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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한국의 역사, 한국사, 코리아히스토리월드, 1555-0001 &amp;gt; 근대사 &amp;gt; 근대 시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moderninstallation</link>
<language>ko</language>
<description>근대 시설 (2026-09-01 13:00:44)</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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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역사 속 작은 이야기: 백정에서 의사가 된 박서양</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moderninstallation/5</link>
<description><![CDATA[<p>1893년 11월 1일 에비슨 선교사가 제중원을 새로 맡게 되었어요. 그는 병원도 새롭게 단장하고, 중단했던 의학 교육도 다시 시작했어요. 어느 날 에비슨은 다급한 요청을 받고 백정 마을로 왕진을 가게 되었어요. 그곳에는 한 백정이 장티푸스를 앓고 있었어요.</p><p><br /></p><p>에비슨의 발 빠른 조치로 백정은 위험한 고비를 넘겼어요. 에비슨은 그 백정이 완전히 나을 때까지 규칙적으로 그의 집에 찾아가 진찰을 하고 꼼꼼하게 살펴주었어요. 그 백정의 이름은 박성춘이었어요.</p><p><br /></p><p>“천한 백정인 제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대접 받습니다.”</p><p><br /></p><p>박성춘은 양반이건 백정이건 개의치 않고 정성껏 치료해주는 에비슨에 감명을 받았고, 이 인연을 계기로 에비슨을 믿고 따랐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박성춘은 에비슨을 찾아가 간절히 부탁하였어요.</p><p><br /></p><p>“우리 아들 서양이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박사님께서 계시는 병원에서 의사 공부 좀 시켜 주세요.”</p><p><br /></p><p>에비슨은 박서양을 제중원으로 데려와 아버지의 부탁대로 서양 의학 공부를 시켰어요. 의학 공부가 매우 힘들고 고단했지만, 그는 의사가 진정한 사람의 길을 가는 것이라 여기고 열심히 노력했어요.</p><p>1908년 6월 3일 드디어 제중원 의학교의 첫 졸업식이 왔어요. 알렌이 조선에서 의학교육을 시작한지 22년 만이었고, 에비슨이 의학교육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얻은 첫 결실이었어요. 장차 의사가 될 일곱 명의 졸업생들이 모습을 나타냈어요.</p><p><br /></p><p>이들이 바로 조선 최초의 의사들이에요.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쏟아져 나왔어요. 박서양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아버지에게 감격의 소감을 말했어요.</p><p><br /></p><p>“백정의 신분으로 제중원 의학교에 입학해서 의학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그런데 내가 정말 의사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아요.”</p><p><br /></p><p>졸업식에 참석한 박성춘은 감동에 북받쳐 눈물을 글썽였어요.</p><p><br /></p><p>“우리 서양이가 드디어 의사가 되는구먼.”</p><p><br /></p><p>백정이었던 아버지의 설움을 박서양은 익히 잘 알고 있었어요. 조선에서 백정은 그야말로 개, 돼지만도 못한 존재였어요. 백정이 지나면 냄새가 난다고 피했고, 심한 경우엔 침을 뱉는 사람도 있었지요.</p><p><br /></p><p>“제중원이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어요. 제중원 덕분에 의사의 꿈을 꿀 수 있었고, 의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어요.”</p><p>1909년 말에 박서양은 제중원 의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p><p><br /></p><p>“의사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병을 고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환자에 대한 책임감,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마음 없이는 진정한 의사가 될 수 없습니다.”</p><p><br /></p><p>박서양은 해부학 등을 가르치며 외과 환자를 진료했어요. 또 학생들에게 자신이 배웠던 제중원 의학교 정신을 전하고자 노력했어요. 이후 박서양은 의사로서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간도로 이주하여 구세병원과 숭신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에 헌신하였어요. 그는 언제 어디서나 환자에 대한 책임을 다할 뿐이라고 생각하였어요. 그것이 제중원의 참된 정신이자, 진정한 의사의 마음가짐이라 믿었어요.</p><p><br /></p><p>내가 만약 100여 년 전에 살고 있었다면 새로 들어온 서양의 문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지금 보면 시시하다는 생각마저 들겠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놀랍고 신기하지 않았을까요? 지금 우리 주변에 나를 놀랍게 하는 새로운 문물은 없나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13:00:44+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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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제중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 병원</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moderninstallation/4</link>
