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
<rss version="2.0"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channel>
<title>한국의 역사, 한국사, 코리아히스토리월드, 1555-0001 &amp;gt; 근대사 &amp;gt; 근대 건축물</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modernbuilding</link>
<language>ko</language>
<description>근대 건축물 (2026-09-01 17:52:34)</description>

<item>
<title>역사 속 작은 이야기: 서울 남촌과 북촌의 달라진 모습</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modernbuilding/8</link>
<description><![CDATA[<p>개항 이후 전기, 전화 전차가 들어오면서 도시의 모습은 바뀌었어요. 일제 강점기 식민 통치를 위한 여러 기관들이 들어서고, 한국에 건너온 일본인들이 자리를 잡으며 그들이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었지요.</p><p><br /></p><p>일본인들은 주로 청계천 남쪽 진고개 주변에 모여 살았어요. 남촌으로 불리는 곳으로 지금의 서울 중구 충무로 일대이지요. 이후 일본은 남대문 일대까지 자신들의 공간을 점점 늘려갔어요.</p><p>한국인들은 주로 청계천 북쪽 종로를 중심으로 한 북촌에 모여 살았고요. 북촌은 조선 시대 권력자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전통적인 건축물들이 모여 있었어요.</p><p><br /></p><p>남촌과 북촌의 모습은 무척 달라졌어요. 남촌에는 은행, 백화점 등 서양식 건물들이 들어서고, 길도 닦이고, 아스팔트가 깔렸어요. 밤이 되면 화려한 불빛이 반짝였어요. 북촌 거리와 달리 깨끗하게 정비되었어요. 하수도도 놓고, 가로수를 심고 가로등도 설치되었지요.</p><p><br /></p><p>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대부분 일본인을 위한 것이었고, 혜택도 주로 그들에게 돌아갔어요. 서울은 한 도시이지만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p><p><br /></p><p>일제는 경복궁에 조선 총독부를 세운 이후 북촌마저도 자신들의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어요. 결국 한국인들은 북촌에서 밀려나 청계천, 마포 등지로 옮겨가야 했어요.</p><p><br /></p><p>개항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선 근대 건축물을 따라 여행하다 보면 당시 상황을 알 수 있어요.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역에도 근대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이 곳곳에 남아 있을 거예요. 부모님과 함께 근대 건축물을 살펴보며, 그곳에 담겨 있는 역사 이야기를 알아보세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17:52:34+09:00</dc:date>
</item>


<item>
<title>정동에 들어선 손탁 호텔</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modernbuilding/7</link>
<description><![CDATA[<p>서양식 호텔도 세워졌어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손탁 호텔이지요. 앙투아네트 손탁은 독일 여성으로 러시아 공사관의 보호를 받으며 활약했던 인물이에요. 그녀는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영어 등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어요.</p><p><br /></p><p>고종, 왕비 민씨(훗날의 명성 황후)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통역을 담당하고, 러시아 공사관과 우리 황실을 연결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을미사변 이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했을 때도 많은 도움을 준 인물이지요.</p><p><br /></p><p>고종은 이를 고맙게 여겨 서울 정동에 기와집 하나를 지어 선물했어요. 이후 이 건물을 헐고 호텔을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손탁 호텔이지요. 외국과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외국인들이 한국에 많이 왔는데, 그들이 주로 이용하던 호텔이 바로 손탁 호텔이에요. 지금은 이화여자고등학교 한 편에 그 터만 남아 있지요.</p><p><br /></p><p>손님이 머물 수 있는 방이 30개나 되는 큰 규모로 레스토랑도 있어, 서양식 요리와 커피를 맛볼 수 있었지요. 조선의 친러파와 친미파 인사들이 여러 나라 외교관 및 선교사들과 손탁 호텔에서 사교 모임을 갖기도 했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2670_0864.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2670_0864.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2670_0864.png" /><br style="clear:both;" /> 호텔 그림엽서</p><p>국사편찬위원회</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17:51:25+09:00</dc:date>
</item>


