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항구를 여는 것을 반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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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의 제주도 귀양살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최익현은 학문 연구에 몰두하며 평범한 생활을 했어요. 그러나 이러한 그의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어요. 1876년에 일본은 군함을 이끌고 인천 앞바다에서 대포를 쏘는 무력시위를 하며 조선의 개항, 즉 항구를 여는 조약을 맺자고 압박했어요. 그러면서 개항 이후에 서로의 물건을 자유롭게 사고파는 교역을 하자고 했어요.
고종을 비롯해 많은 신하가 일본의 요구를 들어줄 것인지 거절할 것인지 여러 차례 회의했어요. 그러나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어요.
이러한 소식을 들은 최익현은 붓을 들어 개항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썼어요. 그리고 상소문과 함께 도끼를 들고 고종 임금이 있는 한양의 경복궁으로 갔어요.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끼로 자신을 죽여달라는 강력한 의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지요. 경복궁의 광화문 앞에 꿇어앉은 그는 도끼를 옆에 두고 다음과 같은 상소문을 올렸어요.
나라의 항구를 여는 조약을 맺게 되면 일본의 값비싼 사치품이 수입되고 쌀과 같은 우리의 생필품이 수출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생필품이 부족하게 되어 결국 조선의 경제는 망하게 될 것입니다.
……
저들이 일본인이지만 실제로는 서양 도적과 같습니다. 또한 저들에게 나라의 문을 열게 되면 서양의 종교가 들어오게 되어 우리의 아름다운 풍속을 해치게 될 겁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저는 목숨을 걸고 나라의 문을 여는 조약을 맺는 것에 반대합니다.

궁궐 앞에서 조약 체결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린 최익현의 모습
당시 다른 나라의 문화나 상품을 받아들이는 것에 관심을 가졌던 고종은 최익현의 상소문을 달가워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론이 나지 않은 나라의 정책에 대해 예의 없이 도끼를 가지고 임금이 행차하는 길옆에 엎드려 상소문을 올렸다며 최익현을 귀양보냈어요.
흑산도에서 귀양살이하던 하던 최익현은 1879년에 풀려났어요. 집으로 돌아온 그는 한동안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학문 연구에만 힘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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