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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한국의 역사, 한국사, 코리아히스토리월드, 1555-0001 &amp;gt; 근대사 &amp;gt; 일본의 식민지 조선 통치</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apansettlement</link>
<language>ko</language>
<description>일본의 식민지 조선 통치 (2026-09-01 23:42:36)</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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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역사 속 작은 이야기 : 철거된 조선 총독부 청사</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apansettlement/9</link>
<description><![CDATA[<p>일제는 우리 민족을 식민 통치하면서 최고 권력 기관으로 조선 총독부를 설치했어요. 식민지 초기 조선 총독부 건물은 남산에 있었어요. 통감부로 사용하던 건물을 그대로 사용했거든요.</p><p><br /></p><p>그러다가 1916년부터 경복궁에 있는 흥례문을 허물고 새롭게 건물을 짓기 시작하여 1926년에 완성했어요. 그 후 조선 총독부 건물은 광복이 될 때까지 식민 통치의 상징이 되었죠.</p><p><br /></p><p>1945년 광복을 맞이한 후에 1995년까지 이 건물은 그대로 남아서 중앙청 및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었어요. 그러다가 김영삼 정부 시기인 1995년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하여 철거되기 시작하여 약 1년 만에 대부분 철거가 완성되었어요. 그 후 조선 총독부 건물의 중앙 돔 부분을 포함한 일부 건축 부재가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져 현재까지 전시 중이에요.</p><p>그런데 조선 총독부 건물의 철거를 반대한 사람들도 있었어요. 이 건축물이 비록 우리 역사의 어두운 시대를 보여주는 것이라도 함부로 없애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들은 조선 총독부 건물을 그대로 두거나, 다른 곳으로 그대로 옮겨 놓자는 주장을 펼쳤어요. 하지만 김영삼 정부는 ‘역사바로세우기’ 정책 중 하나로 조선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겠다고 결정했답니다.</p><p><br /></p><p>조선 총독부 건물 철거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3734_3186.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3734_3186.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3734_3186.png" /><br style="clear:both;" />경복궁 앞의 구 조선총독부 건물의 잔해(1996년)</p><p>국가기록원</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23:42:36+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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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일제, 수많은 조선인을 침략 전쟁에 동원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apansettlement/8</link>
<description><![CDATA[<p>일제는 침략 전쟁을 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금속과 식량 등 전쟁에 물자와 사람들을 동원했어요. 먼저 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금속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집에서 사용하는 놋그릇은 물론이고 학교에서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마저도 거두어 갔어요.</p><p><br /></p><p>전쟁에 참여할 군인이 부족해지자, 조선의 젊은이들과 학생들을 징병이라는 이름으로 전쟁터로 끌고 갔어요. 전쟁에 나간 사람 중에는 일본이 전쟁에서 지고 항복하자 연합군의 포로가 되어 죽임을 당한 사람마저 생겼어요.</p><p>강제로 끌려가 일을 했던 사람들도 있어요. 이들은 주로 공장이나 탄광, 건설 현장 등으로 끌려가 일을 했어요.</p><p><br /></p><p>한편 남성들만 동원해서는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자, 수많은 여성도 ‘여성 근로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일본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 끌려가 일을 했어요. 또한 끌려간 여성 중에는 일본군 ‘위안부’가 되어 고통받은 사람들도 있었어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23:40:25+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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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일제, 침략 전쟁에 나서며 민족 말살 정책을 펴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apansettlement/7</link>
<description><![CDATA[<p>1920년대 후반 일본의 경제 상황은 점점 나빠졌어요. 일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침략 전쟁을 선택했어요. 1931년 만주에 쳐들어가 만주국을 세웠어요. 1937년에는 중일 전쟁을, 1941년에는 미국의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어요.</p><p><br /></p><p>침략 전쟁이 점차 확대됨에 따라 일제는 조선인을 전쟁에 적극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민족 말살 통치를 했어요. 민족 말살 통치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특징을 없애고 일본 사람처럼 바꾸려는 정책을 말해요.</p><p>우선 학생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황국 신민 서사’를 외우게 했어요. ‘황국 신민 서사’는 일본 천황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글이에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3467_592.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3467_592.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3467_592.png" /><br style="clear:both;" />황국 신민 서사를 외우는 학생들</p><p><br /></p><p><br /></p><p><br /></p><p>조선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하기도 했어요. 