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강화도 유적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연무당과 조선의 개항

본문

프랑스와 미국의 함대를 강화도에서 물리친 조선은 1875년 일본의 침략을 받았어요. 1854년 미국 함대에 의해 강제로 개항을 한 일본은 빠르게 서양을 닮아갔어요. 서양으로부터 우수한 함선과 무기를 수입한 일본은 자신들이 당한 그대로 조선을 위협해 조약을 맺으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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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요호 모형(전쟁기념관)




일본의 첫 공격 목표도 프랑스나 일본처럼 배를 통해 한성(서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목인 강화도였어요. 일본은 증기선 운요호를 초지진에 보냈어요. 그리고 물을 구한다는 핑계를 대고 접근했어요. 낯선 배에 조선군이 당황하고 있을 때 운요호는 초지진에 함포를 쏘았어요. 조선군도 반격하며 포를 쏘았어요.


다음날 초지진에 상륙한 일본군과 조선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어요. 일본군은 초지진을 파괴하고 다시 영종도를 공격하였어요. 영종도에서도 조선은 큰 피해를 입었어요. 다음 해 일본은 군함 3척을 몰고 강화도에 다시 나타났어요. 곧이어 강화성 서문 옆의 연무당에서 운요호 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협상이 벌어졌어요.

“일본 국기를 단 배에 포를 쏘아 피해를 주었으니 손해 배상을 하시오!”


“무슨 소리요! 당신들의 포격으로 초지진과 영종도의 많은 조선 백성이 죽었소. 손해 배상은 일본이 해야 할 것이오.”


연무당에서는 운요호 사건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억지를 부리는 일본 대표와 이를 막으려는 조선 대표의 회의가 계속되었어요. 일본은 열무당 주변에 무장한 병사와 개틀링 기관총을 배치하고 조선 대표를 위협했어요. 개항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조선은 결국 1876년 2월 일본과 강화도조약으로도 불리는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했어요.


강화도 조약은 세계 여러 나라에 조선의 항구를 연 첫 근대적 조약이었어요. 하지만 조약의 내용에는 조선의 산업을 지킬 수 있는 관세에 대한 내용도 없고, 범죄를 저지른 일본인을 조선이 처벌할 수도 없는 불평등한 조약이었어요.


개항기 프랑스와 미국에 맞서 싸워 이겨낸 조선은 일본의 힘에 밀려 불평등한 조약을 맺으며 개항을 했어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은 조선의 국력을 약하게 만들었고, 결국 나라를 잃는 결과를 낳았어요.

지금은 세계의 모든 나라와 경쟁도 하고 협력도 하는 세상이 되었어요.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세계 속에 우리가 당당하게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강화도의 여러 사건을 되짚어 생각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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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무당 옛터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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