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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창덕궁과 함께 창경원으로 불린 궁궐, 창경궁
성종, 세 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궁궐을 짓다
창덕궁과 함께 동궐로 불렸어요
창경궁의 정문, 홍화문
조선 시대 궁궐 정전 중 가장 오래된 명정전
창경궁의 역할이 점점 커졌어요
왕궁에서 공원이 된 창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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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창덕궁과 함께 창경원으로 불린 궁궐, 창경궁
창경궁 명정전(서울 종로구)“소문 들었나? 정조 임금께서 어머니 회갑을 기념해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신다고 하던데?”“나도 들었네. 홍화문 앞에서 주신다고 하더군.”1795년 정조는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이하여 홍화문 앞에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어요. 이때 한양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102석이 넘는 쌀을 나누어 주었어요. 홍화문은 어느 궁궐에 있는 문일까요? 이 궁궐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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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08-29
8
성종, 세 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궁궐을 짓다
홍화문은 창경궁의 정문이에요. 창경궁은 조선 시대 궁궐 중 하나로 성종 때 만들어졌어요. 창경궁이 세워지기 전 이곳에는 원래 수강궁이 있었어요. 수강궁을 세운 왕은 세종으로, 그는 왕위에서 물러나 상왕이 된 아버지 태종을 모시기 위해 창덕궁의 동쪽에 수강궁을 지었어요.수강궁이란 이름에는 아버지가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세종의 마음이 담겨있어요. 수강궁은 태종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잘 사용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1483년(성종 14)에 수강궁 터를 넓혀 만든 궁궐이 창경궁이에요. 성종은 세 분의 대비를 편안히 모시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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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08-29
7
창덕궁과 함께 동궐로 불렸어요
조선 시대 그려진 도성도 전체와 부분국립중앙박물관지도는 조선 시대에 그려진 『도성도』의 전체 모습과 그중 창경궁이 있는 부분을 확대한 것이에요. 지금은 창경궁과 창덕궁, 종묘는 각각 담으로 나뉘었거나 떨어져 있는데 지도를 보면 세 장소가 한 울타리 안에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어요. 또 창경궁의 동쪽에는 성균관이 자리 잡고 있어요.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을 비롯한 궁궐이 모두 불타는 피해가 일어났어요. 창경궁도 건물 대부분이 불타버렸어요. 전쟁이 끝난 후에 창덕궁이 먼저 다시 지어졌고 7년 후인 1616년 창경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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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08-29
6
창경궁의 정문, 홍화문
홍화문은 창경궁의 정문으로 경복궁, 창덕궁과는 다른 특징이 있어요. 광화문(경복궁의 정문)과 돈화문(창덕궁의 정문)은 남쪽을 향하지만, 홍화문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어요.그리고 다른 궁궐은 정문에서 궁궐의 가장 중요한 공간인 정전까지 가려면 3개의 문을 통과하는데 창경궁은 2개의 문만 지나가면 돼요. 즉, 홍화문과 명정문을 지나면 바로 정전인 명정전으로 갈 수 있었죠. 어떻게 보면 궁궐의 일반적인 격식과는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죠.홍화문문화재청홍화문은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던 곳이에요. 조선의 21대 왕인 영조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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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08-29
5
조선 시대 궁궐 정전 중 가장 오래된 명정전
정전은 궁궐에서 중심이 되는 건물이에요. 새로운 왕이 즉위하거나 여러 공식적인 행사가 열리는 곳이지요. 경복궁의 근정전, 창덕궁의 인정전처럼 말이에요. 창경궁에도 다른 궁궐처럼 정전이 있어요. 바로 명정전이지요.명정전명정전은 근정전이나 인정전처럼 크지 않지만, 조선 시대 5대 궁궐(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의 정전 중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에요.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광해군 때 다시 지어 현재까지 이어졌거든요.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에서 명정전까지 가려면 먼저 옥천교를 지나야 해요. 조선의 모든 궁궐은 앞마당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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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08-29
4
창경궁의 역할이 점점 커졌어요
임진왜란으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조선의 대부분 궁궐이 불탔어요. 전쟁이 끝난 후 광해군 때는 불에 탄 궁궐을 하나둘씩 복구했어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조선 시대 법궁이면서 가장 먼저 세워진 경복궁은 제대로 복구되지 않았어요. 그 대신 창덕궁을 복구하고 중심 궁궐로 사용하였어요.그러자 창덕궁 바로 옆에 있던 궁궐인 창경궁도 복구가 이루어지고 그 기능이 점점 커졌어요. 특히 인조가 광해군을 쫓아내고 왕이 된 사건인 인조반정 과정에서 창덕궁이 불에 타는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되자 창경궁은 더욱 중요한 궁궐이 되었어요. 그래서인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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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08-29
3
왕궁에서 공원이 된 창경궁
일제는 순종이 황제가 된 1907년부터 창경궁의 전각들을 부수고 그 자리에 동물원, 식물원 등을 만들고 유원지로 만들어 버렸어요. 이름도 창경궁에서 창경원으로 바꾸었어요. 순종은 창경원에 관람객을 받지 않는 날인 목요일에만 이곳을 산책할 수 있었다고 해요.1922년 일제는 창경원 곳곳에 벚꽃 나무를 심었어요. 그 후 봄에 벚꽃이 필 무렵 밤늦게까지 창경원 문을 열고 사람들이 벚꽃놀이하는 곳으로 바꾸어버렸어요. 일제 강점기뿐 아니라 광복 이후 1970년대 말까지도 봄이 되면 창경궁에는 벚꽃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1960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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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08-29
2
창경궁에만 있는 건축물
창경궁에는 다른 궁궐에서 볼 수 없는 건축물이 있어요. 먼저 성종대왕태실과 성종대왕태실비를 꼽을 수 있어요. 조선 시대에는 왕실의 자손이 태어나면 명당자리에 태를 담은 항아리를 묻고 태실비를 세웠어요. 성종대왕태실과 태실비도 원래는 창경궁에 있던 것이 아니에요. 경기도 광주에 있던 것을 일제 강점기 이곳으로 옮긴 것이에요.성종대왕태실과 성종대왕태실비창경궁에는 석탑도 있어요. 그것도 무려 두 개나 있어요. 하나는 명정전 뒤 편에 있는 5층 석탑이고, 나머지는 성종대왕태실을 지나 춘당지라는 연못으로 가는 길에 있는 팔각칠층석탑이에요.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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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08-29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창경궁 복원 이야기
일제가 물러가고 광복이 된 후에도 훼손된 창경궁의 모습은 거의 그대로였어요. 그러다가 1980년대에는 훼손된 창경원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자는 의견이 제시되었어요.정부는 1981년 창경궁 복원 계획을 세웠어요.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약 3년 동안 공사를 마친 뒤 창경원에 살던 동물은 서울대공원으로 옮겼어요. 여러 전각을 복원하고 이름도 다시 창경궁으로 고쳐 불렸어요.해마다 봄이 되면 예쁜 꽃을 피우던 창경궁의 벚꽃을 어떻게 할지 의견이 분분했어요. 논의 끝에 벚꽃 일부를 여의도 윤중로와 서울대공원에 옮겨 심었어요. 그리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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