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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부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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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부여 유적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 부여
성왕, 사비로 도읍을 옮기다
성왕의 원대한 꿈이 담긴 계획도시 사비
백제의 마지막 모습이 새겨진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
역사 속 작은 이야기: 낙화암과 삼천 궁녀이야기는 진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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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마지막 도읍지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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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지 오층석탑(충남 부여군)“우리의 도읍 한성을 고구려에게 빼앗기고 얼마나 서러웠던가. 우리가 다시 강국이 되어 도읍을 옮기니 나라 이름도 바꾸면 어떠하겠는가?”“백제는 원래 부여에서 시작된 나라이니 ‘남부여’라 하면 어떠하올런지요?“그렇다. 우리는 북방의 강국이었던 부여의 후손이다. 지금부터 우리나라를 ‘남부여’라 부르겠다.”강한 백제의 부활을 꿈꾸었던 성왕은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도읍을 옮겼어요. 부여는 다시 강국이 된 백제의 도읍지로 적당했을까요? 그곳에는 어떤 문화유산들이 남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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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왕, 사비로 도읍을 옮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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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첫 도읍지는 한강가의 한성(위례성)이었어요. 500여 년 가까이 고구려와 신라와 경쟁하며 발전하던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받아 한성을 빼앗기고 국왕마저 목숨을 잃었어요. 결국 백제는 고구려의 공격을 피해 급히 도읍을 웅진으로 옮겨야만 했어요(475년).웅진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은 금강(백마강)에 의지하고 있어 외적을 막기에 유리한 곳이었어요. 반면에 땅이 좁고 금강이 자주 넘쳐흘러 나라를 다스리기에 불편함도 많았어요.공산성과 공주 일대 모습(충남 공주시)무령왕을 이어 백제를 이끌던 성왕은 강성해진 나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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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왕의 원대한 꿈이 담긴 계획도시 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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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왕은 사비에 부소산성을 중심으로 나성을 쌓았어요. 나성은 평야 지대에 있는 사비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이에요. 나성은 흙 위에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놓고 다시 흙을 덮어 다지는 부엽공법으로 쌓았어요. 나뭇잎과 나뭇가지는 흙과 흙을 붙잡아 주고, 빗물이 빠지는 통로 역할을 해 성벽이 쉽게 무너지지 않게 해 주었어요.이중으로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나성은 당시 고구려와 신라의 도성에는 없던 시설이었어요. 나성은 사비가 어떤 곳보다 더 안전하고 살기에 좋은 장소라는 것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었어요.왕궁의 뒤편에 위치한 부소산성은 외적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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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마지막 모습이 새겨진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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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가 멸망한 후 융성했던 사비의 많은 것들이 파괴되고 사라졌어요. 웅장했던 궁궐도, 공을 들여 만들었던 절과 탑도 모두 사라졌어요. 다만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지금도 남아 세련된 백제의 멋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정림사는 성왕이 사비로 도읍을 옮길 때 세운 절이에요.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왕궁의 정남쪽 도시 한가운데에 절을 세웠어요. 정림사 한가운데 만든 5층 석탑은 높이가 8m가 넘는 아주 큰 탑이에요. 익산 미륵사지석탑과 함께 지금까지 남아있는 백제 석탑 중 하나에요.정림사지 5층 석탑과 대당평백제국비명 탁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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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낙화암과 삼천 궁녀이야기는 진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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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서 바라본 낙화암과 낙화암 꼭대기에 있는 백화정(부여군청)부소산성의 한편은 백마강에 의지하고 있어요. 부소산과 백마강이 만나는 곳에 낙화암이란 높은 절벽이 있어요. 낙화암에는 이야기 하나가 전해져 오고 있어요.“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언정 외적의 손에 죽지 않겠다.”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었어요. 이때 성안에 있던 후궁과 궁녀들이 부소산성으로 도망을 가다 큰 바위에 이르렀어요. 궁녀들은 외적에게 희롱당하는 것을 거부하고 치마를 뒤집어쓰고 백마강으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어요.이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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