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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 생활 터전, 부여 송국리 유적 부여 송국리 유적(충남 부여군)
부여 송국리 유적, 청동기 시대 마을을 담다
집의 크기가 커지고 울타리도 만들다
송국리형 토기라 불리는 민무늬 토기
돌로 무덤을 만들다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청동기 시대 유적지에 왜 간석기가 발견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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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 생활 터전, 부여 송국리 유적 부여 송국리 유적(충남 부여군)
부여 송국리 유적(충남 부여군)“자네, 빗살무늬 새겨 넣지 않나?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토기가 깨져 쓸모가 없다네.”“자네, 아직 모르는군. 이제 빗살무늬를 일부러 새겨 넣을 필요가 없다네. 그렇게 하지 않아도 훨씬 튼튼한 토기를 만들 수 있다네.”부여 송국리 유적지에 가면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알 수 있는 유적과 유물이 있어요. 과연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했을까요? 우리 함께 부여 송국리 유적으로 떠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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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08-24
5
부여 송국리 유적, 청동기 시대 마을을 담다
충청남도 부여 송국리 유적에 가면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알 수 있어요. 금강 유역에 있는 부여 송국리 유적은 낮은 구릉 지대로 주변에는 넓은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지요.이 유적은 1975년 국립중앙박물관의 발굴조사로 알려졌어요. 1997년까지 여러 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결과 다수의 집터와 무덤들이 발견되었어요. 이 유적에서 조사된 움집은 평평하고 네모난 모양의 얕은 움집과 평평하고 동그란 모양의 깊은 움집이었어요. 또 이곳은 나무 울타리나 도랑으로 둘러싸여 있었지요. 이것으로 보아 이곳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집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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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08-24
4
집의 크기가 커지고 울타리도 만들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강가에 움집을 짓고 살았어요. 이와는 달리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언덕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어요. 바닥의 흙은 불에 태워 단단하게 만들고, 짚으로 엮어 만든 자리나 나무껍질, 널빤지 등을 깔아 그 위에서 생활하였지요. 흙바닥이 아닌 ‘방바닥’이 생긴 셈이에요. 벽에는 널빤지를 둘러 세우거나 나무껍질을 대어 습기를 막았어요.주거지문화재청부여 송국리 청동기 마을 유적에는 둥근 모양의 집터와 네모난 모양의 집터가 있어요. 둥근 모양의 집터는 바닥을 깊이 파서 만들었어요. 특이하게 그 구덩이의 양쪽 끝에 기둥 구멍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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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08-24
3
송국리형 토기라 불리는 민무늬 토기
부여 송국리 유적 집터에서 민무늬 토기가 출토되었어요. 청동기 시대 부여 송국리 사람들은 민무늬 토기를 만들어 사용하였어요. 민무늬 토기는 겉면에 빗살무늬를 새기는 대신 아무 무늬도 넣지 않고 밋밋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빗살무늬를 새긴 빗살무늬 토기와 비교되지요.빗살무늬 토기는 토기를 굽는 도중에 표면이 갈라져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빗살무늬를 새겨 만들었어요. 민무늬 토기는 이제 굳이 빗살무늬를 새기지 않아도 갈라져 터지지 않을 만큼 높은 온도에서 토기를 굽는 기술을 터득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또 민무늬 토기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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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08-24
2
돌로 무덤을 만들다
만약 고대 사람들의 무덤이 지금까지 전해지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삼국 시대 이전 우리 역사를 거의 알지 못했을지 몰라요. 삼국 시대 이전의 역사를 알려주는 기록은 매우 적기 때문이지요. 이 땅에 살았던 고대의 사람들도 지금 우리처럼 기뻐하고 사랑하며 또 갈등을 빚고 슬퍼하며 살았을 텐데 말이지요.옛날의 무덤은 묻히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쓰던 물건들과 무덤에 넣으려고 만든 특별한 물건들을 함께 묻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무덤 속 유물들을 통해 무덤의 주인공과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의 모습을 함께 상상해 볼 수 있어요.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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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08-24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청동기 시대 유적지에 왜 간석기가 발견될까?
충청남도 부여 송국리 유적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이에요. 그런데 이 유적지에서 출토되는 유물에는 청동기만 있는 게 아니고 다양한 종류의 간석기도 함께 발견되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오랫동안 사람들은 돌과 나무, 짐승과 생선의 뼈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였어요. 도구를 만드는 솜씨는 점점 발달하고, 지식은 점점 쌓여 갔지요. 그러다 마침내 사람들은 금속을 발견했어요. 어느 순간 우연히 금속이 불에 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러면 어떤 모양이 만들어지고, 다시 그것을 식혀 모양을 굳힐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요.그러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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