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항일 의병 투쟁을 전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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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한 제국을 강요해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했어요. 이 때문에 대한 제국은 다른 나라와 조약을 맺을 수 있는 외교권을 빼앗겼어요. 이후 1907년 일본은 고종 황제의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대신 순종을 황제에 앉혔어요. 그리고 대한 제국의 군대마저 해산시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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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이 활동했던 간도와 연해주




이러한 상황에서 안중근은 해외로 건너가 항일 의병 투쟁을 전개할 것을 결심했어요. 29세의 청년 안중근은 북간도를 거쳐 한국인이 많이 사는 러시아의 연해주에 도착했어요. 1908년 봄, 안중근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다른 독립 운동가들과 함께 의병 부대를 조직했어요. 그리고 자신은 참모 중장이 되어 항일 무장 투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그해 6월 안중근은 의병 200여 명을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함경도 경흥으로 가서 일본 군인과 경찰 수십 명을 죽이는 성과를 거두었어요. 이때 그는 포로로 잡은 일본군을 당시 국제법에 따라 모두 풀어주었어요.


얼마 후 안중근이 이끄는 의병 부대는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크게 패하였고, 부대원들은 뿔뿔이 흩어졌어요. 안중근도 일부 부하들과 함께 굶주림에 시달리며 산길을 헤매다 간신히 러시아 연해주로 돌아갈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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