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서에 공약 3장을 덧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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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선언서 작성은 최남선이 맡기로 하였어요. 한용운은 최남선이 독립운동에 직접 나서지도 않는다고 반대하였지만, 이미 최린이 부탁을 해 놓은 터라 어쩔 수 없었어요.

3·1 독립 선언서
유관순기념관
독립 선언서가 최남선에 의해 완성되고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은밀하게 한용운에게 전해졌어요. 하지만 최남선이 쓴 독립 선언서가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전국의 백성들이 소리 높여 읽기에는 매우 길고 어려웠어요.
“하지만 만해, 지금은 시간이 없소. 바로 인쇄를 해야 하오.”
“그럼 선언서 맨 끝에다 공약 3장이라는 걸 덧붙이면 어떻겠소?”
이리하여 한용운은 독립 선언서에 ‘공약 3장’을 써서 덧붙였어요.
“하나. 오늘 우리들의 이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 번영을 찾는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고 … 하나. 마지막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한 순간에 다다를 때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
‘공약 3장’은 독립 선언서에 비해 간결하고 힘 있는 문장이었어요. 함께 있던 최린과 이승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였어요.
“명문장이오! 우리의 비폭력 원칙과 독립 의지가 잘 담겨 있소.”
1919년 2월 24일 최린의 집에서 이들은 모임을 했어요. 그들은 토론 끝에 거사 날짜를 3월 1일로 정하였어요. 3월 1일이라는 숫자는 천도교․기독교․불교의 3개 단체가 합쳐서 하나로 된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어요.
‘독립 선언서’에 서명할 사람들도 정했어요. 손병희를 비롯한 천도교를 대표하는 사람들, 이승훈을 비롯한 기독교를 대표하는 사람들, 한용운을 비롯한 불교를 대표하는 사람들 모두 33명이었어요. 그리고 서명자 순서도 정하였어요. 토론 끝에 총대표자 손병희를 제일 먼저 쓰고 이어 각 종교 단체 대표들을 쓴 다음 나머지 29명은 가나다순으로 쓰기로 하였어요.

독립 선언을 준비하는 한용운
독립 선언서 인쇄는 오세창이 총책임을 맡았어요. 미리 인쇄해 놓으면 들킬 염려가 있어 2월 27일 비밀리에 진행되었어요. 창문을 두꺼운 담요로 가리고 숨을 죽인 채 2만 여장을 찍어 내었어요.
거사 전 2월 28일 민족 대표자들은 독립 선언서에 서명하기 위해 손병희 집에 은밀히 모였어요. 그때 한 사람이 말했어요.
“내일 아무래도 학생들이 탑골 공원에서 독립 선언식이 열릴 것을 알고 모여들 것 같은데 어쩌면 좋겠습니까?”
“그럼 장소를 옮겨 근처 음식점이 태화관에 모여 합시다.
한용운은 못마땅했지만, 많은 사람이 태화관에 찬성하였어요. 이어 민족 대표들은 독립 선언식의 순서를 정하였어요. 아무래도 긴 독립 선언서를 다 읽을 시간이 없을 듯하였어요. 이에 한용운이 대표로 간단히 선언서 요지를 설명하고 만세만 부르도록 하는 것으로 정하였어요.
“그 일은 만해가 맡는 게 좋겠소. 누구보다 웅변과 연설에 뛰어나고 공약 3장도 손수 덧붙였으니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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