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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옥
권기옥
좌측 날개
우측 날개
권기옥
독립을 위해 하늘을 난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
하늘을 나는 꿈을 꾸다
송죽회에 가입하고, 만세 운동에 참여하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독립 자금을 모으다
윈난항공학교에 입학하다
중국 공군으로 활약하다
교관으로 활동하고, 한국애국부인회회에 참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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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위해 하늘을 난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
권기옥숭의여자고등학교“왜 비행사가 되고 싶은 것이오?”“비행기에 폭탄을 싣고 날아가, 일왕이 사는 궁성을 폭파하고 싶습니다.”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위해 비행사가 되고자 한 이 사람이 바로 권기옥이에요. 그녀는 어떻게 비행사가 되었을까요? 과연 그녀의 꿈은 이루어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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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09-01
6
하늘을 나는 꿈을 꾸다
권기옥은 1901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어요.“또 딸이야. 갈네라고 불러야겠군.”둘째 아이도 아들이 아닌 딸이 태어나자, 그녀의 아버지는 ‘갈네’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가라’는 뜻으로 얼른 죽으라는 의미였지요. 당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얼마나 심했는지, 여성을 얼마나 하찮게 여겼는지 엿볼 수 있어요.권기옥의 집안은 원래 부자였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노름에 정신이 팔려 그 많던 재산을 날렸지요. 살 집도 없어 남의 집 문간방에 살아야 했어요. 11살밖에 안 된 그녀도 공장에 취직해 돈을 벌어야 했어요. 학교에 다니는 것은 꿈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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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9-01
5
송죽회에 가입하고, 만세 운동에 참여하다
1919년 졸업반이던 권기옥은 숭의여학교 교사인 박현숙의 권유로 비밀조직인 송죽회에 가입하고 독립운동을 펼치기 시작했어요. 송죽회는 숭의여학교의 교사와 학생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여성 독립운동 단체예요. 절개를 상징하는 소나무의 ‘송’자와 대나무의 ‘죽’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지요.송죽회에 가입한 권기옥은 3·1 운동을 준비하며 일본인 기숙사 사감의 눈을 피해 태극기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가 만세 운동을 펼쳤어요. 하지만 교사 박현숙에 이어 그녀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유치장에 3주 동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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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09-01
4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독립 자금을 모으다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세워졌어요.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려니 많은 자금이 필요했어요. 권기옥도 숭의여학교 학생들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모았어요.“제 머리카락을 잘라 마련한 돈이에요. 얼마 안 되지만 독립운동에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이건 저희 어머니께서 가락지를 팔아 마련해 주신 돈이에요.”학생들은 독립을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마련한 돈을 가져왔어요. 권기옥은 모금한 돈을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보냈어요. 그녀는 1919년 10월 평양의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어요. 거꾸로 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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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09-01
3
윈난항공학교에 입학하다
상하이로 건너간 권기옥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주요 인물들을 만났어요. 비행사 양성의 필요성을 알고 있던 노백린과 안창호를 만나면서 그녀의 꿈은 더욱 확실해졌어요. 비행기에 폭탄을 싣고 가 일왕이 살고 있는 궁에 폭탄을 던지는 꿈 말이에요. 그래서 항공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심했어요.안창호는 독립운동에 비행기가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했어요.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비행하며 중요한 정보를 전할 수 있을 테니까요. 또 한국인 비행사가 하늘을 나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독립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리라는 확신이 있었지요. 훗날 임시 정부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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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9-01
2
중국 공군으로 활약하다
1935년 드디어 그녀의 꿈을 이룰 기회가 왔어요. 중국 공군이 실력을 선전하고 중국 청년들이 공군에 지원하도록 하기 위한 비행을 계획했거든요. 선전 효과를 더욱 높이기 위해 여성 비행사가 비행하도록 했지요. 권기옥과 또 한 명의 여성 비행사가 뽑혔어요.선전 비행을 준비 중인 권기옥(왼쪽에서 두 번째)숭의여자고등학교“드디어 일왕이 사는 궁성에 폭탄을 퍼 부울 수 있는 기회가 올지도 모르겠군.”권기옥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렸어요. 그날이 오길 손꼽아 기다렸지요. 하지만 그녀의 꿈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비행기 프로펠러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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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09-01
1
교관으로 활동하고, 한국애국부인회회에 참여하다
일본이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키고 중국을 공격하자 그녀는 남편과 함께 충칭으로 옮겨갔어요. 충칭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마지막 청사가 있던 곳이지요. 그곳에서 중국 국민당 정부의 육군참모학교 교관으로 활동하였어요. 영어와 일어를 가르치고 일본인을 구별하는 방법도 가르쳤다고 해요. 비행사로서 독립 투쟁을 벌일 수는 없었지만, 이런 활동 모두 우리의 독립을 위한 것이었지요.1943년에는 다시 만들어진 한국애국부인회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그녀는 사교부장을 맡아 여러 갈래로 나뉜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하나로 모으고 독립의식을 높이는 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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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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