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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농민군, 다시 일어서 외세 타도를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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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그들의 조선에 대한 영향력은 더욱 커져만 갔어요. 결국 20만여 명의 동학 농민군은 다시 봉기를 일으켰어요.


동학 농민군은 충청도 청주, 홍성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웠으나 상대가 되지 못했어요. 수적으로는 우세했으나 무기가 열악했지요. 전봉준은 농민군이 흩어져 싸우면 일본에 맞설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모든 농민군을 모아 공주를 점령하고 한성을 되찾으려는 계획을 세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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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농민군의 활약




10만 명에 가까운 동학 농민군이 공주와 가까운 논산에 다시 모였어요. 하지만 일본군과 조선 관군이 빠르게 움직여 공주를 먼저 차지했어요. 동학 농민군은 공주로 넘어가는 우금치에서 일본군과 만났어요. 동학 농민군은 기세를 높여 우금치에 올랐어요.

하지만 일본군과 관군은 우금치의 위쪽을 먼저 차지한 뒤 대포와 기관총, 신식 소총으로 농민군을 공격하였지요. 농민군은 죽음을 무릅쓰고 고개를 올라갔으나 점차 일본군에 밀릴 수밖에 없었어요.


“전투 후 1만여 명의 군병을 세어보니 남은 자는 불과 3천 명이고, 다시 두 번의 전투 후에 세어보니 5백여 명에 불과하였다.”


우금치 전투는 7일간 50여 차례나 계속되었어요. 하지만 일본군의 신식 무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패배하고 말았어요. 동학 농민군은 논산으로 밀려났다가 다시 전주로 후퇴했어요. 농민군은 군대를 다시 정비하고 전투를 벌였지만 역시 패하고 말았지요. 이후 일본은 조선에서의 영향력을 점차 확대해 나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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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농민군 유광화 편지

문화재청




동학 농민군에는 양반 출신 유광화도 참여했어요. 그는 여러 전투에 참여했고 군수 물자를 구하는 데 노력했던 인물이에요. 그가 동생 유광팔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농민군을 위해 돈을 구하는 내용이 기록되었어요. 하늘과 땅을 베고 자면서 힘겹게 싸워야 했던 각오가 담겨 있기도 해요.


유광화는 아마도 공주 우금치 전투 무렵에 생을 마감했던 것으로 보여요. 그때 동학 농민군은 남쪽으로 후퇴하면서도 여러 곳에서 싸웠지만 계속 패했어요. 농민군 대부분은 체포되거나 죽임을 당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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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된 후 재판을 받으러 가는 전봉준

동학농민혁명기념관




한편 군대를 이끌던 전봉준도 동학 농민군을 해산시키고 남쪽으로 피신하였어요. 하지만 옛 부하의 배신으로 관군에게 붙잡혔어요. 그리고 서울로 끌려와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후 시조 하나를 읊었지요.

때가 와 천지가 모두 힘을 합했는데


운이 다했으니 영웅도 스스로 할 바를 모르겠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를 세운 것이 무슨 허물이겠나.


나라 위한 오직 한마음을 그 누가 알까.


동학 농민군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고요. 또한 여러 다른 나라들의 간섭에서 벗어난 독립된 나라를 만들고자 했어요. 그래서 목숨을 걸고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 싸웠지요. 동학 농민군의 계획은 우금치에서 일단 중단되었지만 이후 의병 투쟁과 독립군들의 활동으로 이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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