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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한국의 역사, 한국사, 코리아히스토리월드, 1555-0001 &amp;gt; 근대사 &amp;gt; 을사늑약과 국권상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eulsaneukyak</link>
<language>ko</language>
<description>을사늑약과 국권상실 (2026-09-01 23:18:50)</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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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역사 속 작은 이야기 :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eulsaneukyak/6</link>
<description><![CDATA[<p>일본은 전쟁으로 대한제국 침탈에 방해가 되는 청과 러시아를 이기고, 외교로 대한제국을 국제 사회로부터 고립시켰어요. 그리고 무력을 동원하여 대한제국과 ‘한일 의정서’에서 시작해 ‘을사늑약’과 ‘한일병합조약’까지 여러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어요.</p><p><br /></p><p>이러한 조약을 이용하여 대한제국의 주권을 하나하나 빼앗아 갔어요. 이를 주도한 인물이 바로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였어요. 이토 히로부미는 경쟁하던 러시아와 대한제국과 만주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하얼빈을 향했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2311_8865.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2311_8865.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2311_8865.png" /><br style="clear:both;"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안중근(안중근의사기념관)</p><p><br /></p><p><br /></p><p><br /></p><p>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특별 열차가 하얼빈에 도착하였어요.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 재무장관과 열차 회담을 마치고 기차에서 내렸어요. 이토 히로부미가 환영 군중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안중근은 침착하게 걸어가 총으로 저격하였어요. 대한제국은 물론 만주까지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고자 했던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의 손에 의해 최후를 맞은 것이에요.</p><p><br /></p><p>총을 쏜 직후 안중근은 러시아 헌병들에게 체포되었어요. 안중근은 청의 땅을 빌려 러시아가 관리하던 하얼빈에서 벌인 사건이니 러시아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어요. 하지만 안중근을 체포한 러시아 헌병은 안중근을 조사한 후 바로 일본 대사관에 넘겼어요.</p><p>일본은 안중근을 하얼빈에서 중국 뤼순에 있는 감옥으로 보냈어요. 중국 뤼순에 있는 일본 법정에서 자신들 마음대로 안중근에 대한 재판을 하기 위해서였어요.</p><p><br /></p><p>대한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친선을 방해하고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힌 장본인은 바로 이토 히로부미이므로, 나는 한국의 의병 중장의 자격으로서 그를 제거한 것이다.</p><p><br /></p><p>-〈안중근 공판시말서 제5회〉</p><p><br /></p><p>안중근은 법정에서 대한제국 의병부대의 참모중장이므로 만국공법에 따라 전쟁 포로로 대해 줄 것을 요구했어요. 그리고 부당하게 대한제국을 침략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를 당당히 밝혔어요.</p><p><br /></p><p>하지만 일본이 주도하는 불공정한 법정에서 안중근의 주장은 모두 묵살되었고 결국 뤼순 감옥에서 사형을 당했어요. 순국할 당시 안중근의 나이는 32세였고, 대한제국이 멸망한 해였어요.</p><p><br /></p><p>자신의 국가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국제 관계 속에서 이 시기 힘없는 수많은 나라가 무력을 앞세운 강대국의 식민지가 되었어요. 일본은 대한제국을 국제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고립시키고, 무력을 앞세운 불법적인 조약으로 국권을 차례차례 빼앗아 갔어요.</p><p>일본의 무력 침략에 대응할 힘이 부족했던 대한제국은 제대로 된 협상을 할 수 없었고, 신흥 강대국이었던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어요.</p><p><br /></p><p>지금도 과학 기술과 경제력을 앞세워 외교 전쟁을 벌이는 모습은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치열하게 경쟁하는 국제 사회 속에서 우리나라는 옛 역사를 되새기며 나라의 독립을 잘 지키고 있나요? 자주 독립을 지키고 주권 국가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23:18:50+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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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의병, 일본으로부터 한양을 되찾자</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eulsaneukyak/5</link>
