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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신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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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신분제
신분에 따라 달랐던 조선 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
신분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어요
최고의 지배층인 양반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중간 계층인 중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조선의 피지배층인 평민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가장 낮은 신분인 천민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역사 속 작은 이야기 : 공명첩으로 양반을 샀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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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에 따라 달랐던 조선 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
노상알현도(김득신)한국데이터베이스산업진흥원“돌쇠야, 얼른 관청에 나갈 준비를 해야겠구나. 세숫물을 떠오려무나.”“대감마님, 묘시(5~7시)인데 벌써 나가시려고요?”“벌써라니? 오늘도 할 일이 많단다.”이른 아침에 관청에 나가려는 양반과 시중을 드는 노비 돌쇠 사이의 가상 대화예요. 이 대화를 통해 조선 시대에는 양반과 노비라는 신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어요. 조선 시대에는 신분이 어떻게 나뉘었을까요? 조선 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은 신분에 따라 어떻게 달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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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08-28
6
신분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어요
조선은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진 신분제 사회였어요. 조선의 신분은 법적으로 양인과 천인(천민)으로 나누어져 있었어요. 양인은 국가에 세금을 내고, 군대에 가야 했으며, 공사에 동원되는 등 여러 가지 의무를 담당했어요. 대신 과거에 응시하는 등의 권리를 가졌지요. 반면 천인은 의무를 지지 않는 대신 권리도 없었어요. 천한 취급을 받았지요.그런데 조선의 신분은 실질적으로 네 신분으로 구분되어 있었어요. 양인은 다시 양반, 중인, 평민 세 신분으로 나누어졌거든요. 신분마다 하는 일이 다르고, 생활 모습도 달랐어요. 조선은 유교에 따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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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08-28
5
최고의 지배층인 양반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양반은 조선 시대 지배층으로 관직을 하며 나랏일을 하는 사람과 그 집안사람들을 말해요. 글공부를 해 관리가 된 문반과 무예를 익혀 관리가 된 무반을 합쳐서 양반이라고 해요. 이들은 대대로 물려받은 넓은 땅과 노비를 소유하고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리며 살았어요. 담당해야 할 의무도 면제받는 일이 많았지요.양반의 바람은 높은 관직에 나가는 것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양반집 남자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유학을 공부했어요. 서당의 훈장이나 집안 어른께 배우며 유학 지식을 쌓았어요.이후 향교나 4부 학당과 같은 중등 교육기관을 거쳐, 조선의 최고 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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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8-28
4
중간 계층인 중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중인은 양반과 평민 사이 중간 계층의 사람들이에요. 주로 관청에서 양반 관리를 도와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실무적인 일을 했어요. 통역을 하는 역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의관, 궁궐 등에 소속되어 그림을 그리는 화원, 법률에 관한 일을 맡아 하는 율관, 천문을 관측하는 관리 등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도 중인이었어요. 양반 첩의 자식인 서얼도 중인 취급을 받았어요.중인들이 가진 기술을 배우려면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어렸을 때부터 공부하고 기술을 익혀야 했지요. 그러다 보니 자식들이 조상이 해 온 일을 이어받는 경우가 많았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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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08-28
3
조선의 피지배층인 평민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조선의 피지배층인 평민에는 농민, 상인, 수공업자가 있었어요. 평민의 대부분은 농민이었어요. 그들은 일 년 내내 열심히 농사를 지었어요.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추수하기까지 쉴 틈 없이 바쁘게 일했어요. 땀 흘려 일해 추수한 곡식을 나라와 땅 주인에게 바치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었어요. 근근이 끼니를 때우는 정도였지요. 곡식이 떨어지는 봄이 되면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마저 생겼어요.16~60세 사이의 평민 남자들은 군대에 가야 하는 군역의 의무가 있었어요. 법적으로는 양인 남성들이라면 모두 군대에 가야했지요. 하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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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8-28
2
가장 낮은 신분인 천민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천민은 가장 낮은 신분으로 천한 대접을 받았어요. 나라에 세금을 낼 의무를 지지 않는 대신 권리도 없었지요.천민의 대부분은 노비였어요. 국가에 속한 노비를 공노비, 개인에게 속한 노비를 사노비라고 해요. 공노비는 왕실이나 관청에서 일을 하면서 양인처럼 가정을 이루고 독립적으로 생활했지요.사노비는 양반 소유의 노비로, 주인집의 농사를 짓거나 온갖 허드렛일을 했어요. 조선에서는 대부분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가 되었어요. 노비들은 재산처럼 여겨져 사고팔 수 있었고, 후손들에게 대대로 물려줄 수도 있었어요.노비들 외에도 백정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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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08-28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 공명첩으로 양반을 샀다고요?
조선 후기가 되면서 신분 제도가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왜란과 호란을 겪은 후 조선에는 많은 변화가 나타났거든요. 국토는 엉망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 세금도 제대로 걷히지 않았어요.나라에서는 국가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공명첩을 발행했어요. 공명첩은 관직을 받을 사람의 이름을 쓸 공간이 비어 있는 임명장이에요. 곡식이나 돈을 내면 그 자리에 이름을 써 주었어요.조선 후기에는 농민이나 상인 중에 부자가 되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모내기법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수확량이 늘고, 담배나 인삼 등을 재배해 시장에 내다 팔며 재산을 모았지요. 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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