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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극복한 고려의 왕, 현종
위태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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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극복한 고려의 왕, 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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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공국사승묘탑(서울 용산구)국립중앙박물관“지난날 짐을 따르며 함께 고생하기로 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니, 신하 된 자의 의리가 결국 이러한 것인가?”“신이 비록 부족하지만, 목숨 바쳐 폐하와 함께하겠나이다.”1010년 거란군이 또다시 고려를 침입하였어요. 고려의 패전 소식이 들려왔어요. 현종은 항복 대신 피난을 선택하였어요. 위급한 상황에서 지채문 장군이 함께 하기로 하였어요. 과연 현종의 피난은 성공하였을까요? 현종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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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8-26
8
위태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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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왕순)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어요. 아버지 왕욱(안종)은 왕건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왕건의 손녀(헌정왕후)였어요. 그런데 둘은 혼인을 하지 않고 사랑해 왕순을 갖게 되었어요. 이러한 사실이 알려져, 왕욱은 유배를 가게 되었어요.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는 왕순을 낳고 바로 세상을 떠났지요.고아가 된 왕순을 불쌍히 여겼던 성종은 그를 대량원군으로 책봉하고 보살펴 주었어요. 그런데 성종이 죽고 목종이 즉위한 뒤로 왕순은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되었어요.“폐하, 간사한 무리들이 저를 위협하고 핍박하며, 심지어 죽이려고 하옵니다. 부디 저를 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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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8-26
7
많은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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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목종은 깊은 병에 걸렸어요. 더구나 그에게는 왕위를 물려줄 아들이 아직 없었지요.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목종이 아픈 틈을 타서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어요. 이것을 알아차린 목종은 신하들을 불러 모았어요.“짐의 병이 점차 위독해져서 곧 죽게 되면 태조(왕건)의 후손은 오직 대량원군(왕순)만이 남게 된다. 그러니 그대들은 충성을 다하여 왕위가 다른 성 씨에게 돌아가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목종은 두 가지 명령을 내렸어요. 하나는 군사를 보내 당시 신혈사에 있던 대량원군을 불러오는 것이었어요. 또 하나는 서북면을 지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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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6
6
거란이 침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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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되었지만, 현종의 삶은 순탄치 않았어요.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조가 목종을 몰아낸 것을 구실로 삼아 거란의 대군이 고려를 침략하였어요. 거란의 두 번째 고려 침입이었어요.첫 번째 전투는 흥화진에서 벌어졌어요. 거란군이 흥화진을 포위하며 거세게 공격하였지만, 양규가 이끄는 고려군은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흥화진을 지켜냈어요. 이에 거란은 거짓으로 강조의 서신을 꾸며 항복을 권유하였어요.“나는 왕의 명령을 받고 온 것이지, 강조의 명령을 받았던 것이 아니다.”양규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어요. 오히려 사람들과 함께 한마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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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8-26
5
피난길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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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정은 거란의 침입을 두고 치열하게 대책을 의논하였어요. 신하들 대부분은 거란의 대군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라며 항복하자고 하였어요. 이때 강감찬이 홀연히 말하였어요.“오늘의 일은 강조 때문이니 오히려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적은 군사로 대항하기 어려우니, 적의 기세를 피했다가 부흥할 방도를 도모해야 합니다.”강감찬은 현종에게 내일의 승리를 위해 피난할 것을 제안하였어요. 왕이 적에게 잡히면 전쟁은 끝나기 때문에 피난 또한 중요한 일이었어요. 현종은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개경을 버리고 남쪽 나주로 피난을 가기로 하였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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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8-26
4
김은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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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의 피난길은 어려움의 연속이었고 초라하기까지 하였어요. 그러다 공주를 지날 때였어요. 그곳의 관리였던 김은부가 현종을 극진히 대접해 주었지요.“김은부가 예를 갖추어 맞이하며 의복과 토산물을 바쳤다.”현종은 김은부가 바친 옷으로 갈아입고 토산물은 일행들에게 나누어주었어요. 일을 보던 관리들이 모두 피난을 가서 음식 마련이 어려워지자, 김은부는 직접 음식을 올리며 아침저녁으로 정성껏 현종을 받들었어요. 현종은 김은부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꼈어요. 김은부 덕분에 안전하게 피난길을 계속 갈 수 있게 되었어요.거란군이 물러가고 현종은 개경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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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8-26
3
거란의 3차 침입을 격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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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은 전쟁으로 망가진 고려를 재건하기 위해 애썼어요. 거란과의 관계도 개선하고자 노력하였어요. 그러나 거란은 현종이 병을 핑계로 직접 거란을 직접 방문하여 조공을 바치는 것이 어렵다고 하자, 약속을 어겼다며 분노하였어요.이에 거란은 고려에 강동 6주 지역을 내 놓으라 다그쳤어요. 물론 고려는 이를 거부하였어요. 그러자 1018년 거란은 또다시 고려를 침략해 왔어요. 세 번째 침입이었어요.그러나 이번엔 고려도 달랐어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현종은 강감찬을 총지휘관으로 삼고 거란군에 맞서게 하였어요. 강감찬은 거란군이 지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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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8-26
2
불교의 힘으로 민심을 모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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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은 즉위하자 연등회와 팔관회를 다시 열도록 하였어요. 연등회와 팔관회는 국왕부터 일반 백성들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고려의 대표적 불교 행사였어요. 성종 대 최승로의 건의로 중단하였지만, 현종은 백성들의 마음을 한데 모아 나라를 안정시키고자 이들 행사를 부활시켰어요.거란의 침입으로 고려가 위태롭게 되자, 현종은 부처님의 힘을 빌려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였어요. 현종은 대장경을 통해 백성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고자 하였어요. 불교 전적을 총망라한 대장경을 보유한다는 것은 불교를 믿는 국가에서는 엄청나게 중요하고 대단한 일이었어요.거란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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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8-26
1
지방 제도를 정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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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은 거란의 침입과 피난을 경험하면서 느낀 바가 컸어요. 권력 기반이 약하면 아무리 왕이라도 신하들에게 무시당할 수 있었어요. 특히 지방의 관리들에게 권력이 집중되면 나라를 다스리기 어렵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어요.현종은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의 체제를 정비하여 나라를 안정적으로 다스려야 하겠다고 다짐하였어요. 이에 현종이 가장 관심을 두고 애쓴 것은 지방 제도의 개혁이었어요.“12주의 절도사를 폐지하고 5도호와 75도에 안무사를 두었다.”우선 현종은 군사력이 집중되어 있던 지방의 절도사(節度使)를 폐지하였어요. 대신 안무사(安撫使)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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