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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수도를 지켜온 한양도성
유교 이념을 담은 한양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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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한양도성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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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수도를 지켜온 한양도성
한양도성(서울 종로구)“전하! 함경도 북청부 백성들이 쌓았던 한양 도성 구간이 얼마 전 무너져 내렸습니다. 당시 감독관에게 명하여 다시 쌓도록 하소서.”“알았소. 당시 감독관과 성을 쌓은 백성들을 한양으로 오게 해서 보수하게 하시오.”조선 시대 한양도성은 도읍지의 경계를 표시하는 동시에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이었어요.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전국에서 백성들을 뽑아 쌓았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를 했지요. 600년 넘게 조선의 수도를 지켜온 한양도성의 이모저모를 한 번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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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08-28
7
유교 이념을 담은 한양도성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옛 고려의 수도인 개경을 떠나 새로운 도읍지를 정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신하들에게 전국의 명당으로 소문난 곳을 두루 살펴보게 했어요. 태조 이성계가 직접 가서 명당들을 둘러보기도 했답니다.1393년에는 계룡산을 도읍지로 정하고 1년 가까이 궁궐을 짓기도 했어요. 그러나 하륜이라는 신하가 계룡산이 너무 남쪽에 치우쳐져 있다고 반대하여 계룡산의 도읍지 건설은 무산되었답니다. 그럼 이제 도읍지를 다른 곳으로 정해야겠죠? 태조와 신하들은 여러 곳을 고심한 끝에 결국 한양을 도읍지로 정했어요.한양은 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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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6
백악 구간
조선 시대 한양 사람들은 봄과 여름, 두 차례에 걸쳐 성 안팎을 구경하였는데, 이를 순성놀이라고 했어요. 순성놀이 때 사람들은 짝을 지어 성을 한 바퀴 돌면서 꽃과 버들을 구경하고 소원도 빌었어요.한양도성 순성길은 조선 시대 성곽을 따라 걸으며 풍경을 감상하던 순성놀이에서 유래된 총 6개 구간으로 총 25.7㎞에 이르는 길이에요. 6개 구간은 백악 구간, 낙산 구간, 흥인지문 구간, 남산 구간, 숭례문 구간, 인왕산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각 구간별로 살펴보도록 해요.창의문(서울 종로구)문화재청백악 구간은 창의문에서 백악을 넘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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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08-28
5
낙산 구간
낙산 구간은 혜화문에서 낙산을 지나 흥인지문까지 2.1㎞에 이르는 구간이에요. 낙산은 생긴 모양이 낙타 등처럼 생겨서 낙타산 또는 타락산이라고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 이후 낙산으로 이름이 굳어졌어요. 경사가 완만해서 산책하듯 걷기 좋아요.흥인지문 옆 각자성석(서울 종로구)서울특별시청 문화본부 한양도성도감성을 쌓을 때 글자를 새겨 넣은 돌을 각자성석(刻字城石)이라고 해요. 한양도성 전체 구간 중에서 흥인지문 공원 옆에 가장 많이 있어요. 태조와 세종 때의 각자성석에는 한양 도성의 구간 이름과 해당 구간을 담당한 군현(마을)의 이름이 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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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8-28
4
흥인지문 구간
흥인지문 구간은 흥인지문에서 광희문을 지나 장충체육관까지 2.1㎞에 이르는 구간이에요. 흥인지문은 한양도성의 동대문이에요. 현재의 흥인지문은 고종 때인 1869년에 다시 지은 것이에요. 조선 후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를 받아 보물 제1호로 지정되었어요. 조선 시대 한양의 지세는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았어요. 그래서 동쪽 지역에 해당하는 흥인지문 방향이 군사적으로는 가장 약했다고 해요. 그래서 다른 성문과 달리 흥인지문 바깥쪽으로 옹성을 하나 더 쌓았어요.흥인지문(서울 종로구)문화재청광희문은 한양도성의 동남문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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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08-28
3
남산 구간
남산 구간은 장충체육관부터 백범광장까지 4.2㎞에 이르는 구간이에요. 목멱산으로도 불린 남산은 안산(풍수지리상 집 터 맞은편에 있는 산)으로 여겨졌어요. 그리고 남산 정상에는 봉수대를 설치하였어요. 봉수대는 국경 지방의 상황이나 외적의 동태를 살필 수 있게 한 것인데, 남산의 봉수대는 조선 시대 국경 지역에서 올리는 봉수의 종착지였어요.남산 봉수대(서울 중구)국사편찬위원회봉수란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변방의 정세를 알리는 신호를 말해요. 평상시에는 1개의 봉수를 올렸으며, 전쟁이나 반란 등 위급한 정도에 따라 2개부터 5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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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8-28
2
숭례문 구간
숭례문 구간은 백범 광장에서 숭례문을 지나 돈의문 터까지 1.8㎞에 이르는 구간이에요. 한양도성의 정문인 숭례문은 사람과 물자의 통행이 가장 많았어요. 개항 이후에는 숭례문 근처의 정동에 외국 공사관과 외교관의 집,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와 학교들이 들어섰어요.한편, 1899년 전차가 개통된 이후부터 숭례문은 이전처럼 문의 구실을 제대로 못하게 되었어요. 더욱이 1907년에는 교통 불편을 이유로 숭례문의 양쪽 성벽이 철거되었고, 이후 숭례문 주변에 대형 건축물이 들어섰어요. 이 때문에 숭례문 주변의 옛 성벽은 거의 흔적이 없어졌다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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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한양도성박물관
한양도성 순성길 중 낙산 구간에 한양도성박물관이 자리잡고 있어요. 2014년에 개관한 한양도성박물관은 조선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양도성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어요. 내부에는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도성 정보센터와 학습실을 갖추고 있지요.전시실에 들어가면 조선의 한양 천도와 수도 건설, 한양도성의 축조까지의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를 볼 수 있어요. 한양도성의 성문을 열고 닫는 시간, 도성의 관리 방법 등을 비롯해 당시 한양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들도 관람할 수 있어요. 또한 일제 강점기 일제의 파괴와 광복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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