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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 전주에서 백제를 계승한 나라를 세우다
이성계와 정몽주, 전주에 가다
전주에 감영이 설치되어 전라도의 중심지가 되다
이성계의 어진을 보관했던 경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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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전주에서 유명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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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문화유산
경기전국가유산청“견훤이 이곳 완산주를 도읍으로 삼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했다고 하네.”“나도 소식 들었네. 나라 이름을 백제라고 했다던데.”900년 견훤이 완산주에서 나라를 세웠어요. 완산주는 오늘날 전라북도에 있는 전주예요. 전라북도의 도청이 있는 곳이죠. 그럼 지금부터 전라북도의 중심인 전주에 대해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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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7
견훤, 전주에서 백제를 계승한 나라를 세우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100년쯤 지나 혜공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 신라는 위기를 맞이했어요. 중앙에서는 왕위 쟁탈전이 벌어져서 이후 약 150년 동안 20명이 왕위에 올랐을 정도로 혼란했어요. 그리고 지방에서는 중앙 정부에 대항하는 새로운 세력인 호족이 등장했죠.견훤은 신라의 서남쪽을 지키는 군인이었는데, 9세기 후반 자신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호족으로 성장한 대표적 인물이에요. 그는 892년 무진주(지금의 광주)를 차지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어요. 그리고 8년 뒤인 900년 완산주(지금의 전주)로 도읍을 옮기고 나라 이름을 백제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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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6
이성계와 정몽주, 전주에 가다
전주에 가면 남고산성도 볼 수 있어요. 이 산성은 견훤이 쌓았다고 해서 견훤산성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죠. 남고산성에는 만경대란 곳도 유명해요. 왜냐구요? 이곳에 고려 후기 충신이었던 정몽주의 글이 새겨 있거든요. 정몽주는 왜 개경에서 이곳까지 가게 되었을까요?정몽주가 살던 시기 고려는 왜구의 침략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어요. 이때 왜구를 물리치면서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오른 인물이 있었죠. 뒷날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예요. 이성계는 1380년 지리산 일대를 휩쓸던 왜구를 황산(지금의 남원)에서 크게 무찔렀어요. 이때 정몽주가 이성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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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5
전주에 감영이 설치되어 전라도의 중심지가 되다
조선 시대 전주에 전라감영이 설치되었어요. 감영은 조선 시대 8도를 다스리던 관찰사가 머물며 업무를 하던 곳이에요. 그러니 8개의 감영이 있었어요. 그중 전주에 설치된 전라감영은 중요한 감영 중 하나였어요.우리나라의 곡창지대인 전라도의 행정과 군사를 관장했을 뿐만 아니라 제주도까지도 포함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전라감영과 백성을 지키기 위해 성을 쌓고 동서남북에 각각 완동문, 패서문, 풍남문, 공북문 등 4개의 문을 두었어요.전라감영을 둘러싸고 있던 전주성은 한 때 농민군에게 점령되었던 적이 있었어요. 바로 1894년에 일어난 동학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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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4
이성계의 어진을 보관했던 경기전
조선 시대 전주에는 전라감영 말고도 중요한 건물들이 하나둘씩 들어섰어요. 그중 하나가 경기전이죠. 경기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인 어진을 보관하던 곳이에요.조선의 제3대 왕 태종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5개나 그리도록 해서 각각 전주, 평양, 개성, 영흥, 경주에 보관하고 건물의 이름을 어용전이라 했어요.그러다가 세종 때 각 지역에 있는 어용전의 이름을 바꾸었어요. 이때 전주에 있는 어용전을 ‘경기전’라 바꾸었지요. ‘경기전’이라는 한자이름의 뜻을 풀어보면 ‘경사스러운 일이 생긴 터에 지은 집’이라고 할 수 있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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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08-28
3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
경기전 동쪽에 사고도 지어졌어요. 사고는 조선 왕조실록을 보관하는 곳을 말해요. 조선 시대에는 왕이 죽으면 실록청을 두고 죽은 왕이 다스리던 시기의 역사를 정리한 역사책인 실록을 펴냈어요.처음에 실록은 완성되면 4권을 찍어 내서 하나는 중앙에 있는 춘추관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지방에 있는 3개의 사고에 나누어 보관했어요. 그중 하나가 전주에 있는 사고였죠. 그런데 임진왜란 때 전국에 있는 사고 중 전주사고를 제외하고 나머지가 불에 타 버렸거든요. 전주사고에 있던 실록이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지역 유생들의 노력 덕분이었어요.그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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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08-28
2
풍패지관으로 불린 전주객사
객사는 고려부터 조선까지 각 마을에 설치된 건물이에요. 고려 시대에는 외국에서 온 사신들이 주로 객사에 머물면서 때때로 잔치를 벌이기도 했어요. 조선 시대에는 객사 중앙에 있는 건물에 나무로 만든 패에 왕을 상징하는 ‘전(展)’자를 새긴 전패를 모셔 두었대요. 그리고 매월 초와 보름에 대궐이 있는 방향을 향해 절을 하는 행사를 진행했어요.나라의 경사스러운 일이 있으면 그곳에서 잔치를 벌이기도 했고, 수령이 그 지방에 새로 오게 되면 반드시 전폐가 있는 곳에 와서는 예를 갖추기도 했대요. 또한, 객사의 중앙 건물 양쪽에 방을 두어 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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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08-28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전주에서 유명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전주하면 흔히 ‘비빔밥’이나 ‘콩나물국밥’처럼 맛있는 먹거리를 떠올려요. 그중 ‘비빔밥’은 현재 우리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음식이 되었죠. 그런데 전주에는 이런 먹거리 못지않게 유명한 것들이 있어요.먼저 전주 한지를 들 수 있어요. 한지의 주원료는 닥나무예요. 전주에는 고려 시대부터 닥나무가 재배되었대요. 이 닥나무와 전주의 깨끗한 물로 만든 전주 한지는 품질이 아주 좋았다고 해요. 그래서 고려 시대에 왕에게 종이를 특산물로 바칠 정도로 유명했대요. 조선 시대에는 매해 단오가 되면 부채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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