link>
<language>ko</language>
<description>대한제국 (2026-09-01 16:09:55)</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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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역사 속 작은 이야기 : 대한제국과 독립협회</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daehanjeguk/6</link>
<description><![CDATA[<p>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해 나라의 주권이 흔들리고 있을 때,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이 중심이 되어 독립협회를 만들었어요. 독립협회는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널리 알리고자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헐린 영은문 앞에 독립문을 세우고자 했어요. 고종도 독립협회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였어요.</p><p><br /></p><p>경운궁(덕수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강력한 왕권을 토대로 정부와 군대를 이끌어 대한제국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고자 했어요. 고종은 독립협회가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독립협회의 뜻은 달랐어요. 국민이 선출한 대표로 의회를 만들어 나라를 이끌고자 했어요.</p><p><br /></p><p>고종은 독립협회와 국민의 지지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독립협회의 건의에 따라 의회의 중간쯤 되는 정부 기구를 만드는 것에 동의했어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국민 대표가 참여하는 의회가 만들어질 단계에 이르렀어요.</p><p><br /></p><p>조선 왕조가 이미 쇠퇴했으므로, 많은 사람이 함께 독립협회 회장 윤치호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면…</p><p>의회 설립 하루 전날 밤,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글이 광화문 여기저기에 붙었어요. 친러파 대신들이 독립협회와 개혁파 대신들을 모함하기 위해 붙인 벽보였어요. 친러파 대신들은 개혁파가 황제 중심의 전제 군주제를 의회 중심의 입헌 군주제로 개혁하려는 것이 아니라, 황제를 없애고 대통령 중심의 공화제로 바꾸려 한다고 고종에게 모함을 했어요.</p><p><br /></p><p>황제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거짓 보고에 놀란 고종은 독립협회 간부들을 체포하고, 다시 친러파 대신을 중심으로 정부를 세웠어요. 그리고 벽보가 붙은 지 두 달이 되지 않아 군대를 동원해 독립협회를 강제로 해산시켰어요. 독립협회가 사라지면서 국민의 대표가 정치에 참여하는 의회 설립의 꿈도 사라졌어요.</p><p><br /></p><p>독립협회가 없어지면서 고종은 소수의 친러파 대신들과 대한제국을 이끌었어요. 만약 왕과 국민이 나라를 함께 다스리는 입헌 군주제를 받아들였더라면 대한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많은 국민의 지지 속에 대한제국이 부강해지면서 일본에게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까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46582_3287.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46582_3287.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46582_3287.png" /><br style="clear:both;" />서재필 동상과 독립문(서울 서대문구 서대문독립공원)</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16:09:55+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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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대한제국, 부강한 나라를 꿈꾸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daehanjeguk/5</link>
<description><![CDATA[<p>대한제국을 수립한 고종 황제는 외세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주 독립국가를 만들고자 했어요. 그리고 이에 걸맞은 부강한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여러 가지 개혁을 실시하였어요.</p><p><br /></p><p>토지 제도를 정비하고 국가 재정을 늘리기 위해 토지를 새로 측량하였어요. 상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회사와 공장을 설립하였고, 새로운 인재와 기술자를 키우기 위해 소학교, 실업 학교, 의학교 등 여러 학교를 만들었어요. 일본을 비롯한 외세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궁궐과 서울을 지키는 군대의 수를 늘려 훈련시켰고, 지방에도 군대를 보냈어요. 그리고 중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에 외교관을 파견하고, 제네바 협약을 비롯해 여러 국제 조약에도 가입하였어요.