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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점, 따뜻한 겨울을 선물하다
원에 사신으로 가다
뜻밖에 목화송이를 만나다
고려에 목화씨를 들여오다
목화 재배에 성공하다
무명옷이 널리 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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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점, 따뜻한 겨울을 선물하다
목면시배유지전시관(경남 산청군)“참으로 다행이지 않은가? 이 무명옷과 솜이불 덕분에 올겨울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으니 말일세.”“그러게 말일세. 문익점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아직도 추위에 떨며 살았을 것일세. 생각할수록 참으로 고마운 분일세.”목화로 따뜻한 무명옷을 만들 수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무명옷을 입게 되었을까요? 문익점은 어떻게 해서 목화씨를 고려에 들여오게 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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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08-27
5
원에 사신으로 가다
고려 말기 공민왕 때의 일이었어요. 당시 공민왕은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여러 가지 개혁 정치를 펼치고 있었지요. 원은 이러한 공민왕을 못마땅하게 여겨 왕위에서 내쫓으려 하였어요. 당시 고려의 국왕은 원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형편이었지요.“문익점, 그대를 서장관으로 임명하노니 원으로 떠나주시오.”상황이 어렵게 돌아가자 공민왕은 원에 사신단을 보내기로 하였어요. 서장관은 외교 문서를 담당하는 벼슬로 사신 일행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였어요. 문익점은 사신단과 함께 원으로 떠났어요.그런데 그 무렵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어요. 원이 충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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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8-27
4
뜻밖에 목화송이를 만나다
고려로 돌아가려는 문익점의 마음은 무거웠어요. 그러다 새하얀 꽃들의 풍경이 눈에 확 띄었어요. 예쁜 꽃들에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하였어요.‘아니, 가을도 끝나가는데 웬 꽃들이지?’문익점은 궁금하였어요. 태어나 처음 보는 풍경이었거든요.목화를 보게 된 문익점목화에는 부드럽고 하얀 솜이 송이송이 달려 있었어요. 아직 터지지 않은 목화 봉오리도 금세 터질 듯 부풀어 있었어요. 목화솜을 실제 만져 보니 푹신푹신 한 것이 참으로 따뜻하였지요. 보기만 해도 예쁜데 이걸로 옷을 만들어 입으면 추운 겨울에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하니 신기하기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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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08-27
3
고려에 목화씨를 들여오다
문익점은 목화송이를 하염없이 보고 있다 보니 문득 추위에 떠는 고려 사람들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고려 백성들의 의생활을 고민하고 있는 문익점고려의 사람들은 명주, 모시, 삼베와 같은 옷감으로 옷을 지어 입었어요. 그런데 명주는 너무 비싸서 귀족들과 부자들만 입을 수 있을 뿐이었어요. 많은 백성은 모시와 삼베로 만든 옷을 입었지요. 하지만 모시와 삼베옷은 여름용 옷이어서 풀이나 털을 넣어도 한겨울이 되면 백성들은 추위에 시달려야 했어요.“이보시오. 목화씨 좀 얻을 수 있소?”“그러시오. 음, 그런데 고려는 추워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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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08-27
2
목화 재배에 성공하다
벼슬을 잃은 문익점은 고려에 돌아오자 고향인 경상남도 산청으로 내려갔어요. 그리고 곧 장인인 정천익을 찾아갔지요.“장인어른! 저 문익점 돌아왔습니다. 그간 잘 계셨지요?”“그래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가? 이리 돌아왔으니 참으로 다행일세.”정천익은 원에서 고생한 사위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어요. 잠시 후 문익점은 품에 넣어 온 목화씨를 조심스레 꺼내 보였어요.“이것이 무엇인가?”“목화씨입니다.”“목화씨? 솜도 만들고 무명도 만든다는 그 목화씨 말인가? 그런데 이 목화씨를 왜 갖고 왔는가?”“키워보려고 가지고 왔습니다. 장인어른과 함께 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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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8-27
1
무명옷이 널리 퍼지다
그렇게 3년이 지난 1366년 가을, 문익점과 정천익은 사람들에게 씨앗을 나눠줄 만큼 목화를 잘 키워 냈어요.“여러분! 이게 무명을 만드는 목화씨입니다. 정성을 다해 키우세요. 여러분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무명옷을 입을 수 있소이다.”사람들은 기뻐하였어요. 그리고 고마워하였어요. 따뜻한 봄이 오자 산청 지역의 농부들은 목화씨를 심었어요. 농부들에게 목화 키우는 방법도 알려주었어요. 가을이 되자 산청 지역 곳곳에는 목화꽃이 활짝 피어 있었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씨를 빼는 게 일이네. 솜에서 실은 또 어찌 만드는 거지?”“그러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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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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