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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팔만대장경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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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나라 위기를 극복하고자 만든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고려, 대장경판을 만들다
팔만대장경은 무엇인가요?
세 번 절하고 한 글자를 새기며 만들다
고려 인쇄술의 발달을 보여 준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판 보관 건물이 유명한 이유는?
역사 속 작은 이야기: 목숨 걸고 팔만대장경을 지킨 공군 장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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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위기를 극복하고자 만든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전(경남 합천군)문화재청“이번에 대장경을 다시 새긴다 하더군.”“나도 이번 일에 참여해서 작은 마음이나마 보태려고 하네.”“이번에도 부처님 도움으로 외적의 침입을 물리쳤으면 좋겠네.”고려는 몽골군의 침입을 맞아 대장경판을 만들기로 하였어요. 고려는 왜 이 긴박한 전쟁 상황에서 대장경판을 만들었을까요? 고려가 만든 대장경판은 고려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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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08-27
6
고려, 대장경판을 만들다
고려 현종 때 거란이 쳐들어오자 고려 사람들은 대장경판을 만들었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이지요. 이때 만들어진 대장경을 ‘처음 만든 대장경’이라는 뜻으로 초조대장경이라고 해요. 그런데 고려는 혼란스런 전쟁 중에 대장경판을 왜 만들었을까요?고려는 불교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나라에요. 왕부터 백성까지 모두 불교를 믿었지요. 그래서 고려는 절을 짓거나 탑을 쌓는 등의 불교 사업을 통해 백성들의 마음을 한곳으로 모으곤 하였지요. 또한 나라에 어려움이 생기면 부처님의 힘으로 이를 이겨내려고 하였지요.“대장경을 판각하여 불법의 보호로 외적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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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08-27
5
팔만대장경은 무엇인가요?
그런데 대장경은 무엇일까요? 대장경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 그리고 제자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해설한 글들을 모두 모아 정리한 불교 경전들을 한데 아울러 이르는 말이에요.중국에서는 불교가 도입된 이후 불교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사업이 활발히 벌어졌어요. 그런데 불경을 구하는 대로 두서없이 번역하다 보니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오래 보존할 수 있도록 종이보다는 돌이나 나무에 새기고자 했어요. 대장경은 불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불상처럼 신앙의 대상이 되었지요. 대장경을 만들고 모시는 것만으로도 부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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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08-27
4
세 번 절하고 한 글자를 새기며 만들다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일은 하나하나 매우 어렵고 힘든 큰일이었어요. 수많은 불경을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해 나라의 강력한 의지와 재정적 지원, 그리고 백성들의 단결된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하였어요.팔만대장경판은 나무로 만들었어요. 엄청난 양의 나무를 마련하여야 했고, 그것을 크기에 맞게 잘라 목판으로 만든 후 한 글자씩 새겨야 했지요. 나무는 세월이 지나면 벌레가 먹거나 습기에 썩어 훼손되어요. 이것을 막기 위해 팔만대장경판에 쓰이는 나무는 잘라서 바닷물에 3년을 담가 놓은 후 다시 소금물에 쪄서 사용했어요.목판에 글자를 새기는 일은 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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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08-27
3
고려 인쇄술의 발달을 보여 준 팔만대장경
대장경은 판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지만, 인쇄를 해서 널리 퍼뜨리는 데 더욱 큰 뜻이 있어요. 팔만대장경은 고려 말과 조선 시대에 수차례 인쇄되었어요. 경판 앞뒤로 글자가 새겨져 있어 실제 인쇄량은 16만 면이 넘기 때문에 대장경 인쇄는 여간 방대한 작업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대장경 인쇄는 대개 나라에서 실시하게 마련이었고, 일부만 인쇄하는 일도 많았어요.팔만대장경 판각은 인쇄술이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인쇄술이 발달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에서 지식을 얻고자 하는 욕구가 크다는 것을 뜻해요. 필요한 책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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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8-27
2
팔만대장경판 보관 건물이 유명한 이유는?
팔만대장경판은 강화도에서 보관하다가 조선 태조 때 한양을 거쳐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로 옮겨 보관해 오고 있어요. 해인사 안에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창고를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이라고 해요. 이곳에는 8만여 개나 되는 팔만대장경 목판이 마치 도서관의 책처럼 판가에 빽빽이 꽂혀 있지요.13세기에 나무로 제작된 8만여 개의 팔만대장경판이 오늘날에도 거의 온전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어요.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이 천 년이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잘 보존되어 우리 곁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팔만대장경판의 보존 비결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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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08-27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목숨 걸고 팔만대장경을 지킨 공군 장교 이야기?
1951년 6·25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날이었어요. 한국 공군 편대장 김영환 대령은 북한군이 몰려 있는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당시 한국 공군은 가야산의 해인사 일대를 중심으로 북한군 소탕을 위해 지상 공격 작전을 펼치고 있었지요.그런데 김영환 대령은 쉽게 명령을 따를 수 없었어요.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고민하던 김 대령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자신이 이끌고 있던 전투기들에 다른 명령을 내렸어요. 명령 불복종이었어요.“절대 내 명령 없이는 폭탄과 로켓탄을 사용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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