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 정치의 문제점을 바로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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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왕이 될 무렵 조선은 안동 김씨 가문의 세도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었어요. 그들은 주요 관직을 독차지하고 비변사에 모여 국가의 중요한 일을 의논했어요. 그러다 보니 조선 초에 만들어진 최고 행정 기구인 의정부는 있으나마나하게 되었어요. 흥선 대원군은 비변사를 약화시키고 의정부의 역할을 되살려 이 문제를 해결했어요.
세도 정치 시기에는 돈을 받고 관직을 팔기도 했어요. 그러니 안동 김씨 집은 관직에 나가고 싶은 사람들로 늘 붐볐지요. 돈을 주고 관직을 사서 지방관이 된 사람들이 백성들을 위해 일했을까요? 그들은 자신이 관직에 나가는데 쓴 돈을 되찾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백성들에게 온갖 방법을 써서 세금을 더 많이 거두어들였어요. 당연히 백성들의 삶은 고달팠어요. 고종이 왕이 되기 1년 전에는 전국적으로 농민 봉기가 일어날 정도였어요.
권력을 잡은 흥선 대원군은 세도 정치로 나타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폈어요.
“이제부터 관아에서 곡식을 빌리지 않고 우리 마을에서 스스로 곡식을 빌려주고 갚는 제도가 생긴다는군.”
“그렇게 되면 탐관오리가 더는 우리를 괴롭지 않겠군.”
고종이 왕이 된 지 3년 되는 해인 1866년 흥선 대원군은 환곡의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했어요. 환곡은 원래 봄에 곡식이 부족할 때 백성들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약간의 이자를 붙여서 갚게 했던 좋은 제도였어요. 그런데 세도 정치 시기 탐관오리들이 많은 이자를 붙이거나 필요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억지로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방법 등을 써서 환곡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했어요. 당연히 백성들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죠. 이런 환곡을 각 마을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하게 해서 지방관이 간섭할 수 없도록 했어요.
흥선 대원군은 호포제도 실시했어요. 호포제는 군대에 가는 대신 내던 군포를 농민들 외에도 양반도 내게 한 제도예요. 양반이 세금을 내면서 백성들의 부담은 줄어들었어요.
서원도 47개만 남기고 모두 없앴어요. 서원은 유교를 가르치고 훌륭한 유학자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에요. 나라에서는 서원을 중요하게 여겨 많은 서원에 땅과 노비, 책 등을 주었어요. 또 세금도 내지 않도록 혜택을 주었어요. 그러나 서원은 여러 가지 혜택을 입었으면서도 제사 지내는데 필요한 비용을 백성들에게 내게 하는 등 큰 피해를 주었어요. 서원의 문제점이 심각해지자 대부분 서원을 폐지했던 거예요.
흥선 대원군이 한 여러 개혁은 많은 백성에게 환영을 받았어요. 그런데 흥선 대원군이 한 일 중 백성들의 원망을 받은 일도 있어요. 바로 경복궁을 다시 짓는 것이었죠.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은 흥선 대원군이 권력을 잡을 무렵까지 다시 만들어지지 못했어요. 흥선 대원군은 추락한 왕실의 위엄을 살리기 위해 경복궁을 다시 짓기로 했어요.
경복궁을 다시 짓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왜냐구요? 경복궁의 규모가 워낙 클 뿐만 아니라 경복궁을 짓기 시작한 지 1년 만에 불이 나기도 했거든요.

경복궁을 다시 짓는 데 동원된 백성
그러다 보니 경복궁을 짓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어요.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당시 사용되던 상평통보의 100배만큼 가치가 있는 돈인 당백전을 마구 찍어냈어요. 그러다 보니 물가가 많이 올랐어요. 물가가 오르면 백성들의 생활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죠? 게다가 백성을 강제로 동원해 일을 시키기까지 했어요. 그러니 백성들의 환영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죠.

상평통보와 당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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