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 특사 활동에 기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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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만국평화회의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고종은 특사를 파견하여 고종의 정식 허가 없이 을사늑약이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이루진 것임을 폭로하고자 하였어요.
“대한 제국의 억울함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그런데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그 먼 곳까지 어떻게 갈 수 있을까?”
고종은 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헤이그 특사로 임명하였어요. 그리고 은밀히 또 한 명을 따로 불렀어요. 헐버트였어요.
“미국인 헐버트는 시종 우리의 대한 정책을 방해하는 자이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한국을 위해 반드시 무언가 할 것이다.”
당시 일제는 헐버트가 헤이그에 반드시 갈 것이라 믿고 예의 주시하고 있었어요. 헐버트는 네덜란드로 바로 가지 않고 스위스, 프랑스 등을 방문하였어요. 헐버트가 일제의 시선을 끄는 사이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 등은 헤이그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어요.
헤이그 특사들이 무사히 네덜란드까지 갈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제의 시선을 끌어준 헐버트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헤이그 특사와 헐버트 박사
국사편찬위원회, 국가보훈처
사실 헐버트는 고종의 특별한 밀사였어요. 고종은 헐버트에게 특사 임명장과 함께 친서를 맡겼어요. 당시 대한 제국과 수교를 맺었던 러시아, 영국, 프랑스, 미국 등에 고종 황제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었어요. 국제 사회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고종의 치밀한 외교 전략이었던 셈이지요.
일본의 방해로 이상설, 이준, 이위종 선생은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하지 못했어요. 그러자 헐버트는 「만국평화회의보」 편집장이며 우리나라 특사들을 지지하고 있었던 스테드 씨를 만나 평화 클럽에서 대한 제국의 억울함을 알리는 연설을 하였어요.
결국 헐버트는 그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일제에 발각되고 말았어요. 그는 끝끝내 쫓겨나듯 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그의 독립 운동은 미국에서도 계속 이어졌어요.
나는 언제나 한국민을 지지할 것이다.
그들은 모든 권리와 재산을 빼앗겼다.
나는 죽을 때까지 그들을 대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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