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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한국의 역사, 한국사, 코리아히스토리월드, 1555-0001 &amp;gt; 근대사 &amp;gt; 주시경</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oosigyeong</link>
<language>ko</language>
<description>주시경 (2026-08-31 22:14:5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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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제자들에 의해 그의 정신이 이어지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oosigyeong/6</link>
<description><![CDATA[<p>“일제의 감시를 피해 다른 나라로 가 한글 연구를 계속해야겠어.”</p><p><br /></p><p>일제의 탄압을 견디다 못한 주시경은 중국으로 망명하기로 마음먹었어요. 하지만 그는 뜻을 이루지 못했어요.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 오기 시작했어요. 그는 손을 쓸 틈도 없이 숨을 거두고 말았어요. 1914년, 그의 나이 서른아홉 살이었어요.</p><p><br /></p><p>그가 죽은 뒤 그가 하던 연구를 제자들이 이어갔어요. 최현배 등이 조선어학회를 만들어 한글을 지켜내는 운동을 벌이고, 발전시켰지요. 일제의 감시를 피해 전국에서 쓰고 있는 우리말을 모으는 ‘말모이 작전’을 펼쳤고, 『조선말 큰 사전』을 펴내려고 했어요.</p><p><br /></p><p>그런데 일제가 조선어학회를 강제로 없애버리고, 10여 년이 넘게 써온 『조선말 큰 사전』 원고 등 연구하던 자료를 모두 빼앗아 갔어요. 다행히 얼마 후 서울역을 정리하다 원고가 발견되었고, 1957년에 『조선말 큰 사전』을 완성해 펴냈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8/7b3496202bfbd0117cffaa4d3ea9d389_1788182074_0014.png" title="7b3496202bfbd0117cffaa4d3ea9d389_1788182074_0014.png" alt="7b3496202bfbd0117cffaa4d3ea9d389_1788182074_0014.png" /><br style="clear:both;" />조선말 큰 사전</p><p>독립기념관</p><p><br /></p><p><br /></p><p><br /></p><p>다행히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이 그가 이루지 못한 꿈을 하나둘 이루긴 했지만, 그의 이른 죽음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가 조금 더 살아 연구를 계속했다면, 한글 연구는 더욱 발전했을 거예요.</p><p><br /></p><p>그래도 우리글의 가치를 알아본 주시경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한글을 편하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거랍니다.</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8-31T22:14:53+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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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우리글에 ‘한글’이란 이름을 붙이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oosigyeong/5</link>
<description><![CDATA[<p>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강제로 맺어지면서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지요. 이후 주시경의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사랑과 이를 지키려는 노력은 더욱 깊어졌어요.</p><p><br /></p><p>“나라의 바탕을 보존하려면 우리 말과 글을 잘 지켜야 하오. 나라의 바탕이 날로 쇠하면 나라를 다시 일으킬 가망이 없소이다.”</p><p><br /></p><p>그는 나라를 되찾으려면 우리 말과 글을 잘 지키고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일제가 우리글을 국어라고 하지 못하게 하자 ‘한글’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바로 주시경 선생이에요. 한글에는 ‘크고 바른 글’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p><p>우리 말과 글에 관한 책인 『말의 소리』 , 한글 문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국어문법』 이라는 책을 썼어요. 최초의 국어사전으로 볼 수 있는 『말모이』 도 썼지요.</p><p><br /></p><p>자신의 호도 ‘크고 하얀 샘’이란 뜻의 순 한글 이름인 ‘한힌샘’으로 바꿀 정도로 한글을 사랑했어요. 하지만 한글을 연구하고 지키는 길은 쉽지 않았어요. 일제의 탄압이 만만치 않았거든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8/7b3496202bfbd0117cffaa4d3ea9d389_1788181930_1591.png" title="7b3496202bfbd0117cffaa4d3ea9d389_1788181930_1591.png" alt="7b3496202bfbd0117cffaa4d3ea9d389_1788181930_1591.png" /><br style="clear:both;" />말의 소리</p><p>독립기념관</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8-31T22:12:35+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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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여기저기 다니며 우리글을 가르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oosigyeong/4</link>
<description><![CDATA[<p>그는 외국인들에게도 우리글을 가르쳤어요. 또한 여기저기 강연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자주 독립 정신을 심어 주기도 했어요. 배재학당 주변에 있던 여러 학교를 누비면서 국어 선생으로 강의를 했고요. 그러다 보니 일요일에도 쉴 틈이 없었어요.</p><p><br /></p><p>한글을 가르치는 무료 강습소를 열어 우리글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었지요. 국어강습소에는 남자, 여자,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어요.</p><p><br /></p><p>“어이쿠, 주보따리 선생이 또 전봇대에 부딪혔군, 저러다 이마가 남아나겠나?”</p><p>사람들은 책을 한가득 보따리에 싸고 다니는 그를 주보따리 선생이라 불렀어요. 그는 걸어 다니면서도 늘 한글을 골똘히 생각했어요.</p><p><br /></p><p>“우리 말과 글을 체계적으로정리해서 우리말 사전을 만들어야겠어.”</p><p><br /></p><p>그는 우수한 한글을 잘 정리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한글 전반을 연구하는 국문연구소에서 지석영 등과 함께 한글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세로 쓰기 대신 가로 쓰기를 주장했고, 통일된 하나의 표기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8-31T22:10:24+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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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독립신문』을 만드는데 참여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oosigyeong/3</link>
