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 대원군의 통치를 끝내는데 앞장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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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은 1833년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났어요. 그는 가난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아들의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 덕분에 여러 곳을 이사 다니며 좋은 스승들을 만났어요. 14세 무렵에는 뛰어난 유학자로 이름이 높은 이항로의 제자가 되었어요.
뛰어난 스승 밑에서 열심히 공부한 그는 23세 때 과거에 합격하여 관리가 되었어요. 관리 생활을 하던 중 1863년 고종 임금의 즉위와 함께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이 권력을 잡는 것을 보았어요. 나이 어린 고종을 대신해 흥선 대원군은 왕권을 강화하고 나라의 재정을 튼튼히 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펼쳤어요.
그러나 그는 왕권 강화를 위한 무리한 정책을 펼치기도 했어요. 경복궁을 다시 지으며 고액 화폐인 당백전을 발행한 것이 대표적이에요. 당시 사용되던 돈보다 실제 가치가 5∼6배나 되는 당백전이 발행되자 물가가 크게 올랐고,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워졌어요. 그러자 최익현은 당시 최고 권력에 있던 흥선 대원군의 정책을 과감히 비판하는 상소문을 올렸어요. 이 때문에 그는 하찮은 관직으로 밀려나게 되었지만,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게 되었어요.
이후 관직에서 물러난 최익현은 상소문을 올려 흥선 대원군의 서원 폐지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어요. 또한 고종 임금의 나이가 20대가 되었으니 직접 정치를 해야 한다며 흥선 대원군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의 상소문으로 조정은 발칵 뒤집혔어요. 흥선 대원군의 눈치를 보던 많은 신하가 최익현을 벌주어야 한다고 하였지만, 최익현의 주장을 옳게 생각한 고종은 그를 보호해 주었어요.
결국 흥선 대원군은 10년 만에 최고 권력을 행사하던 자리에서 물러났어요. 최익현의 주장이 실현된 것이지요. 그러나 상소문의 내용이 과격하다는 이유로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되었지만 고종의 배려로 그는 3년 만에 풀려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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