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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암사동 유적(신석기시대)
신석기 시대 마을을 찾아서, 서울 암사동 유적
집 짓기를 고민하다
움집을 짓다
여러 가지 생활 도구를 사용하다
빗살무늬토기를 발명하다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터전이 발견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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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신석기 시대 마을을 찾아서, 서울 암사동 유적
서울 암사동 유적지(서울 강동구)“여긴 정말 살기 좋은 것 같아. 햇빛도 잘 들고. 무엇보다 근처에 강이 있어 먹을거리 걱정을 덜 수 있을 것 같아.”“그래 맞아. 난 다시는 동굴로 가기 싫어. 그런데 이제 날이 추워질 것 같은데 잠자리는 어떻게 하지?”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아 여기저기 옮기며 살았어요. 신석기 시대에는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먹을거리가 늘어났어요. 그래서 먹을거리를 구하기 쉬운 강가에 머물러 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추운 겨울 날 잠자리는 어떻게 해결하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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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08-23
5
집 짓기를 고민하다
신석기 시대 초기에는 사람들은 여전히 동굴에서 살기도 했어요. 그런데 매번 사냥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겨울엔 나무 열매 구하기도 어렵고요. 강가에는 물고기 등의 먹을거리가 많지만, 동굴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불편했어요. 또 동굴은 불을 피워도 바닥이 너무 차가웠어요.“벌써 며칠째 아무것도 잡지 못했으니 걱정이야. 내일은 멀지만 물고기를 잡으러 강가에 가보아야 하겠어.”“물고기를 잡기 쉬운 강가에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신석기 사람들은 고민하기 시작하였어요. 강가에 동굴은 없었어요. 그리고 바닥이 차갑고 어두운 동굴이 이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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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08-23
4
움집을 짓다
신석기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만의 안락한 집을 짓기 시작했어요. 땅을 파고, 주로 생활할 자리인 바닥은 평평하게 다졌어요. 그런 다음 주변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도리를 얹고, 서까래를 올린 뒤, 나뭇잎이나 짚을 엮어 지붕을 덮었어요. 이렇게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집이 완성되었어요. 이렇게 만든 집을 ‘움집’이라고 해요. 움(움푹 파인 구덩이)을 파고 지은 집이란 뜻이에요.움집(복원)문화재청움집은 햇볕이 잘 들도록 남향으로 지었어요. 나무와 풀만으로 지은 집이지만 땅을 파서 지었기 때문에 바람과 추위를 피할 수 있었어요. 집 한가운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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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08-23
3
여러 가지 생활 도구를 사용하다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는 자갈로 만든 도끼, 화살촉, 그물추, 괭이, 돌낫, 보습, 갈돌과 갈판 따위 같은 석기 유물들이 나왔어요. 이런 유물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지요.갈돌과 갈판의 사용특히 땅을 파는 데 쓰는 괭이와 보습, 낟알의 껍질을 벗기거나 도토리 등을 가는 데 쓰는 갈돌과 갈판은 신석기 시대에 농경이 시작되었음을 알려 주는 중요한 유물이지요. 화살촉과 그물추 등을 보면 사냥과 고기잡이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신석기 시대 여러 가지 생활 도구(암사동선사유적박물관)①돌괭이와 보습 ②돌도끼 ③돌화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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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08-23
2
빗살무늬토기를 발명하다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유물이 나왔어요. 끝이 뾰족한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었어요. 빗의 가느다란 살 같은 무늬가 새겨 있어 이 토기를 ‘빗살무늬 토기’라 부르게 되었어요.빗살무늬 토기국립중앙박물관토기는 흙으로 빚은 다음 불에 구워 만든 그릇을 말해요. 토기는 신석기 사람들이 음식을 저장하거나 음식을 조리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줘요.신석기 시대에는 먹을거리가 늘어나면서 이것을 보관할 그릇이 필요해졌어요. 토기를 발명함으로써 식량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끓여 먹을 수도 있게 되었어요.“그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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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08-23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터전이 발견되다
서울 암사동 유적지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어요. 그러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집을 짓고 먹고 살았던 흔적들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모래와 흙으로 덮여 버리고 말았지요.어느덧 사람들은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기억조차 잊은 채 아무 생각 없이 지나다녔지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렀어요.1925년에 서울 주변 지역에 엄청나게 많은 양의 비가 내렸어요. 한강에는 큰 홍수가 일어났지요. 강물은 넘치고 거센 물줄기는 주변 지역을 휩쓸었어요. 이때 한강변에 위치에 해 있던 암사동 지역의 흙들도 쓸려 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수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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