<description><![CDATA[<p>1880년대 일본, 청, 러시아, 영국, 미국 등 세계 여러 강대국이 조선에 하나둘 침략의 손길을 뻗어와 한반도를 넘보기 시작했지요. 그들은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켰어요. 이후 광산을 개발하거나 철도를 설치하는 권한과 같은 여러 가지 이익들을 차지하려 했어요.</p><p><br /></p><p>이러한 상황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서재필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1896년 『독립신문』을 펴내고, 독립협회를 세워 나라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벌였지요.</p><p>서재필은 『독립신문』을 한글로도 만들어 누구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해 우리 민족을 깨우치려고 했어요. 어느 날 서재필이 주시경을 찾아와 신문 만드는 일을 도와달라고 했어요.</p><p><br /></p><p>“일반 사람들과 부녀자들도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된 신문을 내면 좋을 텐데, 가능할까요?”</p><p><br /></p><p>“네,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을 소리 나는 대로 쓰고, 띄어쓰기를 잘하면 됩니다.”</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8/7b3496202bfbd0117cffaa4d3ea9d389_1788181699_527.png" title="7b3496202bfbd0117cffaa4d3ea9d389_1788181699_527.png" alt="7b3496202bfbd0117cffaa4d3ea9d389_1788181699_527.png" /><br style="clear:both;" />독립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들</p><p><br /></p><p><br /></p><p><br /></p><p>주시경의 생각대로 『독립신문』을 한글로 낼 수 있게 되었어요. 그는 독립신문 교보원(교정보는 사람)이 되어 『독립신문』 기사를 꼼꼼히 검토하며 교정을 보았지요. 기사문을 고치며 띄어쓰기, 점찍기 등을 처음으로 해보았어요.</p><p><br /></p><p>한글로 된 독립신문을 읽으며 세상에 대해 눈 떠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주시경은 마음이 뿌듯했어요. 헐버트도 『독립신문』 만드는데 큰 도움을 주었지요. 이후 주시경은 동료들과 함께 우리말과 글을 더욱 열심히 연구했어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8-31T22:08:48+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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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배재학당에서 신학문을 배우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oosigyeong/2</link>
<description><![CDATA[<p>이 사람은 바로 일제 강점기에 우리 말과 글을 지키려고 노력한 주시경 선생이에요. 그는 1876년 황해도 봉산에서 태어났어요. 그해에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고 나라의 문을 열었지요.</p><p><br /></p><p>그의 집안은 중인 집안으로, 집안이 넉넉하지 않아 여섯이나 되는 주시경의 남매들은 굶기를 밥 먹듯 했어요. 열두 살 무렵 황해도에 살던 주시경은 서울로 올라와 살게 되었어요. 큰아버지 집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거든요. 그 덕분에 서울의 서당에서 양반집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할 수 있었지요.</p><p><br /></p><p>“왜 이렇게 뜻도 제대로 알 수 없는 한자를 공부해야 할까? 소리 나는 대로 쓸 수 있는 우리글이 있는데…”</p><p><br /></p><p>주시경은 서당에서 한문과 유학에 대해 공부할수록 고민이 깊어졌어요. 그러면서 차츰 한문으로 된 책 대신 한글에 관심을 두게 되었지요.</p><p><br /></p><p>주시경은 1894년 배재학당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이 학교는 미국인 선교사가 세운 근대식 사립학교에요.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학문을 배우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청년들을 만났어요. 주시경의 생각도 점점 바뀌었어요.</p><p>특히 주시경은 헐버트를 만나면서 그로부터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세계의 여러 나라가 자기 나라 말과 글을 쓴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동안 몰랐던 드넓은 세상을 알게 되었고, 중국과 조선에 대한 생각도 변했어요.</p><p><br /></p><p>“언문(한글)이 중국 글자보다 더 필요하건만 사람들이 그것도 모르고 업신여기니 어찌 아깝지 아니한가!”</p><p><br /></p><p>외국인인 헐버트는 이런 이야기를 할 정도로 한글의 우수성을 너무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지요.</p><p><br /></p><p>배재학당에 다니던 많은 청년들은 신학문을 배우며, 조선을 새롭게 변화시켜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훗날 일제가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을 때 독립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았지요. 그 중 한 사람이 주시경 선생이에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8/7b3496202bfbd0117cffaa4d3ea9d389_1788181551_5569.png" title="7b3496202bfbd0117cffaa4d3ea9d389_1788181551_5569.png" alt="7b3496202bfbd0117cffaa4d3ea9d389_1788181551_5569.png" /><br style="clear:both;"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서울 중구)</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8-31T22:06:04+09:00</dc:date>
</item>


<item>
<title>주시경, 우리 말과 글을 지켜내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oosigyeong/1</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8/7b3496202bfbd0117cffaa4d3ea9d389_1788181326_9154.png" title="7b3496202bfbd0117cffaa4d3ea9d389_1788181326_9154.png" alt="7b3496202bfbd0117cffaa4d3ea9d389_1788181326_9154.png" /><br style="clear:both;" />한글가온길 한글마당(서울 종로구)</p><p><br /></p><p><br /></p><p><br /></p><p>“주보따리 선생님, 일요일인데도 어딜 그리 바삐 가시나요?”</p><p><br /></p><p>“우리글을 가르치러 국어강습소에 간다오.”</p><p><br /></p><p>“그러시군요. 선생님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글을 배울 수 있겠군요. 수고하세요.”</p><p><br /></p><p>주보따리 선생으로 불린 이 분은 누구일까요? 그는 왜 쉼 없이 우리말을 가르치려고 한 것일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8-31T22:02:34+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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