</p><p><br /></p><p>대한제국의 이권 침탈에 혈안이 되어있던 일본과 서양의 여러 나라는 겉으로는 고종 황제를 위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경제적 이권을 계속 챙겨 갔어요. 그러다 결국 한반도를 차지하고 만주 지역으로 나아가려는 일본과 만주지역을 차지하고 대한제국으로 세력을 넓히려는 러시아가 전쟁을 벌였어요(러일 전쟁, 1904년).</p><p><br /></p><p>고종 황제는 대한제국이 중립국임을 세계에 알리고, 외교적 방법으로 독립을 유지하고자 했어요. 하지만 1905년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강요로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우리의 외교권을 일본에게 빼앗기면서 자주 독립국이 되기 위한 대한제국의 개혁은 끝내 좌절되고 말았어요.</p><div><br /></div>]]></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16:07:09+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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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대한제국의 수립을 선포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daehanjeguk/4</link>
<description><![CDATA[<p>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것은 일본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는 뜻에서 벌인 일이었어요. 하지만 국왕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피하자, 나랏일은 엉망이 되었어요. 고종은 서양의 여러 나라로부터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는 대신 금광 채굴권, 철도 부설권 등 경제적 이익이 되는 여러 권리들을 넘겨주었어요. 이전에도 나라의 이권을 외국에 넘겨주는 경우가 있었으나 러시아 공사관에 고종이 머물던 시기에 더욱 심했지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46247_6998.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46247_6998.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46247_6998.png" /><br style="clear:both;" />조선 말기 열강의 이권 침탈</p><p><br /></p><p><br /></p><p><br /></p><p>러시아에 기대어 일본의 침략을 잠시나마 막았지만 서양 여러 나라의 경제적 이권 침탈로 나라는 더 큰 혼란에 빠졌어요. 정치적 혼란을 막고, 나라의 자주권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였어요. 이때 독립협회가 중심이 되어 국왕이 빨리 러시아 공사관에서 나와 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결국 고종은 1년 만에 러시아 공사관에서 나와 경운궁(덕수궁)으로 돌아왔어요.</p><p><br /></p><p>경운궁에 돌아온 고종은 조선을 자주 독립국으로 다시 세우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어요. 고종은 중국 사신을 접대하던 옛 남별궁 터에 환구단을 쌓고 황제 즉위식을 올림으로써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널리 알렸어요. 나라 이름도 ‘대한제국’으로 바꿔 새로운 나라가 수립되었음을 세계를 향해 선포하였어요(1897).</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46317_5117.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46317_5117.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46317_5117.png" /><br style="clear:both;" />경운궁(덕수궁)과 환구단 모형(서울역사박물관)</p><p><br /></p><p><br /></p><p><br /></p><p>태극 국기를 앞세우고 황룡포에 면류관을 쓴 황제와 그를 따르는 황태자, 관료, 군인들의 행렬을 보면서 집집마다 태극기를 높이 걸고 색등불을 환하게 달아 놓은 거리의 표정은 오랜만에 새 시대의 시작을 경축하는 밝은 분위기였다.</p><p><br /></p><p>-『독립신문』, 1897년 10월 14일자, 논설</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16:05:48+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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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러시아를 이용해 일본의 침략을 막아라</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daehanjeguk/3</link>
