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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의학서적의 최고로 평가받는 동의보감
허준박물관(서울 강서구)선조 : “왕자의 병이 깊은데, 선뜻 나서는 의원이 없으니 이를 어이한단 말인가?”허준 : “전하! 제가 온 힘을 다해 치료해 보겠습니다.”조선 시대 선조 임금 때 왕자가 천연두에 걸려서 생사를 넘나들었어요. 당시 허준이라는 의원이 용감하게 나서서 치료를 하였고, 결국 왕자의 목숨을 구하였지요. 그 덕분에 허준은 선조 임금으로부터 높은 벼슬까지 받게 되었어요.이처럼 허준은 뛰어난 의술로 유명했지만, 다른 업적으로 더욱 유명했어요. 그 업적이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지금부터 허준의 일생을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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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08-30
5
허준이 동의보감을 편찬하다
1539년(중종 34) 허준은 경기도 양천현(지금의 서울시 강서구)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평안도 용천 군수를 지낸 허론으로, 허준은 그의 서자였어요. 서자는 정식 부인이 아닌 첩에게서 낳은 아들을 말해요. 그런데 당시 서자는 신분 차별이 심해 관직에 나가기가 어려웠지요.어려서부터 의술을 익힌 허준은 학자 유희춘의 추천으로 궁궐의 의약을 맡아보던 내의원에 들어갔어요. 조선 시대에는 내의원에서 의술에 종사하던 벼슬아치들을 내의라고 하는데, 이들은 기술관을 선발하는 과거 시험인 잡과를 통과해야만 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때로는 의술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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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08-30
4
임진왜란 중에 집필이 시작된 동의보감
『동의보감』은 원래 임진왜란(1592∼1598) 중인 1596년에 선조의 명으로 집필이 시작되었어요. 내의원에 편찬국을 두고 허준을 비롯해 양예수, 이명원, 김응탁, 정예남 등과 민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양반 의원이었던 정작 등이 공동으로 편찬 작업에 참여했어요. 당시 이들은 세 가지 편찬 원칙을 만들었어요.첫째, 병은 잘못된 생활 습관 때문에 생긴다. 그 습관을 먼저 고친 뒤에 약물치료를 한다.둘째, 처방이 많고 어려우니, 요점을 잘 간추린다.셋째, 우리 땅에서 나는 약재는 한글로 적어 백성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한다.그러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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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8-30
3
동의보감의 내용
허준이 14년 동안 노력하여 완성한 『동의보감』은 어떤 책일까요? ‘동의(東醫)’란 중국의 동쪽에 있는 조선의 의학을 뜻해요. 이전에는 조선에서도 중국 의학의 전통을 많이 따랐는데, 『동의보감』이 완성됨으로써 우리 나라의 독자적인 의학 체계를 마련하게 되었지요.그리고 ‘보감(寶鑑)’이란 보배스러운 거울이란 뜻으로 귀감(龜鑑)과 같은 뜻이에요. 조선 의학의 표준을 세웠다는 자부심의 표현이지요.『동의보감』은 세종 때의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선조 때의 『의림촬요』 등 83종의 우리나라 의학책과 70여 종의 중국 의학책을 인용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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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08-30
2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의보감
17세기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한 『동의보감』은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널리 사용한 의학책이 되었어요. 중국과 일본까지 전해져 동아시아 의학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했지요. 또한 『동의보감』은 백성의 건강을 위해 편찬한 의학 서적이라는 점에서 특별히 높은 평가를 받아왔어요.그리하여 2009년에 개최된 유네스코 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에서는 『동의보감』이 담은 시대정신과 독창성, 세계사적 중요성 등을 인정해 1613년(광해군 5) 허준이 직접 간행에 참여한 초판 완질 2본(오대산사고본, 적상산사고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어요.2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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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08-30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조선 시대에는 전염병을 어떻게 대처했을까?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조선 건국부터 20세기 초까지 전염병과 관련한 기록이 무려 1천 건이 넘어요. 이에 따르면 조선 건국 초인 1396년(태조 5) 3월에 처음으로 전염병이 발생하였는데, 한양도성을 쌓기 위해 소집한 인부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유행하였다고 해요.이후 1432년(세종 14)에도 대규모의 전염병이 유행하였어요. 당시 세종은 토목공사를 중지하고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다른 사람과 섞여 살게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어요. 오늘날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최고의 예방법인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미 500년 전에 실천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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