<description><![CDATA[<p>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전국에서 항일의병이 일어났어요. 한일 신협약으로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자 많은 대한제국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하면서 의병 부대는 보다 강한 전투력을 갖게 되었어요.</p><p><br /></p><p>원주에서 활동하던 이인영 의병장은 전국의 의병들에게 격문을 보내 함께 한양으로 진격하기를 호소하였어요. 이인영의 격문에 1만 명의 의병이 경기도 양주에 모였어요. 연합의병부대 ‘13도 창의군’은 부대별로 나뉘어 한양으로 진격하여 같은 날 동대문 밖에 집결하기로 했어요.</p><p>13도 창의군 선발대 300명이 동대문 밖 30리(약12km) 지점까지 접근하였어요. 이때 일본군은 동대문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의병 부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p><p><br /></p><p>의병 선발대가 동대문 방향으로 접근하자 일본군의 공격이 시작되었어요. 선발대는 일본군에 맞서 싸웠지만 후속 부대와의 연락이 끊기고 고립되자 결국 후퇴하고 말았어요. 일본군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서울진공작전은 실패하고 말았어요.</p><p><br /></p><p>서울진공작전은 실패했으나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여전히 많은 의병들이 항일 무장 투쟁을 이어갔어요. 일본은 의병이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드는 과정의 마지막 방해물이라 생각했어요. 일본은 한반도 남쪽 지역에서 대규모 군사작전을 펼쳤어요.</p><p><br /></p><p>특히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된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무인도까지 샅샅이 뒤지는 초토화 작전을 펼쳤어요. 이 작전으로 수많은 의병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어요. 살아남은 의병들은 국내에서 더 이상 활동하기 어려워지자 연해주나 간도로 이동하여 무장투쟁을 이어갔어요.</p><p><br /></p><p>의병 중심의 무장 투쟁도 정리한 일본은 대한제국을 강제로 합치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이때 두 가지 큰 사건이 일어나 일본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어요. 하나는 대한제국 침략에 앞장선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 협상을 위해 하얼빈에 왔을 때 의병장 안중근이 저격해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에요.</p><p>뒤이어 대표적인 친일파 대신 이완용을 이재명이 습격하여 중상을 입히는 사건도 발생했지요. 국권 침탈에 앞장섰던 두 인물을 처단해 망해가는 나라를 구하려는 애국지사의 항전이었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2118_5198.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2118_5198.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2118_5198.png" /><br style="clear:both;" />1915년 경복궁 근정전에 걸린 일장기</p><p>京城協儧會報告(1916)</p><p><br /></p><p><br /></p><p><br /></p><p>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의 모든 일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하고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긴다.</p><p><br /></p><p>-〈한일병합조약〉 제1조(1910)</p><p>부상에서 회복한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 통감 데라우치의 이름으로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었어요. 일본의 군사적 점령하에 무력으로 강요된 이 마지막 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주권을 상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요(경술 국치, 1910).</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23:15:50+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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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헤이그 특사, 고종의 마지막 승부수</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eulsaneukyak/4</link>
<description><![CDATA[<p>고종은 을사늑약 조약문에 서명과 옥쇄 날인을 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어요. 그리고 국제사회를 향해 조약이 무효라고 주장했어요. 고종은 헐버트를 통해 을사늑약이 무효라는 긴급 전문을 미국 워싱턴으로 보냈어요.</p><p><br /></p><p>주한미국공사였던 알렌이 귀국할 때 1만 달러를 주며 미국정부가 조약과 관련된 조사를 벌이도록 설득해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하지만 일본과 비밀 조약을 맺은 미국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이전에 ‘조미수호통상조약’까지 맺은 미국의 냉담한 반응에 고종은 크게 실망했어요.</p><p><br /></p><p>이때 러시아의 황제가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의 초청장을 보내왔어요. 만국평화회의는 힘 있는 세계 여러 나라가 모여 군비를 줄이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는 국제회의였어요. 초청장을 받은 고종은 이 회의를 이용해 세계 여러 나라에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알리고 대한제국의 독립을 호소하고자 비밀 특사를 파견하였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1913_6807.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1913_6807.