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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의 항몽유적 게시판 내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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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강화도를 떠난 삼별초는 진도의 벽파진에 내렸어요. 벽파진은 예부터 육지와 연결된 나루터가 있던 곳이에요. 조선 시대에는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준비하던 곳이었어요. 물살이 빠른 울돌목에서 벽파진은 배를 안전하게 정박시킬 수 있는 곳이었어요.벽파진에 내린 삼별초는 산의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용장산성을 근거지로 삼았어요. 성을 다시 정비하고, 가장 깊숙한 곳에는 개경의 만월대와 비슷하게 단을 쌓아 궁궐을 지었어요. 그리고 강화도에서 새로 모신 임금을 중심으로 새로운 조정을 만들었어요.용장산성진도군청삼별초는 몽골에 항복하지 않은 고려…

임진왜란 게시판 내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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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의 지원군이 조선에 도착하면서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 두 나라의 싸움을 넘어 동아시아 국제전쟁으로 확대되었어요. 조선의 관군과 명군은 힘을 합쳐 평양성을 되찾았어요. 또 김시민이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에 맞서 승리를 거두었어요.행주대첩평양성을 빼앗긴 일본군은 한성으로 후퇴했어요. 명의 군대는 한성에 있는 일본군을 다시 치려고 했으나, 길목에 숨어있던 일본군에게 크게 패했어요. 이후 명나라의 군대는 전쟁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지요. 한편, 한성에 모인 일본군도 많은 군대를 잃어 전쟁을 계속하기 …

  • 한성까지 진격한 일본군은 곧바로 평안도와 함경도 지역까지 올라갔어요. 하지만 이 무렵 일본군의 공격은 약간 주춤했지요. 바로 이순신 장군이 이끌었던 조선 수군의 활약 때문이에요. 원래 일본의 수군은 북진하는 육군에게 보급할 식량과 무기를 바닷길로 공급할 계획이었죠. 그러나 일본 수군이 조선 수군에 밀려서 바닷길로 진격하지 못했던 거지요.이제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에 대해 알아볼까요.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발생 1년 전 전라좌도수군절도사에 임명되었어요. 그는 전쟁을 대비하여 꾸준히 군사 훈련을 진행했다고 해요. 왜란이 일어난 후 …

김시민 게시판 내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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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시민이 진주판관에 부임한 다음 해인 1592년 임진년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어요. 일본군은 방어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조선군을 패배시키고 백성들을 약탈했어요.‘드디어 왜적들이 쳐들어왔구나!’지리적 요충지인 진주성김시민은 오래 전부터 이런 침략에 대비해 군사들을 훈련시켜 왔어요. 잘 훈련된 김시민 장군과 그 병사들은 일본군의 침략이 두렵지만은 않았어요. 김시민은 부하들과 함께 거창과 진해 그리고 창원 등을 침략한 일본군을 무찌르면서 큰 공을 세웠어요.일본군은 잇달아 김시민 장군에게 패하면서 기가 꺾였어요. 그러면서도 경상도 …

권율 게시판 내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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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92년 4월13일, 부산포에 첫 발을 내디딘 일본군은 이틀 만에 동래성을 점령하였어요. 그리고 파죽지세로 북상하여 불과 20일 만에 한양을 점령하고, 6월에는 평양과 함경도까지 진출했어요. 임금은 명과 가까운 의주로 피신을 갔지요.그러나 왜군은 더 이상 진격할 수 없었어요. 가장 중요한 식량과 군수물자가 더 이상 원활하게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남해를 돌아 서해로 진출해 물자를 보급하고자 했던 일본 수군은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에게 막혀 꼼짝도 못하고 있었고, 육지에서는 의병들의 유격전술에 물자를 보급하는 것이 쉽지 않…

이순신 게시판 내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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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수군의 승리 중 가장 큰 전투는 한산도 앞바다에서 일어났어요. 일본 수군은 해전에서의 계속된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병력의 수를 늘렸고, 함선 70여 척을 견내량에 정박케 하였어요. 견내량은 통영과 거제도 사이의 좁고 긴 수로로 폭이 넓은 곳도 600m를 넘지 않았어요. 게다가 암초가 많아 판옥선이 움직이면서 전투를 벌이기에는 알맞지 않았지요.이순신은 먼저 판옥선 5~6척을 견내량으로 보냈어요. 일본 수군을 넓은 한산도 앞바다로 끌어내기 위한 미끼였어요. 일본군은 조총을 쏘며 판옥선을 공격하였어요. 조선 수군은 패한 척을 하며 …

  • 부산진과 동래성을 점령한 왜적이 계속 북상하고 있을 때, 경상우수사 원균은 남해현 앞바다에 피신해 있었어요. 원균은 옥포가 전라도와 충청도에까지 이르는 해로의 목줄임을 깨닫고 부하 장수를 이순신에게 보내어 적의 상황을 알리고 구원을 요청하였어요.이순신은 대형 전선인 판옥선 24척, 중형 전선인 협선 15척, 소형 어선인 포작선 46척, 모두 85척으로 구성된 함대를 이끌고 여수의 전라좌수영을 출발하여 당포 앞바다에서 원균의 경상우수영의 함대(판옥선 4척, 협선 2척)와 합류하였어요. 포작선이란 당시 어선인데 수적으로 불리한 조선 수…

  • 1592년 4월 일본군 20만이 바다를 건너 조선을 침입해 왔어요. 조선이 건국된 지 200여 년 이래 가장 큰 외침이었지요.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에게 부산진성과 동래성이 이틀 만에 함락되었어요. 오랜 평화에 방심하고 있던 조선군이 조총으로 무장한 수많은 일본군의 기습 공격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지요.선조는 급히 신립에게 정예 기병 8,000명을 주며 일본군을 막을 것을 지시했지만 충주 탄금대에서 그만 전멸하고 말았어요.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한 달이 되지 않아 한양을, 두 달 만에 평양성을 점령하였어요. 일본군의 빠른 진…

  • 한산도(경남 통영시)“장군! 일본군이 조총이란 화약무기를 앞세워 우리나라를 쳐들어왔다 하옵니다.”“군선도 많지만 해적질로 단련된 일본군을 막기에는 우리 수군의 힘이 부족합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일본이 조선을 침략해 오자 이순신의 고민은 커져 갔어요. 이순신은 강한 일본 수군에 맞서 적은 수의 수군으로 어떻게 싸웠을까요?

조선의 화약 무기 게시판 내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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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통은 화약의 폭발력을 이용해 화살이나 탄환을 발사하는 무기로, 화포의 한 종류예요. 구리와 주석, 납을 녹인 쇳물을 거푸집에 부어 만들었지요. 총통은 크기, 화약의 중량, 탄환의 수, 사정거리에 따라 천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등으로 나뉘었어요.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이름 지은 거예요.가장 큰 총통은 천자총통이에요. 천자총통은 쇠로 만든 탄환이나 화살 모양의 대장군전을 멀리 쏘아 보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천자총통은 몸체가 크기 때문에 한 번에 사용하는 화약의 양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은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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