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창경궁의 역할이 점점 커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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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으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조선의 대부분 궁궐이 불탔어요. 전쟁이 끝난 후 광해군 때는 불에 탄 궁궐을 하나둘씩 복구했어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조선 시대 법궁이면서 가장 먼저 세워진 경복궁은 제대로 복구되지 않았어요. 그 대신 창덕궁을 복구하고 중심 궁궐로 사용하였어요.


그러자 창덕궁 바로 옆에 있던 궁궐인 창경궁도 복구가 이루어지고 그 기능이 점점 커졌어요. 특히 인조가 광해군을 쫓아내고 왕이 된 사건인 인조반정 과정에서 창덕궁이 불에 타는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되자 창경궁은 더욱 중요한 궁궐이 되었어요. 그래서인지 조선 후기 왕실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창경궁에서 일어나요.

정전인 명정전 바로 옆에는 왕이 일상적인 나랏일을 하고 신하들과 경연을 하던 문정전이 있어요. 다른 궁궐은 보통 정전 뒤에 왕이 일상적인 일을 하던 건물이 있는데 창경궁은 조금 다르지요. 이 문정전 앞마당에서는 조선 왕실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일로 손꼽히는 사건이 발생해요. 바로 영조가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고 죽인 일이죠.


영조는 훗날 사도세자의 사당을 창경궁 동쪽에 있던 후원인 함춘원으로 옮겨 지었어요. 그리고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이를 경모궁이라 고쳐 부르고 아버지를 기렸어요. 정조는 아버지 사당인 경모궁을 자주 찾아가 참배했는데 이를 위해 창경궁에 ‘월근문’이라는 새로운 문을 냈어요. 월근문은 커다란 문과 작은 문이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에요.


명정전 뒤의 문을 지나면 창경궁에서 왕비와 대비가 머물던 내전인 경춘전이 있어요. 경춘전은 원래 성종이 어머니인 인수대비를 위해 지은 것이에요. 이곳은 훗날 정조와 헌종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죠. 특히 정조가 태어날 무렵 사도세자는 흑룡이 경춘전 지붕 위로 내려오는 꿈을 꾸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경춘전 안 동쪽 벽에 흑룡을 그려 넣었다고 해요. 아쉽게도 이 그림은 현재 전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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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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