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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에 의병이 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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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순창 등에서도 의병이 일어나다
평민 신돌석이 의병을 이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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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항일 정신이 깃든 의병 운동 유적
제천 자양영당(충북 제천시)문화재청“한 나라의 왕비를 시해하고, 그것도 모자라 풍속마저 없애려 하다니, 나쁜 무리들 같으니. 이제 못참겠어. 뭐래도 해야겠네.”“동감일세. 그렇지 않아도 지금 유인석이 의병을 모으고 있다는데. 그럼 자네 나와 함께 제천으로 가지 않겠나?”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하여 유인석은 제천의 장담에서 의병을 일으킬 뜻을 알렸어요. 이에 의병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제천으로 모여들었지요. 과연 제천에서 어떤 의병 활동이 펼쳐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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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09-01
6
을미년에 의병이 일어나다
1895년 조선의 국모인 명성 황후가 일본인들 칼에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어요. 이를 을미사변이라고 해요. 조선 사람들은 크게 분노하였어요. 일본의 걸림돌이 되었던 인물이 제거되자, 일본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골라 내각을 꾸렸어요. 그리고 새로운 개혁을 추진하도록 하였지요.그 중에는 상투를 잘라 서양식으로 머리를 짧게 자르라는 단발령이 있었어요.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신체·머리털·살갗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서, 감히 훼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라고 생각하였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단발령을 살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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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09-01
5
제천에서 의병이 일어나다
1889년 유중교라는 한 유학자가 충청북도 제천에 있는 장담 마을로 이사를 했어요. 그러자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이 마을로 거처를 옮겼어요. 유중교는 화서 이항로의 학문을 따르는 대표적 유학자였지요. 이들을 화서학파 유학자라 하지요.유중교는 자신의 집에서 학문을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쳤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집을 ‘장담서사’(장담 마을에서 학문을 배우고 가르치는 곳)라 불렀지요. 장담서사에서 수업이 열릴 때면 제천을 비롯한 단양‧충주 일대의 많은 선비들이 모여들었어요.유중교가 죽자 의암 유인석이 이곳으로 와 장담서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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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9-01
4
홍성, 순창 등에서도 의병이 일어나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은 다시 분노로 들끓었어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분위기였지요.“을사늑약을 취소하라!”“나라를 되찾아야 한다!”전국에서 을사늑약의 무효를 외치는 소리가 거세게 일어났어요. 또다시 나라를 구하려는 의병이 방방곡곡 들불처럼 일어났어요. 이때의 의병을 을사늑약 때문에 일어났다고 하여 ‘을사의병’이라고 불러요. 대표적인 의병장으로 민종식, 최익현, 신돌석이 있지요.민종식은 충청남도 홍주(지금의 홍성)에서 의병을 일으켰어요. 홍주 의병은 대포로 무장하고 홍주성을 점령했어요. 그곳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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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9-01
3
평민 신돌석이 의병을 이끌다
1906년 스물아홉 살이 된 신돌석에게도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던 신돌석은 그해 자기 고향인 경상북도 영해(지금의 영덕군 영해면)에서 100여 명의 장정을 이끌고 의병을 일으켰어요. 그는 ‘영릉 의병’이라 의병의 이름을 짓고 의병장이 되었지요.신돌석 생가(복원, 경북 영덕군)문화재청신돌석이 의병을 일으킨 뒤 가장 필요했던 것은 근대 무기인 총이었어요. 일부 사냥꾼들에게 총은 있었지만, 최신 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을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요. 우선 신돌석은 신무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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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9-01
2
역사 속 작은 이야기: 13도 창의군과 신돌석
1907년 일본은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 황제를 강제로 내쫓았어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흥분한 백성들은 친일 단체와 경찰서를 습격하고 친일파 이완용의 집에 불을 질렀어요.“남의 나라 황제를 제멋대로 쫓아내다니, 천하의 날강도 같으니.”그러나 일본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한 제국 군대마저 해산시켜 버렸어요. 한 나라의 국민을 지켜 줄 군대조차 없는 나라라니요.1907년 군대가 해산되자 쫓겨난 많은 군인들은 의병 부대에 들어갔어요. 잘 훈련받은 군인이 성능이 뛰어난 근대식 무기를 가지고 의병 부대에 합류하자 의병의 조직력과 전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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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9-01
1
조선의 개혁을 외친 동학 농민 운동
우금치와 동학 혁명군 전적비(충남 공주시)“동학 농민군이 다시 봉기한 까닭은 무엇인가?”“너희 일본군이 예고 없이 우리 도성을 침입하여 왕궁을 차지하고 임금을 놀라게 했기에 너희들과 싸워 잘못을 묻고자 했다.”“우금치에서 전투를 벌인 이유는 무엇인가?”“공주는 산에 막히고 강에 둘러싸여 있어 일본군이 쉽게 쳐들어오지 못할 곳이다. 하지만 일본군이 먼저 공주를 차지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우금치에서 전투를 벌였다.”동학 농민군을 이끌던 전봉준은 체포된 후 재판에서도 자기 뜻을 당당히 밝혔어요. 전봉준이 일본군에 맞서 싸운 우금치는 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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