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서 물러난 흥선 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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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가 끝난 후 2년 뒤인 1873년 최익현이 상소를 올렸어요. 그 상소는 흥선 대원군이 더는 정치에 간섭하지 말라는 내용이었어요.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에 불만을 가진 지방 양반과 유생들의 반발도 계속되었어요.
고종도 나라를 직접 다스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마침내 흥선 대원군은 권력에서 물러나고 고종이 직접 정치를 하게 되었어요. 이후 조선의 권력은 왕비의 집안사람들인 민씨 세력이 차지했어요. 조선 정부는 1876년에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고 항구를 열었어요. 또한 서양의 근대적 문물을 받아들이는 개화정책을 펼치기도 했고요.
1882년 정부의 개화 정책에 불만을 품은 구식 군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키면서 흥선 대원군은 다시 권력을 잡기도 했어요. 그러나 오래가지는 못했어요. 청의 군대가 들어와 임오군란을 진압하면서 오히려 청에 끌려가 살기도 했어요. 청에서 돌아온 후에도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1898년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요.
흥선 대원군은 왕이 아니면서도 왕 이상의 권력을 누린,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에요. 세도 정치의 문제점을 바로 잡고 왕권을 강화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폈죠. 또 두 차례의 양요에서 승리를 거두며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어요. 흥선 대원군의 여러 가지 개혁 정책과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은 조선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청에 끌려갔을 때의 흥선 대원군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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