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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복, 우리땅 독도를 지키다
독도(경북 울릉군)“긴급 속보입니다. 오늘 서해에 중국 선박이 불법으로 우리 영토를 침범하여 물고기를 잡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해양 경찰은 긴급 출동하여 이들을 쫓아내고 있습니다.”“쯧쯧. 남의 나라 영토까지 침범하여 물고기를 잡다니, 우리 어민들의 피해가 크겠어. 이런 일이 없어야 될 텐데.”조선 시대에도 이와 똑같은 일들이 있었어요. 어디에서 일어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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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0
3
안용복, 울릉도에서 일본인 어부를 만나다
우리나라 동쪽 바다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있어요. 지금과 달리 조선 시대 조정에서는 울릉도가 왜구의 근거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해 섬에 사는 사람들을 육지로 보내는 정책을 폈어요.하지만 울릉도와 독도 부근 바다에는 어업 자원이 풍부했어요. 때문에 많은 조선 어부들이 이곳에서 고기잡이를 하였어요.1693년(숙종 19년) 봄 어느 날이었어요. 부산 동래 사람 안용복은 울산 어부 40여 명과 함께 고기잡이를 하러 울릉도에 갔지요. 그런데 이곳에 조선의 어부들이 아닌 일본의 어부들이 버젓이 고기잡이를 하고 있는게 아니겠어요? 안용복은 화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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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08-30
2
일본 관리에 맞선 안용복
일본땅에 도착한 안용복은 다시 막부(당시 일본을 지배하고 있던 군사 정권)로 끌려갔어요. 안용복의 죄목은 일본 영토에서 고기를 잡았다는 이유였어요.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지요.“내가 무슨 죄가 있는가? 오히려 조선의 바다를 침범하여 불법으로 고기잡이를 한 그대들 나라의 어부들이 잘못한 것이요. 나는 이를 항의하고 꾸짖었을 뿐이오.”안용복은 기죽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항의하였어요. 일본 막부에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이며, 자신을 납치한 처사는 부당하다고 주장했어요. 안용복 사건을 계기로 조선 정부는 대마도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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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08-30
1
계속된 안용복의 싸움
1696년(숙종 22년) 봄 안용복은 울릉도로 다시 고기잡이를 하러 갔어요. 예상대로 또 일본 고기잡이 배들이 있는 거였어요.“어이~ 그대들은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왜 조선의 바다를 침범하여 불법으로 고기잡이를 하는가?”안용복은 큰 소리로 호통을 쳤어요. 안용복의 소리를 들은 일본 어선들은 도망가기 시작했어요. 안용복은 도망가는 그들을 독도까지 쫓아가 조선의 영토를 침범한 사실을 항의하였지요. 이번에는 아예 울릉도를 감독하는 관리라 스스로 일컫고, 일본 돗토리현에 가서 수령에게 항의하고 사과를 받고 돌아왔어요. 이때 안용복은 조선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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