<item>
<title>서울역사가 들어서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modernbuilding/6</link>
<description><![CDATA[<p>우리나라에 철도가 들어오면서 중심이 된 곳이 있어요. 바로 서울역이에요. 이곳은 원래 남대문 정거장으로 불렸어요. 10평짜리 나무로 지은 건물이었지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2524_5173.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2524_5173.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2524_5173.png" /><br style="clear:both;" />남대문 정거장 앞의 모습</p><p><br /></p><p><br /></p><p><br /></p><p>일제 강점기인 1922년 새로운 역사가 필요해진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손에 꼽히는 규모의 경성역사를 만들었어요. 역사는 공사를 시작한지 3년여 만인 1925년에 완공되었지요.</p><p><br /></p><p>이렇게 큰 규모의 경성역사를 세운 데에는 일제의 속셈이 있었어요. 부산에서 경성을 거쳐 북경과 시베리아 유럽까지 연결하는 열차를 건설하고 동아시아의 중심이 되려는 원대한 목적을 가지고 있던 거지요. 일제는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경성역사를 다시 지었어요.</p><p>지하 1층, 지상 2층인 큰 규모의 경성역사는 독립 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가는 사람,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는 사람, 우리나라를 통치하기 위해 오는 일본인까지 온갖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드나들던 곳이었지요.</p><p><br /></p><p>경성역사는 광복 이후 서울역사로 이름이 바뀌었고, 한국 철도의 중심지로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고속철도가 등장하면서 2004년에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고, 서울역사는 ‘문화역서울 284’로 이름이 바뀌어 문화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2561_1576.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2561_1576.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2561_1576.png" /><br style="clear:both;" />문화역서울 284(서울 중구)</p><div><br /></div>]]></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17:49:36+09:00</dc:date>
</item>


<item>
<title>성당과 교회, 학교 건물이 세워지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modernbuilding/5</link>
<description><![CDATA[<p>서울에는 천주교 성당이 들어섰어요.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명동성당이 대표적이지요. 1892년에 짓기 시작해 1898년에 완공했어요. 명동성당이 자리 잡은 곳은 우리나라에 최초로 천주교회가 창설된 곳이에요. 청에서 세례를 받고 온 이승훈 등이 모여 종교 집회를 연 김범우의 집이 있던 곳이지요.</p><p>프랑스인인 코스트 신부가 설계하고 공사 감독을 맡았어요. 우리나라에 서양식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건축 기술자가 없어 애를 먹다 결국 중국에서 데려다가 성당을 지었다고 해요. 기와집과 초가집만 보던 사람들에게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성당은 큰 구경거리였어요. 명동성당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이 성당을 뾰죽집이라고 불렀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2220_8824.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2220_8824.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2220_8824.png" /><br style="clear:both;" />명동성당</p><p>문화재청</p><p><br /></p><p><br /></p><p><br /></p><p>명동성당보다 더 일찍 세워진 성당이 있어요. 바로 서울 중구 중림동의 약현성당(중림동 성당)이에요. 이 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벽돌로 지어진 서양식 건축물이에요. 화재로 모두 불타버리고 현재 건물은 원래 모습대로 복원된 거예요. 서울에서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강당을 짓고, 예배를 드렸지요.</p><p><br /></p><p>1891년에 짓기 시작해 1893년에 완공되었어요. 약현성당은 조선에 천주교가 들어와 박해를 받을 때마다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당한 곳인 서소문 성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그 의미가 더욱 크답니다.</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2254_0521.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2254_0521.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2254_0521.png" /><br style="clear:both;" />약현성당(서울 중구)</p><p><br /></p><p><br /></p><p><br /></p><p>성당과 함께 교회도 세워졌어요. 1897년 세워진 정동제일교회가 대표적이지요.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웠어요.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축물로 한국에 세워진 최초의 서양식 교회로 개신교 역사를 잘 보여주지요. 대한 제국 시기 정치 1번지였던 정동에 세워져 근대화에 큰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2302_3633.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2302_3633.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2302_3633.png" /><br style="clear:both;" />정동제일교회(서울 중구)</p><p>서울역사편찬원</p><p><br /></p><p><br /></p><p><br /></p><p>정동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근대학교인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건물도 서양식으로 지어졌지요. 최신식 시설을 갖춘 붉은 벽돌 건물로, 새로운 학문을 가르치는 학교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모습이었지요.</p><p>배재학당과 이화학당 학생들이 바로 옆에 있는 정동제일교회에 다니며 개화 운동을 이끌기도 했어요. 일제 강점기에는 학생들이 예배당에 숨어 비밀리에 독립 운동을 준비하기도 했지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2334_1383.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2334_1383.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2334_1383.png" /><br style="clear:both;" />배재학당역사박물관(서울 중구)</p><p>문화재청</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17:45:49+09:00</dc:date>
</item>


