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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한국의 역사, 한국사, 코리아히스토리월드, 1555-0001 &amp;gt; 조선사 &amp;gt; 조선의 지방관, 수령</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oseon_officer</link>
<language>ko</language>
<description>조선의 지방관, 수령 (2026-08-28 14:18:09)</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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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역사 속 작은 이야기 : 공덕비가 뭐예요?</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oseon_officer/7</link>
<description><![CDATA[<p>혹시 공덕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조선 시대에 사람들이 수령을 위해 세운 비석을 말해요. 다른 말로는 선정비라고도 해요. 사람들은 자기 지역에 지방관으로 온 수령이 백성을 잘 다스리고 돌아가면 그 공을 기리기 위해서 공덕비를 세웠어요. 그래서 경기도의 어느 지역에는 향교 앞에 비석이 줄지어 세워진 곳도 있어요.</p><p><br /></p><p>그런데 공덕비 중에는 마을 사람이 자발적으로 세우지 않은 것도 있어요. 수령이 스스로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하기 위해 세우거나 마을 사람들에게 공덕비 세우는 데 필요한 자금을 억지로 걷어 세운 것도 있답니다. 여러분이 사는 지역에도 공덕비가 있나요? 그 공덕비는 누가 세운 것인지 부모님과 함께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8/f8cada5f284db46fa47ccc9adfb29973_1787894273_3548.png" title="f8cada5f284db46fa47ccc9adfb29973_1787894273_3548.png" alt="f8cada5f284db46fa47ccc9adfb29973_1787894273_3548.png" /><br style="clear:both;" />동래부사유심선정비</p><p>국가유산청</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8-28T14:18:09+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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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수령을 위해 쓴 책인 『목민심서』가 있다는데?</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oseon_officer/6</link>
<description><![CDATA[<p>정조 때 수원 화성을 짓는 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을 알고 있나요? 맞아요. 정약용이에요. 수원 화성이 완성되고 몇 년이 흐른 뒤 정조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러자 순조가 11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왕의 외척 가문이 권력을 차지하는 세도 정치 시기가 되었어요.</p><p><br /></p><p>세도 정치 시기에는 과거 시험으로 정정당당하게 관직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세도 가문에 돈을 주고 관직을 사서 지방관인 수령이 되는 사람들이 생겨났어요. 이렇게 해서 지방을 다스리게 된 수령은 백성의 생활을 돌보는 것보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에 바빴어요.</p><p><br /></p><p>정약용은 세도 정치가 시작되면서 약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어요. 그러면서 지방관의 부정부패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지요. 정약용은 지방관인 수령이 지켜야 할 일을 적은 책을 펴내기로 했어요. 그래서 나온 책이『목민심서』예요. 『목민심서』에는 수령이 부임지로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부터 지방을 다스릴 때 지켜야 하는 일 등이 적혀 있어요.</p><p>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수령의 청렴을 특히 강조했어요. 예를 들면 자신이 다스릴 곳을 갈 때는 옷차림을 새로 장만하지 말고, 수행하는 인원도 되도록 적게 두라고 했어요. 지방을 다스릴 때 자신의 생일이 되어도 생일 축하 음식도 받지 말라고 했어요. 이는 모두 백성들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었죠. 또 임기를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그 지방에서 나는 특산물을 가져가지 말라고 했어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8-28T14:16:03+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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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수령은 지방을 어떻게 다스렸을까?</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oseon_officer/5</link>
