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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 고려의 마지막을 지키다
고려, 나라의 근본이 무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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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와 다른 길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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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 고려의 마지막을 지키다
선죽교(황해북도 개성)국사편찬위원회“고려는 나라의 운이 다했습니다. 하늘을 바꾸는 것이 썩은 세상을 바꾸는 지름길입니다. 포은! 우리와 함께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봅시다.”“나에게 하늘은 하나이지 둘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일백 번을 다시 죽는다고 해도 고려를 배신할 수는 없소.”고려를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포은은 정몽주를 말해요. 그는 왜 망해가는 고려를 끝까지 지켰을까요? 정몽주가 개혁하고자 했던 고려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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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8-27
5
고려, 나라의 근본이 무너지다
고려가 몽골에 항복한 지 90여 년이 지나자 영원할 것 같던 원도 내부의 권력다툼과 수탈에 지친 백성들의 반란으로 점점 힘을 잃어 갔어요. 특히 한족 출신의 주원장이 세운 명의 영향력이 점점 확장되어 갔어요. 이 무렵 공민왕이 원에서 돌아와 고려의 왕이 되었어요. 그의 눈에는 원에 아부하며 권력을 잡은 권문세족들의 잘못된 모습들이 보였어요.권문세족들은 나라로부터 받은 땅과 백성들에게 힘으로 빼앗은 땅을 이용해 대농장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이들은 큰 산이나 하천을 경계로 할 정도로 넓은 땅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았지요. 땅을 빼앗기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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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08-27
4
혼란한 고려를 이끌다
1337년, 혼란스러운 고려에 정몽주가 태어났어요. 그의 어머니가 난초 화분을 안고 있다가 깨트리는 꿈을 꾸고 낳았다 해서 ‘몽란(꿈속의 난)’이라 불렸어요. 나중에 몽주로 이름을 바꾸었지요.정몽주는 어려서 총명하였고,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24세에 과거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어요. 이때 문익점도 함께 과거에 합격했어요. 과거를 통해 관리가 된 정몽주와 동료들은 어지러운 고려를 바로잡겠다는 뜻을 함께했어요.관리가 된 정몽주는 여러 일을 했어요. 이성계와 함께 여진족을 물리치기도 했고, 공민왕이 인재를 양성하고 고려를 개혁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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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08-27
3
토지 개혁을 주장하다
정몽주는 잘못 나아가고 있는 고려를 다시 세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고려를 개혁하려던 이성계나 정도전과도 뜻을 함께했지요. 이성계도 정몽주를 크게 믿어 전쟁터에 나갈 때마다 그를 데리고 갔어요. 그리고 나랏일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몽주를 추천하여 나라의 큰일을 맡겼어요.위화도 회군 이후 임금을 바꾸고 권력을 잡은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들이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진 것은 땅과 세금 문제였어요. 권문세족이 빼앗은 땅을 다시 백성들에게 돌려주어야 백성들의 삶이 안정되고, 백성들에게 세금을 제대로 걷을 수 있어야 나라도 안정시킬 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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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8-27
2
이성계와 다른 길을 가다
권력을 잡은 이성계는 고려를 개혁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하나씩 제거했어요. 이런 인물 중에는 정몽주의 스승이었던 이색도 있었어요. 토지 개혁 이후 정몽주는 이성계의 이러한 행동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어요.“고려의 운이 다한 듯하오. 포은(정몽주)과 삼봉(정도전)이 나의 좌우를 받쳐 준다면 그대들이 원하는 나라를 만들어 볼 수 있을 터인데…”“포은께서 말씀하신 백성이 근본이 되는 나라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두 분의 뜻을 모르는 바 아니나 이 땅에 고려 외에 다른 나라는 있을 수 없소이다.”정몽주는 고려를 없애고 새로운 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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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08-27
1
고려와 마지막을 함께 하다
이성계는 정몽주의 재능을 크게 아꼈어요. 그러나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정몽주가 귀양을 보내자 마음이 크게 흔들렸지요.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정몽주의 속마음을 알고 싶었어요.“포은 선생님! 이런 세상인들 저런 세상인들 무엇이 중요합니까? 백성들이 평안한 세상이 좋은 세상이 아니겠습니까?”“이보게 방원, 내가 살 수 있는 세상은 고려뿐이네.”대화를 나눈 이방원은 정몽주의 생각이 바뀌지 않을 것이고, 또한 아버지 이성계의 앞길에 방해가 될 것으로 판단했어요. 이방원은 부하들을 보내 집으로 돌아가던 정몽주를 기다리게 했어요. 결국 정몽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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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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