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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조선의 도자기, 분청사기와 백자
분청사기와 백자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전하! 나라가 세워진 후 금속의 쓰임이 많아 그 양이 매우 부족하옵니다. 이를 어찌해야 하올런지요?”“금속으로 만들던 그릇을 자기로 바꾸면 어떠하겠는가. 먼저 궁궐에서 쓰는 은그릇부터 백자기로 대신하라.”세종이 말한 백자기는 주로 조선시대 만들어진 백자를 말해요. 백자는 조선을 대표하는 도자기였어요. 조선 시대에는 청자 대신에 왜 백자를 많이 만들었을까요? 백자는 청자와 달리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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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08-28
5
나라와 흥망성쇠를 함께한 도자기
고려 말 귀족들의 수탈과 왜구의 약탈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져 가고 있을 무렵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새로운 무인 세력과 유학자들이 나타났어요. 대표적으로 이성계, 정몽주, 정도전 등이 있지요.이들은 왜구를 물리치며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제도를 바꿔가며 고려를 개혁하고자 했어요. 불교 대신 유학을 나라의 중심으로 삼고자 했던 이들은 화려한 그릇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손쉽게 쓰일 수 있는 검소하고 실용적인 그릇을 원했어요. 이때 많이 만들어진 것이 분청사기에요.청자 상감어룡문 매병(조선 전기), 분청사기 상감연화문 매병(조선 전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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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08-28
4
청자와 백자의 특징을 모두 간직한 분청사기
분청사기는 청자를 만들던 흙으로 그릇을 빗고, 그 위에 백자를 만들 때 사용하는 백토를 발라 구운 자기를 말해요. 그릇에 백토를 바르는 것을 분장이라고 하는데, ‘흰색의 분장토를 입힌 회청색의 사기’(분장회청사기)를 줄여서 ‘분청사기’라고 불러요.분청사기는 고려 말에 자기 만들 때 사용하던 여러 분장 방법을 따라했어요. 대표적인 것이 인화상감기법이에요. 이 기법은 청자를 만들 때 세밀하게 문양을 새기던 상감기법을 도장을 이용하여 반복적인 문양을 찍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에요. 여러 가지 문양을 하나의 그릇에 반복적으로 찍어 질서 있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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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08-28
3
백자는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처음 백자를 만난 것은 통일신라시대였어요. 신라인들은 당과 교류하면서 차 문화와 함께 청자와 백자도 수입해 사용하였어요. 우리나라 사람이 직접 백자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는 확실치 않아요. 다만 발굴된 도자기 유물을 연구한 결과 대체로 청자가 만들어진 시기와 거의 같을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어요.고려시대 가장 인기 있는 도자기는 청자였어요. 같은 가마에서 색이 다른 백자도 함께 구웠어요. 이것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청자와 백자를 따로 만들었던 중국과는 매우 달랐어요.한 가마에서 청자와 백자를 굽다보니 문제가 생겼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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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08-28
2
백자, 나라의 그릇이 되다
조선 시대 백자가 나라의 그릇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질 좋은 백토와 함께 제작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제작 기술의 핵심은 가마 안의 온도를 높고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었어요.전통적으로 가마는 경사진 언덕에 굴 모양으로 길게 만들었어요. 아궁이에서 땔감으로 불을 피우면, 경사를 따라 열이 흐르면서 그릇을 구웠어요. 그리고 가마 맨 뒤의 굴뚝으로 연기가 빠져 나가게 만들었어요.그런데 가마가 길어 아궁이에서 먼 가마 뒤쪽은 온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생겼어요. 가마 전체가 높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고려시대에는 가마 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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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08-28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일본 도자기의 시조가 된 이삼평
“들도 산도 섬도 죄다 불태우고, 사람을 죽인다. 그리고 산 사람은 줄과 대나무 통으로 목을 묶어 끌고 간다.”임진왜란 당시 일본인 승려가 쓴 글 속에 나오는 모습이에요.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은 전쟁에서의 성과를 쌓기 위해 죄 없는 조선의 백성들을 죽이고, 그들의 귀와 코를 베어 일본으로 보냈어요.많은 백성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갔어요. 하지만 일본군은 조선의 도공만은 죽이지 않았어요. 일본의 우두머리였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의 도공들을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에요. 일본군은 붙잡은 도공들을 줄로 묶어 일본으로 끌고 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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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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