<description><![CDATA[<p>자기가 다스릴 지방에 온 수령은 동헌에서 업무를 보았어요. 수령이 주로 처리했던 업무는 무엇일까요? 하나하나 살펴볼까요?</p><p>먼저 수령은 그 지역의 농업과 양잠에 힘써야 해요. 농업은 당시 조선의 기본적인 산업이므로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죠. 그럼 양잠은 무엇일까요? 누에를 길러 옷감을 만드는 걸 말해요. 이때 옷감은 비단을 말하죠.</p><p><br /></p><p>그다음은 호구 수를 늘리는 거예요. 호구는 마을에 있는 집의 수와 그곳에 사는 사람의 수를 말해요. 즉, 인구를 늘리는 것을 의미하죠.</p><p><br /></p><p>학교를 잘 운영하는 일도 중요해요. 지방의 학교인 향교에서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하여 과거 합격자를 많이 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에요.</p><p><br /></p><p>이외에도 군대를 잘 정비하여 자기가 맡은 지역을 지키고, 성을 쌓거나 건물을 짓는 데 사람들을 동원할 때 공평하게 하고, 사람 사이에 다툼이 생길 때 재판하는 것도 수령이 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마지막으로 그 지역의 풍속을 좋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게 여겼어요.</p><p><br /></p><p>이러한 7가지 일을 ‘수령 7사’라고 불렀어요. 조선 시대에는 ‘수령 7사’를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에 적어 놓았어요. 그리고 8도의 관찰사는 이를 바탕으로 수령이 하는 일을 1년에 두 번 평가하여 왕에게 보고했어요. 이때 우수한 평가를 받은 수령은 더 높은 벼슬에 올라가는 승진의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어요.</p><p>한편, 아무리 능력 있는 수령이라도 혼자 힘으로 지방 행정을 꾸려나갈 수는 없어요. 수령을 도와 지방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바로 향리예요. 향리는 중앙의 6조처럼 이방·호방·예방·병방·형방·공방의 6개의 부서로 나뉘었어요.</p><p><br /></p><p>지방의 양반들이 모여 수령이 하는 일을 돕는 유향소도 있었어요. 그런데 유향소의 양반들은 수령을 돕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수령이 잘못된 일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일도 했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8/f8cada5f284db46fa47ccc9adfb29973_1787894079_3531.png" title="f8cada5f284db46fa47ccc9adfb29973_1787894079_3531.png" alt="f8cada5f284db46fa47ccc9adfb29973_1787894079_3531.png" /><br style="clear:both;" />조선 시대 수령이 해야 할 7가지 일</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8-28T14:14:56+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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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부임지에 와서 업무를 시작하기까지</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oseon_officer/4</link>
<description><![CDATA[<p>한양을 떠나 자신의 부임지에 도착한 수령은 제일 먼저 고을에 있는 객사로 가요. 객사는 고을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로 왕을 의미하는 나무 위패를 모셔둔 곳이에요. 수령은 객사에서 왕에게 부임 인사를 올렸던 거예요.</p><p>그 후 수령은 매월 1일(초하루)과 15일(보름)에 객사에서 왕이 있는 궁궐을 향해 예를 올렸어요. 왕의 뜻을 받들어 지방을 잘 다스리겠다는 뜻에서 이런 의식을 치른 거 같아요. 한편 객사는 왕에게 예를 치르는 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고을을 찾아오는 손님이 오면 묵는 곳이기도 했어요. 오늘날 전국 곳곳에 조선 시대 객사 건물이 남아 있답니다.</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8/f8cada5f284db46fa47ccc9adfb29973_1787893881_5991.png" title="f8cada5f284db46fa47ccc9adfb29973_1787893881_5991.png" alt="f8cada5f284db46fa47ccc9adfb29973_1787893881_5991.png" /><br style="clear:both;" />나주의 객사인 금성관</p><p>국가유산청</p><p><br /></p><p><br /></p><p><br /></p><p>객사에서 왕에게 예의를 갖춘 후 수령이 꼭 가야 하는 곳이 한군데 더 있어요. 어디인지 짐작이 가나요? 바로 향교예요. 향교는 조선 시대 나라에서 지방 고을마다 세운 학교에요. 오늘날로 치면 중등 교육기관에 해당하지요. 그런데 수령은 왜 학교인 향교에 갔을까요?</p><p>향교에는 한양에 있는 성균관과 똑같은 건물이 있어요. 그곳이 공자의 위패를 모셔 놓은 대성전이랍니다. 조선은 유교를 바탕으로 세워진 나라이므로 유교를 처음 창시한 공자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공자에게 제사 지내는 건물이 바로 대성전이죠. 대성전을 찾아간다는 것은 유교를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에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8/f8cada5f284db46fa47ccc9adfb29973_1787893913_9192.png" title="f8cada5f284db46fa47ccc9adfb29973_1787893913_9192.png" alt="f8cada5f284db46fa47ccc9adfb29973_1787893913_9192.png" /><br style="clear:both;" />나주 향교 대성전</p><p>국가유산청</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8-28T14:12:08+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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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수령으로 부임 전에 어떤 준비를 했을까?</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oseon_officer/3</link>
