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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아픔을 담고 있는 근대 건축물
근대 건축물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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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아픔을 담고 있는 근대 건축물
명동성당(서울 중구)“벽돌로 지은 건축물이 여기저기 들어서고 있다네.”“서양식 건축물이 곳곳에 들어서는 것을 보니 새로운 세상이 오나 보네.”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을 한 이후 조선은 서양의 여러 나라와도 통상 조약을 맺었어요. 그러면서 조선에도 서양 문물이 들어오고, 서양식 건축물도 곳곳에 들어섰지요. 성당, 교회, 학교, 은행, 백화점, 호텔, 철도 역사, 세관 건물 등이 들어섰어요.서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도시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갔을까요? 이런 건축물에는 어떤 역사가 담겨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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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09-01
7
근대 건축물이 들어서다
개항 이후 근대 문물이 들어오면서 사람들의 생활과 거리 모습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개항장을 비롯한 주요 도시 모습도 점점 변해갔어요.외국인들이 개항장 거리에 많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또 우리나라 사람들도 긴 머리를 자르고, 한복 대신 양복과 양장을 입고, 버선 대신 양말도 신었지요. 성냥, 통조림 등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고,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도 생겼어요. 레스토랑에서는 서양 요리를 맛볼 수 있게 되었지요. 도로에는 마차 대신 전차가 달리기 시작했고, 전국 곳곳에 철도가 놓였어요.서양 사람들이 들어오고, 서양의 기술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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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09-01
6
개항장에 들어선 서양식 건축물
근대 건축물들이 가장 먼저 들어서기 시작한 곳 중 하나는 부산, 인천 같은 개항장이었어요. 강화도 조약으로 가장 먼저 외국 문물이 들어온 곳이기 때문이지요. 부산은 강화도 조약으로 맨 처음 개항한 곳이지요. 일제가 개항 이후 경제적 수탈과 군사적 침략을 위한 발판으로 삼은 곳이에요.일제는 침략을 위한 기반을 닦으며 여러 가지 근대 시설과 건축물을 세웠어요. 먼저 부산 초량에 있는 옛 왜관(倭館) 터에 일본인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곳을 만들었어요. 일본식 가옥도 많이 지어졌어요.일본은 이 지역을 조선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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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1
5
궁궐에도 서양식 건축물이 들어서다
궁궐에도 서양식 건물이 들어섰어요. 대한 제국의 중심 역할을 한 덕수궁에 서양식 건축물인 중명전과 석조전을 세웠어요. 석조전은 1900년에 짓기 시작해 10년 만인 1910년에 완공되었어요. 황실 가족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며, 동시에 나랏일을 처리하는 공간이었어요.중명전은 황실 도서를 보관하던 도서관이었지요. 원래 이름은 수옥헌이었어요. 1901년 화재로 건물이 타버렸고, 이후 다시 지어졌어요, 그러면서 고종 황제가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하고 외국 사절을 만나는 장소로도 이용했어요. 중명전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역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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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09-01
4
성당과 교회, 학교 건물이 세워지다
서울에는 천주교 성당이 들어섰어요.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명동성당이 대표적이지요. 1892년에 짓기 시작해 1898년에 완공했어요. 명동성당이 자리 잡은 곳은 우리나라에 최초로 천주교회가 창설된 곳이에요. 청에서 세례를 받고 온 이승훈 등이 모여 종교 집회를 연 김범우의 집이 있던 곳이지요.프랑스인인 코스트 신부가 설계하고 공사 감독을 맡았어요. 우리나라에 서양식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건축 기술자가 없어 애를 먹다 결국 중국에서 데려다가 성당을 지었다고 해요. 기와집과 초가집만 보던 사람들에게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성당은 큰 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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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1
3
서울역사가 들어서다
우리나라에 철도가 들어오면서 중심이 된 곳이 있어요. 바로 서울역이에요. 이곳은 원래 남대문 정거장으로 불렸어요. 10평짜리 나무로 지은 건물이었지요.남대문 정거장 앞의 모습일제 강점기인 1922년 새로운 역사가 필요해진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손에 꼽히는 규모의 경성역사를 만들었어요. 역사는 공사를 시작한지 3년여 만인 1925년에 완공되었지요.이렇게 큰 규모의 경성역사를 세운 데에는 일제의 속셈이 있었어요. 부산에서 경성을 거쳐 북경과 시베리아 유럽까지 연결하는 열차를 건설하고 동아시아의 중심이 되려는 원대한 목적을 가지고 있던 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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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1
2
정동에 들어선 손탁 호텔
서양식 호텔도 세워졌어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손탁 호텔이지요. 앙투아네트 손탁은 독일 여성으로 러시아 공사관의 보호를 받으며 활약했던 인물이에요. 그녀는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영어 등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어요.고종, 왕비 민씨(훗날의 명성 황후)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통역을 담당하고, 러시아 공사관과 우리 황실을 연결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을미사변 이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했을 때도 많은 도움을 준 인물이지요.고종은 이를 고맙게 여겨 서울 정동에 기와집 하나를 지어 선물했어요. 이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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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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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서울 남촌과 북촌의 달라진 모습
개항 이후 전기, 전화 전차가 들어오면서 도시의 모습은 바뀌었어요. 일제 강점기 식민 통치를 위한 여러 기관들이 들어서고, 한국에 건너온 일본인들이 자리를 잡으며 그들이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었지요.일본인들은 주로 청계천 남쪽 진고개 주변에 모여 살았어요. 남촌으로 불리는 곳으로 지금의 서울 중구 충무로 일대이지요. 이후 일본은 남대문 일대까지 자신들의 공간을 점점 늘려갔어요.한국인들은 주로 청계천 북쪽 종로를 중심으로 한 북촌에 모여 살았고요. 북촌은 조선 시대 권력자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전통적인 건축물들이 모여 있었어요.남촌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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