<item>
<title>궁궐에도 서양식 건축물이 들어서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modernbuilding/4</link>
<description><![CDATA[<p>궁궐에도 서양식 건물이 들어섰어요. 대한 제국의 중심 역할을 한 덕수궁에 서양식 건축물인 중명전과 석조전을 세웠어요. 석조전은 1900년에 짓기 시작해 10년 만인 1910년에 완공되었어요. 황실 가족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며, 동시에 나랏일을 처리하는 공간이었어요.</p><p><br /></p><p>중명전은 황실 도서를 보관하던 도서관이었지요. 원래 이름은 수옥헌이었어요. 1901년 화재로 건물이 타버렸고, 이후 다시 지어졌어요, 그러면서 고종 황제가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하고 외국 사절을 만나는 장소로도 이용했어요. 중명전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역사 현장이기도 해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1953_4129.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1953_4129.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1953_4129.png" /><br style="clear:both;" />덕수궁 석조전(서울 중구)</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17:39:26+09:00</dc:date>
</item>


<item>
<title>개항장에 들어선 서양식 건축물</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modernbuilding/3</link>
<description><![CDATA[<div>근대 건축물들이 가장 먼저 들어서기 시작한 곳 중 하나는 부산, 인천 같은 개항장이었어요. 강화도 조약으로 가장 먼저 외국 문물이 들어온 곳이기 때문이지요. 부산은 강화도 조약으로 맨 처음 개항한 곳이지요. 일제가 개항 이후 경제적 수탈과 군사적 침략을 위한 발판으로 삼은 곳이에요.</div><div><br /></div><div>일제는 침략을 위한 기반을 닦으며 여러 가지 근대 시설과 건축물을 세웠어요. 먼저 부산 초량에 있는 옛 왜관(倭館) 터에 일본인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곳을 만들었어요. 일본식 가옥도 많이 지어졌어요.</div><div><br /></div><div>일본은 이 지역을 조선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며 살 수 있는 곳(조계지)으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이곳에 영사관, 경찰서, 재판소 등도 세웠지요. 한편 전국 곳곳에 철도가 놓였고, 일본은 우리나라의 물자들을 실어가기 위해 부산의 항구를 정비했어요. 항구 주변에도 서서히 여러 가지 근대 시설과 건축물들이 들어섰어요.</div><div><br /></div><div><br /></div><div><br /></div><div><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1802_3216.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1802_3216.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1802_3216.png" /><br style="clear:both;" />부산 근대 거리(재현)</div><div>부산근대역사관</div><div><br /></div><div><br /></div><div><br /></div><div>부산과 함께 인천(제물포) 개항장에도 근대 건축물이 들어섰어요. 외국의 외교사절과 상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인천의 모습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일본이 조계지를 만들었고, 뒤이어 청도 그 옆에 조계를 만들었어요.</div><div><br /></div><div>당시 지어진 옛 일본 18은행(인천개항장근대건축전시관), 답동 성당, 옛 인천 우체국(인천 중동우체국) 등은 지금도 남아 있어 개항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주고 있어요. 3층짜리 벽돌 건물인 대불 호텔은 얼마 전 복원되기도 했어요.</div><div>일제는 부산, 인천 등 개항장 중심지에 수탈을 위한 시설과 건축물을 세워 일본인의 거리로 만들었어요. 한국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하나 둘 빼앗아 간 거예요.</div><div><br /></div><div>현재는 100여 년 전에 세워진 건축물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그 터만 남아 있지요. 하지만 부산과 인천 등에 여러 전시관이 만들어져 개항 당시 역사를 알 수 있어요. 부산 근대역사관은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 지점이었던 곳이고, 인천개항박물관도 옛 인천 제1은행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그 의미가 더욱 크지요.</div><div><br /></div><div><br /></div><div><br /></div><div><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1837_0587.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1837_0587.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1837_0587.png" /><br style="clear:both;" />옛 인천일본제1은행지점(현재 인천개항박물관, 인천 중구)</div>]]></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17:33:07+09:00</dc:date>
</item>


