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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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사변과 단발령을 비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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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최익현에게 더는 참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어요. 청일 전쟁(1894∼1895)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침략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였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고종은 러시아를 내세워 일본을 견제하려고 했어요. 당시 고종을 가장 도와주고 조언을 해준 사람은 바로 왕비(후의 명성 황후)였어요.


그러자 일본은 조선에 대한 침략을 성공시키기 위해 명성 황후를 시해하는 참혹한 일을 저질렀어요. 이어서 친일 관리를 내세워 여러 정책을 펴게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단발령이었어요. 단발령은 짧은 머리가 위생적이고 일상에서 작업 효율을 높여준다는 구실로 머리의 상투를 자르라고 명령한 법이었는데, 일본의 강요로 고종도 상투를 잘랐어요.


왕비를 국모, 즉 나라의 어머니라고 여기는 조선의 백성들에게 을미사변은 참을 수 없는 사건이었어요. 또한 부모님이 물려주신 몸을 훼손하지 않는 것을 효의 으뜸으로 삼는 유학자들에게 단발령은 불효막심한 행동을 요구하는 법이었지요.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항일 의병이 일어났어요. 최익현 또한 오랜 침묵을 깨고 상소문을 올렸어요.


‘목을 자를지언정 머리는 자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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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령 시행을 묘사한 조선 말기 풍속화가 김준근의 그림과 단발한 고종의 모습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국사편찬위원회




또한 일본의 이익에 협조하는 친일 관리들의 처단을 주장했어요. 고종은 유학자들의 존경을 받았던 최익현에게 의병의 해산을 요청하는 일을 부탁했어요.


“저들은 모두 충성과 의리를 앞세운 백성들입니다.”


최익현은 의병을 감싸주며 고종의 명을 거부하였어요.

이후에도 최익현은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상소문을 올렸어요. 상소문을 통해 최익현은 나라의 전통 질서를 지키고 침략에 앞장선 일본과 친일 관리들을 비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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