<description><![CDATA[<p>경복궁에 감금되었던 고종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어요. 고종은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궁녀들이 이용하는 가마를 타고 몰래 경복궁에서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하였어요. 러시아 공사관에 도착한 고종은 바로 친일 관리들을 파면하였어요. 파면된 친일 관리 중 일부는 백성들에게 살해되고, 또 일부는 일본으로 도망을 갔어요. 이로써 친일 정부는 완전히 붕괴되었어요(아관파천, 1896).</p><p><br /></p><p>고종은 친러 관리들을 중심으로 정부를 다시 세웠어요. 일본인 교관을 파면하고 대신 러시아인 교관으로 군대를 훈련하게 했어요. 러시아의 힘을 이용하여 일본을 견제하고, 러일 사이 힘의 균형 속에서 고종은 조금씩 조선을 개혁할 준비를 하였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45936_8508.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45936_8508.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45936_8508.png" /><br style="clear:both;" />경운궁(덕수궁)과 여러 나라의 공사관 모형(서울역사박물관)</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15:59:13+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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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점점 포악해지는 일본의 조선 침탈</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daehanjeguk/2</link>
<description><![CDATA[<p>일본은 조선을 대륙침략의 발판으로 삼고자 했고, 청은 조선을 자신의 제국을 지키는 변방의 방어선으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동학농민군을 진압해달라는 조선 정부의 요청을 핑계로 청과 일본은 조선에 앞다퉈 군대를 보냈어요.</p><p><br /></p><p>일본은 군대를 동원하여 경복궁을 점령하고 친일 정권을 세웠어요. 그리고 청군을 공격하여 한반도의 땅과 바다에서 전쟁을 벌였어요. 청일전쟁이 시작된 것이지요. 평양에서 크게 이긴 일본군은 압록강을 건너 청의 요동반도와 산둥반도의 여러 요새를 공격하여 점령하였어요. 여러 전투에서 승리한 일본은 결국 청의 항복을 받아냈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45782_5827.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45782_5827.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45782_5827.png" /><br style="clear:both;" />청일전쟁 당시 제물포에 상륙하고 있는 일본군</p><p>국립중앙박물관</p><p><br /></p><p><br /></p><p><br /></p><p>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더 이상 청의 눈치를 보지 않고 거리낌없이 조선을 침략하기 시작했어요. 친일 정부를 앞세워 조선 정치에 노골적으로 간섭하였어요. 이러한 틈에 러시아가 전면에 등장하였어요. 러시아는 프랑스, 독일과 함께 동북아시아에서 힘이 커진 일본을 견제하기 시작했어요.</p><p><br /></p><p>이들 세 나라의 견제 속에서 일본이 주춤하는 틈을 이용해 고종과 왕후는 친일 관리들을 몰아내고 친러 관리들을 정부에 등용하였어요. 러시아의 힘을 이용해 일본의 침략을 막고자 했던 것이죠.</p><p>러시아의 방해로 조선 침략에 힘이 빠진 일본은 이를 되돌리기 위해 경복궁으로 쳐들어가 왕후를 살해하는 참혹한 만행을 저질렀어요(을미사변, 1895). 뿐만 아니라 고종을 경복궁에 감금하고 다시 친일 정부를 세웠어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15:56:53+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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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나라를 개혁해 자주 독립국을 세우자, 대한제국</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daehanjeguk/1</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c323c28a4b4a5eb44a2be744a290e533_1788242474_9498.png" title="c323c28a4b4a5eb44a2be744a290e533_1788242474_9498.png" alt="c323c28a4b4a5eb44a2be744a290e533_1788242474_9498.png" /><br style="clear:both;" />환구단에 남아있는 황궁우(서울 중구 소공동)</p><p><br /></p><p><br /></p><p><br /></p><p>“나랏일을 새로 시작하려 환구단에서 첫 제사를 지내려 하는데, 나라 이름을 새로 정해야 하지 않겠소?”</p><p><br /></p><p>“지금의 조선은 오래되어 하늘의 뜻이 새로워졌으니 나라 이름을 바꾸는 것이 당연하옵니다.”</p><p><br /></p><p>“우리나라는 삼한의 땅을 통합하여 시작한 나라이니 ‘대한(大韓)’으로 이름을 정해도 안 될 것이 없다. 나라 이름을 정했으니 환구단에서 행할 제사에서는 모두 ‘대한’으로 쓰도록 하라.”</p><p>청일전쟁(1894)에 승리한 일본은 조선의 정치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어요.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자주독립을 외치는 백성들의 목소리도 커져 갔어요. 고종은 “옛 제도를 근본으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다”고 뜻을 밝히고, 새로운 나라 ‘대한제국’ 수립을 세계를 향해 선포하였어요. 새로운 나라 ‘대한제국’은 어떤 나라였을까요? 자주독립에 대한 많은 백성들의 바람은 이루어졌을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15:01:54+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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