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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조선의 부흥을 이끌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규장각을 통해 새로운 인재를 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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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이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있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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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조선의 부흥을 이끌다
청계천(서울 종로구)“헐레벌떡~ 자네들, 뭐하고 있나. 임금님이 수원까지 행차하신다네. 벌써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가고 있네. 빨리들 가세.”“그래 이번에는 혜경궁 마마를 모시고 간다는구먼. 예전과는 전혀 다른 행차가 될 것 같네. 기대되는구먼.”1795년 한양에서 수원으로 이르는 길이 난리가 났어요. 많은 백성들이 임금님 행차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지요.행차에 나선 임금님은 어떤 분일까요? 한양에서 수원까지 행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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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08-30
5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할바마마! 제발 아바마마를 살려 주세요.”행차의 주인공 정조는 어린 시절 생긴 슬픈 상처가 있어요. 11살 때 아버지 사도세자가 할아버지인 영조의 명령으로 뒤주에 갇혀 죽은 사건 때문이에요. 그만 아버지의 그 비참한 죽음을 눈앞에서 보았던 것이지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아닐 수 없어요. 아버지가 한없이 불쌍했고, 그만큼 할아버지가 원망스럽고 무서웠지요.정조는 이 끔찍한 과거를 가슴 깊이 간직한 채 학문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였어요. 할아버지 영조의 남다른 사랑을 듬뿍 받는 한편, 혹독한 가르침 역시 묵묵히 견뎌 냈지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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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08-30
4
규장각을 통해 새로운 인재를 뽑다
나라가 발전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총명한 인재를 뽑는 일이었어요. 정조는 어떻게 하면 훌륭한 인재를 찾아내어 나라 운영에 도움이 되게 할까 고민하였어요.“그래! 예전 세종대왕이 궁궐 안에 집현전을 만들어 학자들을 키워내셨지. 집현전에서 공부한 학자들이 다양한 책도 펴내고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도 만들었어.”정조는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 학문을 발전시키고 자신을 힘것 도와줄 신하들을 육성하고자 하였어요. 정조는 창덕궁 후원에 커다란 건물을 지었어요. 1층이 ‘규장각’이고, 2층 누각이 주합루에요. 본래 규장각은 왕실도서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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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08-30
3
친위 부대 장용영을 만들다
정조는 늘 자신을 지켜 줄 부대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였어요. 정조를 위협하는 무리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에요. 당시 정조에 반대하는 세력이 각 군영의 부대를 장악하고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정조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무려 7번이나 있었어요. 조선의 임금 중에서 유난히 많았지요.이런 일이 계속 되자 정조는 강력한 호위 부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였어요. 이참에 군대도 다시 정비하고자 했어요.“중앙과 지방의 군영을 축소하고 무예에 출중한 군인들만 모아 하나의 새로운 군대를 만들도록 하여라.”정조와 장용영1793년 정조는 ‘장용영’이라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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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08-30
2
백성들이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있게 하다
한양의 중심부인 종로 한복판에서 장사를 하려는 백성들과 이를 막으려는 관리 사이에 작은 소동이 벌어졌어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런 걸까요? 왜 여기에서 장사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요? 조선에는 나라에 물품을 대는 상인들인 시전 상인이 있었어요. 시전 상인 중 비단, 명주, 무명, 모시, 종이, 어물 등 여섯 종류의 중요한 물품을 파는 상인을 특별히 육의전이라 하였어요.당시 나라에서는 육의전을 비롯한 시전 상인 외에는 서울 도성 안에서 아무나 장사를 하지 못하게 하였어요. 그리고 시전 상인들에게 허가를 받지 않은 다른 사람들이 서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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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08-30
1
백성을 위한 새로운 도시 화성을 건설하다
정조가 즉위한지 13년이 되는 해였어요. 그동안 백성을 위해 펼친 여러 개혁 정치로 나라 안팎은 점차 안정되었어요. 백성들도 정조를 성군이라 부를 정도였지요.그러나 정작 정조는 늘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웠어요. 바로 아버지 사도세자 때문이었어요. 정조는 효심이 매우 깊었어요.“과인이 처음으로 아버지 묘소를 보았을 때 가슴이 막히고 눈물이 쏟아져 한참을 움직이지 못하였소. 어찌 그리 작고 형편없이 만들었단 말이오.”정조는 사도세자의 묘를 풍수 명당인 수원으로 옮기기로 하였어요. 그러려면 그곳 백성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어요. 고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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