이에 따르지 않는다면 여러 가지 불이익을 주었어요. 이 외에도 일본 천황이 사는 궁을 향해 절하게 했으며, 전국 각지에 일본 신도의 신을 섬기는 곳인 신사를 짓고 절을 하게 하는 참배를 강요했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3496_8564.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3496_8564.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3496_8564.png" /><br style="clear:both;" />조선신궁 참배 모습</p><p>서울역사박물관</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23:38:36+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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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쌀 생산을 늘려서 일본으로 가져가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apansettlement/6</link>
<description><![CDATA[<p>문화 통치를 시행할 무렵 일본에서는 공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어요. 그러자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게 되었죠. 농촌의 노동력이 줄어들면서 쌀 생산량이 줄어들었어요. 공업화가 이루어지기 전 일본에서는 쌀이 부족한 경우가 종종 발생했어요.</p><p><br /></p><p>그런데 이 무렵 일본의 쌀 부족 현상은 매우 심각했어요. 사람들의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고, 일본 내각이 무너지는 일까지 생겼거든요. 일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민지인 조선을 이용했어요. 즉, 조선에서 쌀 생산량을 늘려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계획했어요.</p><p><br /></p><p>이를 위해 밭을 논으로 만들고, 물길을 내며, 벼의 품종도 개량했어요. 그 결과 조선의 쌀 생산량은 실제 늘어났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늘어난 쌀 생산량보다 더 많은 양이 수출되었기 때문에 정작 조선인들이 먹을 수 있는 쌀의 양은 줄어들게 되었던 거죠. 쌀이 부족해지자, 우리 민족은 만주에서 값싼 잡곡을 수입해서 먹게 되었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3317_4583.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3317_4583.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3317_4583.png" /><br style="clear:both;" />군산 미곡 수출입 장면</p><p>서울역사박물관</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23:35:28+09:00</dc:date>
</item>


<item>
<title>문화 통치를 내세워 우리 민족을 분열시키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apansettlement/5</link>
<description><![CDATA[<p>1919년 일본 정부는 조선인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겠다며 ‘문화 통치’를 실시했어요. 주요 내용은 문관 출신의 조선 총독을 보낼 수 있으며,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바꾸겠다는 거예요.</p><p><br /></p><p>또 조선인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제를 시행하며, 그동안 제한되었던 언론과 출판의 자유도 보장한다고 했어요. 그 결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의 신문이 창간되었어요.</p><p><br /></p><p>일제가 이렇게 통치 방식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 때문이에요. 전국 각지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우리 민족의 저항을 지켜본 일제는 더는 강압적인 방식으로 조선을 통치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거예요.</p><p><br /></p><p>그렇다면 문화 통치는 정말로 조선인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 민족을 속이고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한 것에 불과해요. 일제는 광복될 때까지 문관 출신 총독을 단 한 차례도 임명하지 않아 스스로 발표한 약속조차 지키지 않았어요.</p><p>헌병 경찰을 보통 경찰로 바꾸기는 했지만, 경찰관이나 경찰서의 수는 이전보다 더 늘어나서 조선인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했어요. 그리고 신문을 발행할 때 기사를 사전에 점검하여 자신들의 뜻과 맞지 않는 기사는 삭제하기 일쑤였어요. 더 나아가 신문 발행을 일정 기간 중단시키기도 했어요.</p><p><br /></p><p>일본이 추진한 문화 통치로 우리 민족은 분열되었고 일본에 협력하는 친일파들이 하나둘 늘어나게 되었어요. 그 결과 우리 민족의 분열을 가져왔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3163_1745.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3163_1745.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3163_1745.png" /><br style="clear:both;" />조선 총독부의 검열로 인해 기사가 삭제 당한 신문(동아일보 1929년 12월 8일)</p><p>동아일보</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23:33:13+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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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토지 조사 사업을 통해 식민 통치의 기반을 마련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apansettlement/4</link>
