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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지방 사립 학교, 서원
도산 서원 전교당(경북 안동시)문화재청“난 이번에 우리 고장에 생긴 서원으로 가서 공부할 생각이네.”“나도 마찬가지네. 내가 존경하는 유학자를 마음에 기리며 공부를 하면 학문이 더 깊어질 것이라 생각하네.”조선 시대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공부하는 곳은 성균관이에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지방에는 사립 학교인 서원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곳에서 많은 인재가 열심히 학문을 배웠어요. 그럼 서원은 어떤 학교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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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08-29
6
조선, 서원을 세우다
서원은 교육기관이지요. 그래서 공부하기 좋은 한적한 곳에 세워졌어요. 또 서원에서는 뛰어난 업적을 남긴 유학자들의 제사를 지내기도 했지요. 이황은 서원을 세우며 이렇게 말했어요.서원은 성균관이나 향교와 달리 산천이 아름답고 한적한 곳에 있어 유혹에서 벗어나기 쉽고, 교육적 성과도 크다.서원은 쇠퇴하여 허물어진 사찰이나 절터, 뛰어난 옛 유학자의 고향 등에도 세워졌어요. 예컨대 순흥의 소수 서원은 중국의 성리학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안향의 고향 마을인 영주 순흥면에 세워졌어요.또 이름난 유학자가 살아 있을 때 세웠던 서당이 발전하여 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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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08-29
5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 세워지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은 조선 중종 때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이에요. 주세붕은 경상도 풍기 군수로 부임하면서 그곳 출신인 성리학자 안향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지었어요. 그리고 사당 옆에 공부할 수 있는 강당을 세워 지방 양반 자제들에게 성리학을 교육하였지요. 이렇게 제사 지내는 장소인 사당과 학문을 배우는 장소인 강당이 합쳐진 공간인 ‘서원’이 만들어지게 되었지요.소수 서원(경북 영주시)문화재청백운동 서원은 이황이 풍기 군수로 있을 때 소수 서원으로 이름이 바꾸었어요. 이황은 서원을 통해 성리학을 널리 알리고자 하였어요. 그래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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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08-29
4
사림의 밑거름이 된 서원
명종 때는 훈구 세력이 권력을 잡고 있었어요. 훈구 세력은 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운 이후 권력을 확대해 나갔던 사람들이었죠. 이들은 주요 관직을 독점하고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재산을 늘렸어요. 이 과정에서 적잖은 비리와 부정이 일어나기도 하였지요.이와 달리 사림 세력은 지방에서 학문 연구와 교육에 힘썼던 학자들로 도덕과 의리에 바탕을 둔 정치를 추구하였지요. 사림은 적극적인 언론 활동으로 훈구 세력의 비리를 비판하였지요. 그러다 사림은 정치적 반대 세력인 훈구 세력에게 몰려 큰 화를 입게 되지요. 이 사건을 사화라고 해요.사림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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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08-29
3
서원에서는 무엇을 공부하였을까요?
서원에서는 어떻게 공부를 하였을까요? 대체로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시경, 춘추 등의 유학 경전을 공부했어요. 독서와 제술(글쓰기), 강송(글의 뜻을 밝히며 읽음)과 같은 공부 방법으로 말이지요. 서원에는 오늘날처럼 학생들의 출석 확인도 하였고, 성적을 평가하는 생활기록부도 있었어요.서원에는 원장을 비롯한 임원이 있었어요. 원생을 가르치는 책임자를 훈장 또는 강장이라 불렀어요. 동재와 서재의 사무를 담당하는 재장, 원생의 훈육을 담당하는 집강 등이 있었지요.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돈암 서원(충남 논산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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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08-29
2
붕당의 근거지가 된 서원
선조 때 사림파가 중앙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서원은 더욱 늘어났어요. 점차 서원은 교육하고 제사 지내는 것을 넘어, 양반들이 모여 국가의 중요한 문제를 의논하는 곳이 되었어요.이렇게 서원은 조선 후기 붕당 정치의 중심이 되었어요. 서원에서는 스승을 중심으로 학파를 형성하였어요. 같은 학파에서도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세력을 형성했지요.또 그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 서원을 이용했어요. 같은 서원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벼슬길에 나가서도 자기들끼리 무리를 형성하기 일쑤였지요. 각 세력은 자주 의견 대립을 일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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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08-29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설마 서원에서 이런 일이…
서원은 향촌 사람들이 모이는 일종의 공공장소였어요. 언제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지역 안팎의 여러 소식이 모여드는 곳이었지요. 향촌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서원에는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이 모여 논의를 거친 후 결정하곤 했지요.또한 효자‧열녀(남편이 죽은 후에도 죽을 때까지 혼자 살며 시부모를 모시거나, 남편을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인)를 표창하고 윤리에 어긋나는 짓을 한 자를 바로잡아 향촌의 기풍을 바로잡기도 하였어요.그러나 조선 후기 들어 일부 서원은 권위를 앞세워 무고한 백성을 괴롭히기도 하였어요. 백성에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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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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