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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의 침입을 이겨낸 고구려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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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의 침입을 이겨낸 고구려 산성
아차산 4보루(서울 광진구)문화재청“여보게. 큰일 났네. 이번에도 외적이 쳐들어왔다고 하네.”“걱정 말게나. 우리 고구려에는 튼튼한 산성들이 있지 않은가.”삼국 시대 고구려는 중국에서 일어난 강대국들의 잦은 침입을 막아내며 동북아 최강 국가로 우뚝 선 나라였어요. 그것은 고구려를 튼튼히 보호해준 수많은 성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고구려에는 어떤 성들이 있었을까요? 그 성들은 고구려를 어떻게 지켜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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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08-24
7
‘산성의 나라’ 고구려
성은 적을 막기 위하여 흙이나 돌로 높이 쌓은 큰 담이에요. 사람들은 성을 쌓아 자신이 속한 마을이나 나라를 지켜냈어요. 처음에는 주위에 나무로 만든 목책을 치다가, 흙을 다져 쌓는 토성으로 발전하였어요. 그러다 전쟁이 잦아지고 규모가 커짐에 따라 수만 개의 돌을 쌓아 올린 튼튼한 석성을 쌓게 되었지요.지금도 고구려 영토였던 중국 지역 일대를 여행하다 보면 곳곳에서 고구려 산성을 만날 수 있어요. 오녀산성, 환도산성, 국내성, 백암성, 안시성 등등. 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에만 200여 개의 고구려 성이 남아 있다고 하니 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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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08-24
6
평지성과 짝을 이룬 산성
고구려 사람들은 산과 평지에 짝을 이루어 성을 쌓았어요. 평소에는 평지성을 중심으로 생활하다가 외적이 침략하면 산성으로 옮겨가 방어를 했지요. 평지성은 주로 교통이 편리하고 넓고 평평한 곳에 쌓았어요. 살기에 공간이 넓고 물을 구하거나 물자를 보급하기 쉬워 살기 좋았어요. 하지만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기 힘들다는 약점이 있었어요.반면 산성은 길이 험하고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곳에 쌓았어요. 산 중턱에 쌓아 올린 두터운 돌 성벽은 성벽을 공격하는 대형장비 없이는 무너뜨리기 힘들었어요. 설령 성벽 공격용 장비들이 있더라도 이들 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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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08-24
5
오녀산성, 고구려의 첫 번째 산성
고구려는 주몽이 세운 나라에요. 주몽은 비류수(혼강) 유역의 작은 도시 졸본에서 나라를 세웠지요. 그때 그는 평지성인 졸본성을 쌓고, 위급할 때 피난하기 위해 졸본성과 연결된 산성을 쌓았어요. 그것이 바로 오녀산성으로 불리는 홀승골성이에요.오녀산성은 중국 랴오닝성 환런현(요령성 환인현) 동북쪽에 자리 잡고 있어요. 오녀산의 북쪽과 동쪽으로 연결된 높고 낮은 여러 산봉우리 가운데서 가장 높고 험한 800m의 산마루를 중심으로 그 둘레를 오녀산성이 감쌌어요.오녀산성은 산세가 험준하고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적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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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08-24
4
환도산성,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에 쌓은 산성
고구려는 유리왕 때 졸본에서 압록강 중류에 있는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겼어요. 졸본에서처럼 강을 끼고 평지성인 국내성을 쌓아 일상생활의 중심으로 삼았지요. 그리고 적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국내성 뒤에 있는 환도산에 산성을 쌓았어요. 이것이 환도산성이에요. 고구려군은 평소에는 국내성에 거주하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환도산성으로 들어갔지요.환도산성은 골짜기를 둘러싼 산줄기를 따라 성벽을 쌓았기 때문에 골짜기 안의 넓은 땅을 활용할 수 있었어요. 더구나 압록강까지 내려다보여 적의 움직임을 잘 관찰할 수 있었지요. 또 남문을 통하지 않으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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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08-24
3
대성산성, 고구려의 수도 평양에 쌓은 산성
고구려는 장수왕 때 평양으로 수도를 다시 옮겼어요. 427년 장수왕은 대성산 남쪽 기슭(지금의 평양 시가지에서 동북으로 7km)에 새로운 도성을 건설하였어요.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안학궁이 바로 새로운 평지성이었답니다. 안학궁의 남쪽에는 대동강이 흐르고, 북쪽에는 대성산이 병풍처럼 둘러쌌어요.대성산에는 거대한 산성을 쌓아 평상시에는 대동강 변 평지에 위치한 왕궁(안학궁)에서 거주하다 적군이 침입하면 산성(대성산성)으로 들어가 싸웠지요. 평지성과 산성이 짝을 이루는 국내성의 방어 체계가 완벽하게 재현되었지요.대성산성 성벽(평양직할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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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08-24
2
수와 당의 대군을 막아 낸 고구려 산성
고구려는 당의 침입에 대비해 송화강 연안 평야 지대에서 요동 평원 남단까지 천리에 걸쳐 성을 쌓았어요. 성을 천리에 걸쳐 일렬로 기다랗게 쌓았다고 하여 천리장성이라 불러요. 천리장성에는 성과 성 사이에 일정한 거리마다 수십 명의 군사가 머무를 수 있는 크고 작은 보루(요새)까지 세웠어요. 정말 물샐틈없는 방어막을 만들었지요.고구려가 수와 당의 대군에 맞서 치열하게 전쟁을 치른 곳은 랴오둥이라 불리는 랴오허 동쪽 지역이에요. 그곳에는 어떤 고구려 성이 있을까요?요동 평원의 평지성인 요동성은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어요. 이 성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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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08-24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 이야기가 서려 있는 온달산성
온달산성은 고구려 온달 장군의 이야기가 전해오는 성이에요. 온달 장군은 평강 공주와의 사랑으로 유명한 바로 그 ‘바보 온달’이에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고구려 25대 왕인 평강왕(재위 559~590) 때의 일이에요. 평강왕에게는 예쁜 딸 평강 공주가 있었어요. 그런데 공주는 어려서부터 잘 울었어요. 그럴 때마다 왕은 공주에게 이렇게 말했어요.“공주, 그만 울어라. 그렇게 자꾸 울면 온달에게 시집 보낸다.”온달은 이집 저집 구걸하며 홀로 눈먼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어요. 외모도 우스꽝스럽고 볼품없어 사람들은 그를 ‘바보 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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