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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훈민정음을 창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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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훈민정음을 창제하다
집현전(서울 종로구)“전하! 어찌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오랑캐가 되려 하십니까?”“오랑캐라니요?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피는 것은 국왕이 할 일! 내 앞 길을 막지 마세요!”많은 신하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글자를 만든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는 왜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을까요?태조 이성계가 정도전을 비롯한 신진사대부들과 함께 조선을 건국하였어요. 그런데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났어요. 조선 건국에 공이 많았던 이방원은 공신 명단에 오르지 못했어요. 게다가 막내였던 이복 동생(방석)이 세자가 된 것에 이방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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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08-27
3
삼강행실도를 편찬하다
세종이 왕이 되고 10년이 되던 해에 진주에서 김화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죽이는 사건이 벌어졌어요. 이 사건에 충격을 받은 세종은 이런 사건을 막기 위해서는 유교 덕목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어요. 그리고 충효사상이 담겨 있는 책들을 간행하여 백성들에게 전파하고자 했어요.세종은 『효행록』과 같은 책을 펴내 백성들이 이를 읽고 깨우치기를 원했어요. 그러나 한자로 쓰인 책을 백성들이 읽고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쉽게 내용을 알 수 있게 충신, 효자, 열녀의 행적을 그림으로 그리고 간단한 설명을 써 넣은 『삼강행실도』라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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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08-27
2
새로운 글자를 연구하다
백성을 사랑하는 세종의 마음은 마침내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데까지 이르렀어요. 세종은 백성들이 한자라는 배우기 어려운 글자에 막혀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까웠어요. 급기야 모든 백성이 읽고 쓸 수 있는 글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하지만 새로운 글자를 만든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우선은 글자를 만드는데 필요한 음운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확보해야 했어요. 그리고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것이 당시의 중국을 따르는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신하들의 반대도 극복해야했어요.세종은 먼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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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08-27
1
훈민정음을 만들다
왕이 된지 26년이 되던 해인 1443년에 세종은 오랜 연구와 실험을 거쳐 드디어 조선의 글자를 만들었어요. 세종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란 뜻으로 그 글자의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불렀지요.“백성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과 어우러지는 글자가 없고, 중국의 한자는 어려워 백성들이 자신의 뜻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안타깝게 여겨 새로이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다.”훈민정음 해례본국사편찬위원회훈민정음을 백성들에게 보급하려 하자 우려했던 대로 조정 신료들의 반발이 빗발쳤어요. 그 중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라는 사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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