<description><![CDATA[<p>수령으로 임명되었다고 해서 바로 자기가 맡은 고을로 가는 것은 아니에요. 여러 절차와 유교적 예절을 거쳐야 했어요. 먼저 수령을 선발할 때는 조선 시대 다른 벼슬을 임명할 때처럼 후보자 3명을 추려서 왕에게 올려요. 왕은 그중에서 알맞다고 생각되는 사람 1명을 수령으로 정해요. 그리고 왕의 결정을 적은 공식 문서인 교지를 당사자에게 전달하지요.</p><p><br /></p><p>교지를 받은 사람은 서둘러 왕이 계신 궁궐로 가요. 관리로 선발된 사람이 사는 곳에 따라 한양에 도착해야 하는 기한도 정해져 있었다고 해요. 만약에 기한을 넘기면 수령 임명이 취소될 수도 있었어요.</p><p>한양에 도착하면 궁궐로 가서 왕을 만나 뵙는 절차가 있어요. 자신을 수령으로 뽑아준 것에 대하여 감사 인사를 드리는 것이죠. 이때 왕을 직접 만나지 못하고 왕의 비서 기관인 승정원 관리를 만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어요. 왕을 만나 감사 인사를 했다고 절차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어요. 임명받은 인물이 수령으로 알맞은지 심사하는 절차가 남았어요.</p><p><br /></p><p>심사가 끝나 수령으로 최종 결정된 사람은 한양에 머물며 여러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신의 부임지로 떠날 준비를 하지요. 모든 준비가 끝나면 다시 궁궐로 가서 왕에게 하직 인사를 드려요. 이때 왕이나 승정원 관리 앞에서 『경국대전』에 나와 있는 수령이 꼭 해야 할 일인 수령 7사를 외우기도 해요.</p><p><br /></p><p>수령이 자기가 다스릴 곳으로 갈 때 그 지역의 사람들이 한양에 올라와 수령을 모셔가는 관행이 있었어요. 이때 너무 많은 사람이 한양으로 오면 비용이 만만치 않았어요. 그래서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11명 정도가 적당하다고 했어요. 지방에서 수령을 맞으러 온 사람들은 수령에게 예의를 갖추고, 자기 고을의 문서도 가져왔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8/f8cada5f284db46fa47ccc9adfb29973_1787893739_1055.png" title="f8cada5f284db46fa47ccc9adfb29973_1787893739_1055.png" alt="f8cada5f284db46fa47ccc9adfb29973_1787893739_1055.png" /><br style="clear:both;" /> </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8-28T14:09:08+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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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모든 군과 현에 지방관을 보내 다스리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oseon_officer/2</link>
<description><![CDATA[<p>이성계가 나라를 세운 후 차츰 조선의 통치 제도가 정비되었어요. 특히 제3대 임금 태종 때는 지방 행정제도가 정비되었어요. 태종은 전국을 8개의 도로 나누고 관찰사를 보내 다스렸어요. 도 밑에 부, 목, 군, 현의 행정 구역을 두고 각각 지방관을 보냈어요.</p><p><br /></p><p>이들 지방관은 종2품에서 종6품까지 벼슬 등급이 달랐지만 모두 수령이라 불렸어요. 그런데 조선 시대는 고려 시대와 다른 점이 있었어요. 바로 모든 군과 현까지 지방관이 파견되었다는 거예요. 이를 통해 지방을 더욱더 잘 통치할 수 있었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8/f8cada5f284db46fa47ccc9adfb29973_1787893599_7942.png" title="f8cada5f284db46fa47ccc9adfb29973_1787893599_7942.png" alt="f8cada5f284db46fa47ccc9adfb29973_1787893599_7942.png" /><br style="clear:both;" />조선 시대의 지방 행정 구역</p><p><br /></p><p><br /></p><p><br /></p><p>수령은 보통 과거에 합격한 사람이 되어요. 이때 과거는 문과나 무과 모두 괜찮지만, 아무래도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의 수령이 되려면 문과에 합격하는 것이 좋아요. 과거를 보지 않고 음서를 통해 수령이 되는 사람도 있었어요. 음서는 2품 이상의 고위 관리의 자손에게 시험을 보지 않고 관리가 될 수 있게 한 제도예요. 음서를 통해 수령이 되는 사람은 규모가 작은 군과 현에 파견되었어요.</p><p><br /></p><p>수령은 각 지방을 얼마 동안 다스렸을까요? 조선이 건국된 초기에는 30개월 정도였다고 해요. 그러다 세종 때 60개월로 늘어나고,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이 완성되면서 1,800일로 정해졌어요. 1,800일을 해로 헤아리면 5년 정도가 되지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8-28T14:07:05+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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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조선 시대 지방을 다스리던 관리, 수령</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joseon_officer/1</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8/3c87d15b383e15d8a814216d1f690725_1787890196_2164.png" title="3c87d15b383e15d8a814216d1f690725_1787890196_2164.png" alt="3c87d15b383e15d8a814216d1f690725_1787890196_2164.png" /><br style="clear:both;" />고창읍성 동헌</p><p>국가유산청</p><p><br /></p><p><br /></p><p><br /></p><p>“우리 고을에 새로운 원님이 오신다고 하네요.”</p><p><br /></p><p>“이번에 부임하는 수령은 어떤 분일까요? 저번에 계시던 수령보다 좋은 분이 오셔야 할 텐데. 걱정이군요.”</p><p><br /></p><p>조선 시대에는 왕의 명을 받들어 각 지방을 다스리기 위해 지방관을 보냈어요. 이러한 지방관을 흔히 수령이라 불렀어요. 대화 속에 등장하는 원님은 수령을 말하는 일상적인 표현이었어요.</p><p><br /></p><p>조선 시대 수령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요? 지금부터 조선 시대 수령에 대해서 살펴보아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8-28T13:10:33+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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