<description><![CDATA[<p>1885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이 세워졌어요. 광혜원은 어떻게 세워졌을까요?</p><p><br /></p><p>갑신정변 때의 일이었어요. 경사스러운 우정국 개국 축하 연회장에서 민영익은 자객의 칼을 맞고 크게 부상을 입었어요. 민영익은 당시 권력의 중심이었던 명성 황후의 조카로 조선 정계 최고 실력자 중 한 사람이었지요.</p><p>“우정국 연회가 거의 끝날 무렵 어떤 사람이 뒤쪽에서 불이 났음을 알렸다. 그런데 갑자기 한 사람이 밖에서 부상당한채 쓰러져 있었다. 모두 놀라 자세히 보니 민영익이었다.”</p><p><br /></p><p>그런데 우편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고종은 화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p><p><br /></p><p>이때 조선의 외교 고문 독일인 묄렌도르프가 크게 다친 민영익을 자신의 집에 옮겼어요. 묄렌도르프는 민영익을 살려야만 했어요.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사람이 바로 미국인 선교사이자 의사인 호러스 알렌(Horace N. Allen)이었어요. 당시 선교사들은 대부분 의사를 겸임하고 있었지요.</p><p><br /></p><p>알렌이 묄렌도르프의 집에 도착해보니 한의사 여러 명이 민영익을 둘러싼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어요. 민영익은 출혈이 심했고, 정신을 잃어 치료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민영익은 알렌의 침착한 응급 수술과 정성 어린 치료 덕에 목숨을 구하게 되었어요. 민영익은 매우 고마워하며 알렌을 고종과 왕후 민씨(훗날의 명성황후)에게 소개시켜 주었어요.</p><p>민영익을 살렸다는 소문이 퍼지자 알렌의 집에는 아픈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어요. 왕실과 정부 관리들은 물론 백성들의 관심까지 한 몸에 받게 되었지요. 조선인들에게 서양 의술의 우수성을 확실하게 보여준 셈이었어요.</p><p><br /></p><p>알렌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동안 고민에 빠졌어요. 바로 집이 좁고 의약품도 부족했기 때문이었어요. 마침 고종도 서양식 병원 설립에 관심이 있었어요. 이에 알렌은 고종에게 편지를 써 국립 병원을 세울 것을 건의하였어요.</p><p><br /></p><p>마침내 고종은 갑신정변 뒤에 텅 비어 버린 홍영식의 집을 병원으로 쓰라고 허락했어요. 알렌은 집을 말끔하게 단장해 입원실, 진찰실, 수술실, 약국을 갖춘 병원으로 만들었어요. 처음 이 병원의 이름은 광혜원이었으나 며칠 뒤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 병원이 세워진 것이지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5150af1e0f64374eeb09dbe2522f6ebf_1788235111_9701.png" title="5150af1e0f64374eeb09dbe2522f6ebf_1788235111_9701.png" alt="5150af1e0f64374eeb09dbe2522f6ebf_1788235111_9701.png" /><br style="clear:both;" />광혜원과 알렌의 검안경</p><p>국사편찬위원회, 문화재청</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12:58:45+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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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우정총국, 근대 우편 사업이 시작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moderninstallation/3</link>
<description><![CDATA[<p>홍영식은 평소 나라에서 편지나 물품 등을 운송하는 우편 사업에 관심이 많았어요. 임금의 명으로 일본과 미국에 갔을 때 우체국을 찾아 직접 살펴보고, 우편 제도에 대해 알아보았어요. 그리고 우표와 편지 봉투도 얻어 왔지요.</p><p><br /></p><p>홍영식은 임금인 고종에게 보고를 올렸고, 고종도 큰 관심을 보였어요. 1884년 4월 22일 마침내 고종은 홍영식을 책임자로 임명하며 우편 사업을 시작하라고 명하였어요.</p><p><br /></p><p>“여러 나라와 물건을 사고팔게 되면서 소식 전할 일도 많아졌다. 우정총국을 세울 것이니, 그대가 우편 사업을 맡아서 하라.”</p><p><br /></p><p>홍영식은 차근차근 우편 사업을 준비하였어요. 필요한 관리를 뽑고, 깃발도 만들고, 우편 사업에 대한 규칙을 책으로 만들었어요.</p><p><br /></p><p>1884년 11월 18일, 마침내 왕실 의약에 관한 일을 맡아 보았던 전의감의 부속 건물 자리에 우리나라 최초의 우체국인 우정총국이 세워졌어요. 조선에서도 서양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근대식 우편 사업이 시작된 것이지요.</p><p>이제 조선도 정부의 관리 아래 편지 따위의 서신이나 소포 등의 물품을 다른 지역으로 체계적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어요. 예전 방식의 통신 수단에 비해 훨씬 발전된 것이었지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5150af1e0f64374eeb09dbe2522f6ebf_1788233862_4813.png" title="5150af1e0f64374eeb09dbe2522f6ebf_1788233862_4813.png" alt="5150af1e0f64374eeb09dbe2522f6ebf_1788233862_4813.png" /><br style="clear:both;" /> </p><p><br /></p><p><br /></p><p>그런데 우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편지나 소포를 전달하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이들을 체전부 또는 우체부라 하였어요. 