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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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에 맞서 항일 의병을 일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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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러일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침략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졌어요. 대한 제국의 영토를 일본이 군사적 목적으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강요하였고, 대한 제국의 살림살이를 맡는 재정 분야를 일본인과 상의해서 결정하도록 했어요. 이러한 상황을 고쳐보고자 고종 황제는 비밀 편지를 최익현에게 보내 도움이 되는 말을 해달라고 했어요.


최익현은 궁궐로 가서 고종 황제에게 다섯 가지의 개혁안을 올렸어요. 그러나 그의 개혁안은 반영되지 못하였고, 오히려 일본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어 고향으로 강제로 보내지기도 하였어요.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고종 황제에게 나라의 외교권을 포기하라고 강요했어요. 결국 친일 관리를 내세운 일본에 의해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겨준다는 을사늑약이 강제로 맺어졌어요. 다른 나라와 조약을 맺는 등의 외교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거의 식민지 상태와 다름없는 것으로 우리의 주권을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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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 체결 후 모인 일본 관계자들 : 가운데 동그라미가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

서울역사박물관




이러한 상황에서 최익현은 다음과 같은 상소문을 올려 을사늑약은 일본의 강요에 의한 것이므로 무효라고 주장했어요.


“우리나라가 스스로 외교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면 이것은 나라가 없고 임금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라가 없고 임금이 없게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노예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의 노예가 된다면 살아도 죽는 것만 못합니다.”

“폐하! 을사늑약에 협조한 이완용, 박제순, 이근택, 이지용, 권중현 등의 친일 관리, 즉 을사 5적을 처단하십시오. 폐하께서 직접 조약이 무효라는 것을 선언하고, 외국 대사관들이 철수하기 전에 조약이 무효라는 글을 전달해야 합니다.”


상소문을 통한 자신의 주장이 반영되지 않자, 최익현은 직접 의병을 일으키기로 했어요. 그는 전국 각지의 이름난 유학자들에게 글을 보내 의병을 일으킬 것을 요청했어요. 또한 세금 내는 것을 거부하고, 일본의 기술로 만들어진 철도 이용도 거부하며, 일본 상품도 사지 말자며 주장했어요. 특히 하루빨리 의병을 일으켜 일본과 싸우자고 호소했어요.


이러한 그의 호소에 여러 유학자와 농민들이 참여했어요. 그는 74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직접 의병장이 되어 전라도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어요. 그가 이끈 의병은 큰 싸움 없이 태인을 점령하여 그곳의 무기와 세금을 접수했어요. 이어 전라북도 정읍에 도착해 무기와 병력을 늘렸어요. 나아가 주민들의 환영 속에 전라북도 순창까지 점령하였으며, 전라남도 곡성에 가서 일본이 만든 관청도 철거했어요.

그러자 일본의 압력에 굴복한 대한 제국은 군대를 보내 진압 작전을 전개했어요. 결국 병력과 무기에서 일본군을 당할 수 없었던 최익현의 의병은 패배하였고, 최익현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어요. 그 후 최익현은 일본군 사령부로 넘겨졌어요. 일본은 최익현을 달래기도 하고 겁도 주며 일본에 협조하라고 했어요. 최익현은 일본의 침략에 반대한다는 자기의 뜻을 꺾지 않았어요. 결국 최익현은 쓰시마섬에 귀양 가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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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섬으로 유배가는 최익현

국사편찬위원회




일본 쓰시마섬의 감옥에서 단발을 강요당한 최익현은 이를 거부하며 단식을 했어요. 결국 일본이 오해라며 단발령을 거두어들이자 그제야 최익현은 단식을 중단했어요. 그러나 74세라는 나이로 인해 병을 얻었고, 결국 쓰시마섬에 간지 4개월여 만에 순국하였어요. 이듬해 그의 유해가 우리나라로 돌아왔어요.

최익현은 조선 말기에 전통 질서를 지키려는 굳센 의지의 유학자이자 일본의 침략에 맞서 목숨을 바쳐 의병을 일으킨 애국자로 평가받고 있어요. 이와는 달리 당시 세계정세의 흐름을 파악해 외국의 이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전통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한 고집 센 인물로 평가받기도 하지요. 여러분이 당시 최익현과 같은 시대에 살았더라면 어떤 선택을 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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