<item>
<title>근대 건축물이 들어서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modernbuilding/2</link>
<description><![CDATA[<p>개항 이후 근대 문물이 들어오면서 사람들의 생활과 거리 모습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개항장을 비롯한 주요 도시 모습도 점점 변해갔어요.</p><p><br /></p><p>외국인들이 개항장 거리에 많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또 우리나라 사람들도 긴 머리를 자르고, 한복 대신 양복과 양장을 입고, 버선 대신 양말도 신었지요. 성냥, 통조림 등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고,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도 생겼어요. 레스토랑에서는 서양 요리를 맛볼 수 있게 되었지요. 도로에는 마차 대신 전차가 달리기 시작했고, 전국 곳곳에 철도가 놓였어요.</p><p><br /></p><p>서양 사람들이 들어오고, 서양의 기술과 문화가 들어오면서 서양식 건축물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특히 서양 선교사들은 선교를 위해 성당이나 교회, 학교를 지었는데, 이 때 지어진 건물들이 대부분 서양식이었어요.</p><p><br /></p><p>이밖에도 은행이나 호텔, 철도역, 세관 건물과 같이 근대적인 시설도 들어섰어요. 심지어 궁궐에도 서양식 건물이 들어섰고, 서울은 물론 개항장인 부산, 원산, 인천 등의 모습도 서서히 변해갔어요.</p><p>그런데 이런 변화가 좋은 것만은 아니었어요. 근대 건축물들은 서양 및 일본 등 제국주의 열강이 조선에서 효과적으로 경제적 이권을 빼앗아가기 위한 발판이기도 하였어요. 그래서 근대 건축물에는 새로운 변화와 동시에 우리 역사의 아픔이 담겨 있는 것이 많아요.</p><p><br /></p><p>지금부터 근대 건축물을 살펴보며, 그 속에 담긴 역사 이야기를 알아볼까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1437_1768.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1437_1768.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1437_1768.png" /><br style="clear:both;" /> </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17:30:44+09:00</dc:date>
</item>


<item>
<title>변화와 아픔을 담고 있는 근대 건축물</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modernbuilding/1</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1306_1211.png" title="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1306_1211.png" alt="0a02a103232cca635cffc3e3f43d1888_1788251306_1211.png" /><br style="clear:both;" />명동성당(서울 중구)</p><p><br /></p><p><br /></p><p><br /></p><p>“벽돌로 지은 건축물이 여기저기 들어서고 있다네.”</p><p><br /></p><p>“서양식 건축물이 곳곳에 들어서는 것을 보니 새로운 세상이 오나 보네.”</p><p><br /></p><p>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을 한 이후 조선은 서양의 여러 나라와도 통상 조약을 맺었어요. 그러면서 조선에도 서양 문물이 들어오고, 서양식 건축물도 곳곳에 들어섰지요. 성당, 교회, 학교, 은행, 백화점, 호텔, 철도 역사, 세관 건물 등이 들어섰어요.</p><p>서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도시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갔을까요? 이런 건축물에는 어떤 역사가 담겨있을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17:28:41+09:00</dc:date>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