당시 우체부는 우편 가방을 한쪽에 메고 먼 거리도 걸어 다니며 편지나 소포를 배달했어요. 머리에는 벙거지를 쓰고 다녀서 ‘벙거지꾼’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어요.</p><p><br /></p><p>“우정총국을 당장 없애 버려라!”</p><p>그런데 우편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고종은 화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p><p><br /></p><p>우정총국이 만들어진 것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렸을 때,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의 개화파가 갑신정변을 일으켰기 때문이에요. 갑신정변으로 우정총국은 불에 타버렸고, 고종은 개화파가 정변을 일으킨 것에 큰 충격을 받고 우편 사업을 중단시켰지요. 그러다 1893년 전우총국이 세워지면서 다시 우편 업무가 시작되었지요.</p><p><br /></p><p>우정총국은 우리나라 최초의 우체국이자 갑신정변이라는 역사 현장의 아픔을 동시에 간직한 곳이 되었어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12:38:01+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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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근대 무기를 만드는 공장을 세우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moderninstallation/2</link>
<description><![CDATA[<p>개항 이후 조선 정부는 서양 기술을 도입하여 근대적 국가로 나아가고자 노력하였어요. 조선은 신식 무기를 만드는데 관심을 기울였어요. 이에 1881년 일본에 조사시찰단, 청에 영선사를 보내어 서양의 앞선 문물과 과학기술을 배워오도록 하였지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5150af1e0f64374eeb09dbe2522f6ebf_1788233486_1931.png" title="5150af1e0f64374eeb09dbe2522f6ebf_1788233486_1931.png" alt="5150af1e0f64374eeb09dbe2522f6ebf_1788233486_1931.png" /><br style="clear:both;" />기기국 번사창(서울 종로구)</p><p>근대식 무기를 제작하던 기기창 건물로 1884년(고종 21)에 지어졌어요. ‘번사’라는 말의 뜻은 흙으로 만든 틀에 금속 용액을 부어 만드는 것을 말해요.</p><p>문화재청</p><p>조선은 그들이 조사하고 배워온 내용을 바탕으로 청에서 데리고 온 기술자들과 함께 1883년(고종 20) 지금의 서울 삼청동에 신식 무기를 만드는 공장인 기기창을 세웠어요. 그리고 김윤식의 인솔 아래 청에서 기술을 배워온 기술자들과 함께 무기 제조를 시작하였어요.</p><p><br /></p><p>기기창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무기 공장이며, 동시에 근대 공장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 근대 시설이에요.</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5150af1e0f64374eeb09dbe2522f6ebf_1788233550_4866.png" title="5150af1e0f64374eeb09dbe2522f6ebf_1788233550_4866.png" alt="5150af1e0f64374eeb09dbe2522f6ebf_1788233550_4866.png" /><br style="clear:both;" /> </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12:32:55+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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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생활 모습의 변화를 가져온 근대 시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world/moderninstallation/1</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world/data/editor/2609/5150af1e0f64374eeb09dbe2522f6ebf_1788233225_2099.png" title="5150af1e0f64374eeb09dbe2522f6ebf_1788233225_2099.png" alt="5150af1e0f64374eeb09dbe2522f6ebf_1788233225_2099.png" /><br style="clear:both;" />서울 우정총국(서울 종로구)</p><p><br /></p><p><br /></p><p><br /></p><p>“제중원이라고? 그럼 우리 같은 사람들도 그 의원 나리한테 치료를 받을 수 있겠구먼!”</p><p><br /></p><p>“그렇다마다! 제중원은 아픈 사람이면 누구나 받아주는 곳이라네. 왕이든 백정이든 상관없이 말일세.”</p><p><br /></p><p>널리 백성을 구제하라는 뜻을 지닌 제중원은 개항기에 세워진 서양식 병원이었어요. 제중원은 왜 세웠을까요? 이 시기 제중원 외에 다른 근대 시설로는 무엇이 있을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9-01T12:27:39+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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