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 대원군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고 척화비를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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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 대원군이 권력을 잡을 무렵 청에서 일어난 두 번째 아편전쟁은 조선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어요.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일으키고 청의 수도인 베이징을 쳐들어갔거든요. 전쟁에서 진 청은 이들과 조약을 맺고 이전에 열었던 항구 이외에 더 많은 항구를 열 수밖에 없었어요.


흥선 대원군은 이런 서양 세력과 무역을 하지 않고 또 외교 관계도 맺지 않는 정책을 펼쳤어요. 그들과 교류하는 것이 조선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러던 중 1866년 프랑스가 군함을 이끌고 강화도에 침략해 왔어요. 병인양요가 일어난 것이죠. 프랑스는 조선이 프랑스 선교사 9명과 천주교 신자 8,000여 명을 죽인 병인박해를 구실삼아 침략했어요. 프랑스는 한 때 강화도를 점령하기도 했지만 정족산성 전투에서 패배한 후 물러났어요.

1871년에는 미국의 침략에 맞서 싸웠어요. 이를 신미양요라고 해요. 미국은 1866년에 일어난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조선을 침략했어요.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미국의 상선인 제너럴 셔먼호가 평양에서 불태워진 일이에요. 미국도 프랑스처럼 강화도로 쳐들어왔어요. 강화도는 한양으로 들어오는 중요한 길목이었거든요. 미국은 대포를 쏘아 강화도의 초지진을 파괴하고 점령했어요. 그 후 어재연과 600여 명의 군인이 지키던 광성보도 차지했어요.


미국은 군함을 보내 강화도를 점령하면 조선을 개항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일본에 함대를 보내 개항시킨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흥선 대원군은 미국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어요. 미국은 할 수 없이 강화도에서 군대를 철수 했어요. 흥선 대원군은 프랑스와 미국의 침략을 막아내면서 서양 세력과 교류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뜻을 밝힌 척화비를 전국 곳곳에 세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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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화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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