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1913_6807.png" /><br style="clear:both;" />헤이그 특사(왼쪽부터 이준, 이상설, 이위종 열사)</p><p>국사편찬위원회</p><p><br /></p><p><br /></p><p><br /></p><p>일본의 감시를 피해 헤이그에 도착한 특사들은 호텔 숙소에 태극기를 게양한 뒤 각국 대표들과 위원회를 찾아다니며 활동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일본의 방해와 여러 나라의 냉담한 반응에 큰 성과를 내지 못했어요.</p><p><br /></p><p>대한제국에 우호적이던 러시아도 일본과 비밀 협상을 진행하면서 특사들에게 비협조적으로 나왔어요. 자신의 국가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상황에서 만국평화회의가 정의로운 원칙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웠어요.</p><p>헤이그 특사 사건은 이토 히로부미를 크게 자극하였어요. 그는 이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협박하여 강제로 퇴위시키고 대신 순종을 황제 자리에 앉혔어요. 그리고 ‘한일 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였어요. 이 조약으로 모든 나랏일은 통감의 지도를 받아 할 수 있었고, 대한제국 정부의 고위 관리로 일본인을 임명하도록 하였어요.</p><p><br /></p><p>고문을 두어 협의하던 방식에서 일본인이 직접 나랏일을 하도록 바꾼 것이었어요. 이후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고, 경찰과 사법권을 모두 일본이 장악하면서 대한제국은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게 되었어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23:12:13+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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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협상과 합법을 가장한 조약에 외교권을 빼앗기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eulsaneukyak/3</link>
<description><![CDATA[<p>러·일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은 대한제국에서 러시아 세력을 몰아내고 국가 통치의 근본이 되는 재정과 외교권을 장악하기 위해 ‘제1차 한일 협약’을 체결하였어요. 겉으로는 대한제국과 일본이 서로 의논하고 협력하여 합법적으로 체결한 조약처럼 꾸몄으나 고종과 대부분의 대신들을 빼고 일부 친일 대신을 앞세워 체결한 불법적인 강제 조약이었어요.</p><p>제1차 한일 협약으로 대한제국은 일본인 재정고문과 미국인 외교고문의 협의 하에서만 나랏일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일본은 재정과 외교 영역에서 시작해 국방, 법, 교육, 경제 영역에 고문을 파견하여 대한제국 정치의 핵심 영역을 점점 장악해 나갔어요.</p><p><br /></p><p>고종은 러시아가 승리해 일본과 맺은 불법적인 조약들을 모두 무효로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은 미국과 몰래 조약을 체결하여 필리핀은 미국이, 대한제국은 일본이 차지하는 것을 서로 인정하기로 하였어요. 그리고 영국과 다시 동맹을 맺고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를 외교적으로 보장받았어요.</p><p><br /></p><p>전쟁에서 지고 있던 러시아도 미국의 포츠머스에서 전쟁을 끝내면서 일본이 대한제국을 지배하는 것을 인정하는 조약을 체결하였어요. 일본은 외교를 통해 대한제국을 국제 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시켰어요.</p><p><br /></p><p>러·일 전쟁은 결국 일본의 승리로 끝났어요. 여러 나라로부터 대한제국의 지배를 인정받은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를 보내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바로 실행하였어요.</p><p><br /></p><p>이토 히로부미는 경운궁(덕수궁) 중명전을 무장한 군인들로 에워싼 채 어전회의를 열게 하였어요. 고종은 조약을 반대하며 어전회의에 참여하지 않았어요. 이토 히로부미는 회의에 참석한 8명의 대한제국 대신을 상대로 협박과 회유를 하며 조약 체결을 강요하였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1739_3808.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1739_3808.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1739_3808.png" /><br style="clear:both;" />중명전에서 을사늑약을 체결하는 모습</p><p>국가유산청</p><p><br /></p><p><br /></p><p><br /></p><p>학부대신 이완용이 처음으로 찬성의 뜻을 밝혔어요. 그러자 일부 대신들이 이를 따르려 했어요. 참정대신 한규설이 이를 고종에게 보고하려 회의장을 뛰쳐나가다 일본군에 체포되어 감금되었어요. 3시간이 지나도 한규설이 돌아오지 않자 두려움에 떨던 대신들은 조약에 찬성하기 시작했어요.</p><p><br /></p><p>을사오적의 찬성으로 과반수 동의를 얻은 이토 히로부미는 ‘제2차 한일 협약(을사늑약)’을 맺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였어요. 이 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를 일본이 대신하게 되면서 외국에 있던 대한제국의 공사관은 모두 폐쇄되었어요. 한양에 있던 서양의 여러 공사관도 모두 철수하였어요. 외교권을 빼앗긴 대한제국은 더 이상 다른 나라의 외교적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었어요.</p><p>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이듬해에 일본은 한양에 통감부를 설치하였어요. 이토 히로부미는 초대 통감이 되어 대한제국의 내정에 깊숙이 간섭하며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만드는 작업을 빠르고 치밀하게 진행하였어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23:09:20+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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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일본,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eulsaneukyak/2</link>
