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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신라 개혁을 꿈꾸다
어린 나이에 당으로 유학을 떠나다
문장가로 당에서 이름을 떨치다
신라로 돌아와 개혁안을 올리다
6두품의 한계를 느끼고, 여기 저기 떠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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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신라 개혁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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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기념관(중국 양저우)“당에서 배운 것을 신라 땅에서 펼칠 수 없으니, 이리 저리 떠돌며 허전한 마음을 달랠 수밖에……”“동백섬 소나무 숲 사이로 비추는 저 달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구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이 바위는 내 이름을 따 해운대라 해야지.”해운은 누구일까요? 그는 왜 벼슬을 버리고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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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08-26
4
어린 나이에 당으로 유학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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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은 최치원의 다른 이름이에요. 고운이라는 또 다른 이름도 있었지요. 그는 신라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을 즐겨했는데, ‘신동’ 소리를 들을 정도로 똑똑했어요.그런 최치원을 볼 때마다 아버지 견일의 마음은 편치 않았어요. 신라에서는 제 능력을 발휘하기 힘들 테니 말이죠. 왜냐구요? 바로 골품제 때문이지요.골품제는 신라의 신분제로 맨 위의 진골부터 6두품, 5두품, 4두품 등으로 신분이 나뉘어 있었어요. 그리고 골품에 따라 오를 수 있는 관직이 정해져 있었어요. 뿐만 아니라 사는 집의 크기, 입을 수 있는 옷, 사용할 수 있는 그릇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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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08-26
3
문장가로 당에서 이름을 떨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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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당에서 과거에 합격하고 훗날 신라로 돌아와 내 꿈을 펼쳐야지.”어린 나이에 홀로 배에 몸을 실은 최치원은 멀어져 가는 고국 땅을 바라보며 다짐했어요. 당의 수도 장안은 2000리가 넘는 먼 곳이었어요. 신라를 떠난 지 몇 달 만에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지요.장안은 신라, 발해 등 동아시아 각국 유학생들로 넘쳤어요. 여러 나라 상인들로 거리는 활기찼고요. 당시 신라 사람들은 당에서 신라방이라는 마을을 이루고 살기도 했지요. 각국의 젊은이들에게 당은 기회의 땅이었어요. 외국인에게도 벼슬 할 기회를 주었으니 말이에요.최치원은 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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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6
2
신라로 돌아와 개혁안을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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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무리 당에서 성공해도 부모님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떨칠 수 없구나. 신라로 돌아가 뜻을 펼쳐야겠다.”최치원은 고국을 떠난 지 16년 만에 신라 땅으로 돌아왔어요. 다른 유학생들도 신라로 돌아와 활약을 하기도 했지요. 헌강왕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최치원을 곁에 두려 했어요. 그는 당에 있을 때 썼던 글들을 정리한 『계원필경』이라는 책을 써 왕에게 바치기도 했지요.하지만 헌강왕이 죽고, 뒤이어 정강왕과 진성여왕이 왕위에 오르며 상황이 바뀌었어요. 왕권은 약해질 대로 약해졌고, 진골 귀족들은 권력 다툼을 벌이며 자신들의 배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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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08-26
1
6두품의 한계를 느끼고, 여기 저기 떠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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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은 뜻을 품어도 신라에서 6두품 출신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구나!”최치원은 진골 귀족들의 반대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게 되자 벼슬을 내려놓았어요. 음모와 질투의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이곳저곳을 떠돌았어요. 자연의 경치를 즐기며 시를 읊고, 글을 지었지요. 부산 해운대도 그가 들렀던 곳 중 하나에요. 나중에는 가족을 데리고 가야산 해인사로 들어가 지냈다고 해요.그러던 어느 날 최치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산속 깊은 곳에 숨었는지, 아니면 저 세상으로 갔는지 알 수 없어요. 다만 어느 계곡에 ‘최치원이 이곳에서 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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