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식

일제에 맞서 실력을 키우기 위한 운동을 펼치다

본문

1913년 조만식은 공부를 마치고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곧바로 오산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조만식은 오산학교에서 헌신적으로 일했어요. 처음에는 월급도 받지 않았어요. 또 학생을 가르치는 일뿐만 아니라 기숙사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했어요.


1919년 일제에 우리의 독립 의지를 보여 준 3·1 운동이 일어났어요. 조만식은 1915년 오산학교의 교장이 되었다가 이 무렵 교장에서 물러나 평양에서 3·1 운동에 적극 참여해 수배되었어요. 그후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려고 떠나다가 체포되었어요.


조만식은 감옥에서 풀려난 후 국내에서 일제에 맞서 우리 민족의 실력을 키우기 위한 운동을 펼쳤어요.


“우리 민족이 일제에 맞서 실력을 키우려면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든 물건을 사용하도록 합시다.”


조만식은 평양에서 물산장려운동을 주도했어요. 물산장려운동은 일제로부터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위해 우리 민족이 만든 물건을 사용하자는 운동이에요. 1920년 평양에서 이 운동을 펼치기 위해 ‘조선물산장려회’가 만들어졌어요. 뒤를 이어 각 지방과 서울에서도 물산장려운동을 하기 위한 단체가 만들어졌어요.




5150af1e0f64374eeb09dbe2522f6ebf_1788222331_5036.png
물산장려운동을 이끄는 조만식




조만식은 뒤이어 1923년에는 일제에 맞설 수 있는 실력 있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조선민립대학기성회’를 만들어 우리 대학을 세우기 위한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어요.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6건 1 페이지
게시물 검색

최근글


  • 글이 없습니다.

새댓글


  • 글이 없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