<description><![CDATA[<p>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청의 랴오둥 반도를 차지했어요. 일본의 한반도와 만주에 대한 지배력이 커지자 러시아, 프랑스, 독일이 나서 랴오둥 반도를 청에 돌려줄 것을 일본에 요구하였어요. 세 나라의 압력에 굴복한 일본은 전쟁 배상금만 받고 랴오둥 반도를 청에 반환했어요. 일본의 침략을 걱정한 청은 랴오둥 반도를 러시아에 빌려주어 지배하게 했어요.</p><p><br /></p><p>러시아의 힘이 일본에 앞서는 것을 본 고종은 러시아를 이용해 일본을 견제하고자 했어요. 그리고 러시아에 의지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자주 독립국을 만들기 위한 개혁을 시도하였어요.</p><p><br /></p><p>청과 전쟁을 벌이며 한반도와 만주를 차지하려던 일본에게 새롭게 등장한 러시아는 눈엣가시와 같은 대상이었어요.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광대한 영토를 가진 러시아 제국과 당장 맞서 싸울 수 없었던 일본은 때를 기다렸어요.</p><p>일본은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경계하던 영국과 손을 잡기로 하고 동맹을 맺었어요. 영국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준비하는 일본에게 돈과 최신 전함을 제공했어요. 미국 또한 러시아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의 입장을 지지했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1408_8619.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1408_8619.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1408_8619.png" /><br style="clear:both;" />러시아 제국의 영토 확장과 러·일 전쟁</p><p><br /></p><p><br /></p><p><br /></p><p>일본은 전쟁을 준비하면서 러시아와 협상을 벌였어요. 대한제국은 일본이, 만주는 러시아가 차지하자는 내용이었어요. 하지만 러시아의 반대로 협상이 실패하자 일본은 인천 앞바다에 정박 중이던 러시아 군함 2척을 기습 공격했어요. 러·일 전쟁이 시작된 것이에요. 그리고 군대를 제물포에 상륙시켜 인천과 한양을 점령하였어요.</p><p>대한제국의 황실 안녕과 영토 보전에 위험이 있을 경우 일본 정부는 속히 필요한 조치를 행한다. 이때 대한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충분한 편의 및 군사 전략상 필요한 지점을 제공한다.</p><p><br /></p><p>- 〈한일의정서〉 제4조(1904년)</p><p><br /></p><p>경복궁을 포위한 일본군은 ‘한일의정서’란 이름의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어요. 이 조약으로 일본은 대한제국 어느 곳에나 군대를 주둔시키고 자유롭게 군사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일본은 대한제국의 통신 기관을 빼앗고, 군수 물자와 군대를 만주로 쉽게 수송하기 위해 철도를 건설할 권리를 빼앗아 경의선을 만들었어요. 이 조약은 일본의 대한제국과 대륙 침략의 발판이 되었어요.</p><p><br /></p><p>기습 공격으로 랴오둥 반도의 뤼순항을 포위한 일본군은 러시아와 치열한 전투를 벌여 바다와 육지 모두에서 승리하였어요. 그리고 만주 지역으로 나아가 러시아군과 밀고 밀리는 전투를 계속 벌였어요.</p><p><br /></p><p>일본군의 공격에 당황한 러시아는 최강의 발틱 함대를 보내 전세를 역전시키고자 했어요. 발트해에서 출발하여 7개월 동안 항해한 러시아 함대가 쓰시마 해협 앞에 나타났어요. 남해 진해에서 출발한 일본 함대는 3배나 우세한 러시아 함대를 격파하고 전쟁에서 승리하였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1556_5599.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1556_5599.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1556_5599.png" /><br style="clear:both;" />일본의 세력 확장과 국권 침탈 과정</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23:06:17+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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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국권 상실의 치욕스런 역사, 을사늑약과 경술국치</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eulsaneukyak/1</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1175_1651.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1175_1651.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1175_1651.png" /><br style="clear:both;" />덕수궁 중명전</p><p>국가유산청</p><p><br /></p><p><br /></p><p><br /></p><p>“이는 나라를 팔아먹는 협약이오. 나는 찬성하지 않을 것이오.”</p><p><br /></p><p>“나도 반대하오. 이 조약에 찬성하면 역적이 되는 것이오.”</p><p><br /></p><p>“일본은 조선의 국권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는 데 목적이 있소. 오늘 기필코 서명해야 할 것이오.”</p><p>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 대신들을 총칼로 위협하며 조약 체결을 강요했어요. 고종과 여러 대신들은 조약 체결을 반대했어요. 하지만 이토 히로부미는 을사오적이라 불리는 신하들을 앞세워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어요. 이 조약으로 대한제국은 무엇을 빼앗겼을까요? 조약으로 인해 대한제국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22:59:52+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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