<description><![CDATA[<p>일제는 1910년부터 1918년까지 토지 소유 관계를 근대적으로 정리한다며 토지 조사 사업을 시행했어요. 자기 땅을 인정받으려는 사람들은 서류를 준비하여 총독이 정한 기간 내에 신고해야 했어요. 신고가 접수되면 토지 조사국에서 땅을 측량하고 여러 가지를 살핀 후 신고자의 토지를 인정해 주었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2975_3124.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2975_3124.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2975_3124.png" /><br style="clear:both;" /> </p><p><br /></p><p><br /></p><p>그런데 토지 조사 사업을 시행하면서 몇 가지 문제가 생겼어요.</p><p>먼저 정해진 기간 내에 스스로 신고하지 않으면 땅의 소유를 인정받지 못했어요. 마을 단위 혹은 각 집안의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소유하거나 공공 기관이 소유한 토지는 누가 주인인지 한 사람을 정해 신고해야 했고요. 또 토지 조사 사업이 시행되면서 소작농이 지주의 땅을 빌려 농사지을 수 있었던 권리는 인정되지 않았어요.</p><p><br /></p><p>땅 주인인 지주의 권리만 인정되면서 소작권이 보장되지 않아 지주들은 자기 마음대로 소작료를 올렸고 소작농의 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졌어요. 지주에게 땅을 빌리지 못하는 소작농들이 늘어나고, 그들은 농사지을 땅을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나 만주나 연해주 지역으로 떠나기도 했어요.</p><p><br /></p><p>이렇듯 정해진 기한 내에 신고하지 않은 땅은 주인이 없는 것으로 여겨져 조선 총독부가 차지하게 되었어요. 조선 총독부는 토지 조사 사업을 통해 차지한 땅을 어떻게 했을까요?</p><p><br /></p><p>동양 척식 주식회사에 넘긴 후 한반도에 와서 살고 싶어 하던 일본인에게 아주 싼 가격에 팔았어요. 이를 통해 일본인들은 대지주가 되고 조선인들은 소작인으로 전락하는 구조가 만들어졌어요.</p><p><br /></p><p>소작인은 자기 땅이 없어 지주의 땅을 빌려 농사짓는 농민을 말해요. 토지 조사 사업이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농민은 대다수가 소작인이 되어 수확한 쌀의 절반 이상을 소작료로 내게 되었어요. 그래서 대다수 소작인들은 어렵게 생활했습니다.</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23:30:17+09:00</dc:date>
</item>


<item>
<title>헌병 경찰을 앞세워 식민 통치를 펼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apansettlement/3</link>
<description><![CDATA[<p>1910년대에 일제는 우리 민족을 통제하기 위해 헌병 경찰제를 시행했어요. 군인인 헌병에게 경찰 업무를 담당하게 했던 거지요. 헌병 경찰의 권한은 아주 컸어요. 그들은 즉결 처분권이 있어서 재판 없이도 조선인에게 벌금을 내게 하거나 경찰서 같은 곳에 가둘 수 있었어요.</p><p>또 헌병 경찰은 1912년에 제정된 〈조선 태형령〉에 따라 태형의 처벌을 내릴 수 있었어요. 태형은 큰 죄를 짓지 않거나 벌금을 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가느다란 막대기로 곤장을 치는 거예요. 일본에서는 이미 없어진 형벌을 조선인을 억압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적용한 거예요.</p><p><br /></p><p>이 시기 일제는 조선인이 발행하던 신문을 폐간시키고, 여러 단체를 해산시켰어요.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언론, 집회, 단체를 만드는 자유 등의 기본적인 권리를 없앤 것이죠. 또 학교에서는 교원에게 제복을 입고 칼을 차게 하여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었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2836_66.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2836_66.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2836_66.png" /><br style="clear:both;" />1919년 3월 시흥공립보통학교 제7회 졸업기념사진</p><p>국사편찬위원회 수집 박건호 소장자료</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23:27:37+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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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일제, 조선 총독부를 설치하고 식민 통치를 시작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apansettlement/2</link>
<description><![CDATA[<p>1910년 8월 29일 일제는 한일병합조약을 발표하고 우리 민족을 식민지로 지배하기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대한제국의 이름을 조선으로 불렀어요. 을사조약 이후 설치한 통치 기구인 통감부를 대신하여 조선 총독부를 설치했어요.</p><p><br /></p><p>조선 총독부의 최고 책임자는 총독이에요. 조선총독은 일본 천황에게 직접 명령을 받는 특별한 존재로 일본의 육군과 해군 대장 중에서 임명되었고, 막강한 권력을 가졌어요. 법을 만드는 권한인 입법권, 관리를 임명하고 모든 행정 기관을 총괄하는 행정권, 법원과 재판에 대한 업무를 총괄하는 사법권, 군대에 명령을 내리는 군 통수권 등을 모두 가지고 있었거든요.</p><p>1910~1925년 조선 총독부 청사</p><p>처음에는 남산에 있던 통감부 건물을 조선 총독부 청사로 사용했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2705_1951.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2705_1951.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2705_1951.png" /><br style="clear:both;" />서울역사박물관</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23:25:21+09:00</dc:date>
</item>


<item>
<title>일본의 식민지 조선 통치</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apansettlement/1</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2583_3536.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2583_3536.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72583_3536.png" /><br style="clear:both;" />조선 총독부 청사</p><p>국사편찬위원회</p><p><br /></p><p><br /></p><p><br /></p><p>“소식 들었나?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했다고 하더군.”</p><p><br /></p><p>“알고 있네. 일왕이 라디오를 통해 그 사실을 발표했다고 하네.”</p><p><br /></p><p>1945년 우리 민족은 광복을 맞이했어요. 우리 민족이 끊임없는 독립운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해 무조건 항복했기 때문이죠. 1910년부터 약 35년 동안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받으면서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23:23:24+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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