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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 헐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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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 헐버트
헐버트, 대한의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
조선과 처음 만나다
육영공원의 교사가 되다
한글의 매력에 빠지다
한글로 쓰인 교과서를 만들다
고종 황제의 특명을 받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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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 대한의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서울 마포구)“소문 들었나? 고종 황제의 밀사가 푸른 눈의 외국인이라 하던데.”“그렇지 않아도 일본이 그 외국인을 더 눈엣가시처럼 여긴다는군.”“그나저나 고종 황제 폐하께서 내리신 특명이 잘 되었어야 하는데…”일본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의 주권을 빼앗고자 하는 때였어요. 고종은 이를 막기 위해 비밀리 특사를 파견하고자 하였지요. 그런데 하필 고종은 왜 외국인에게 이토록 중요한 일을 맡겼을까요? 이 외국인이 조선에 온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는 어떤 일을 하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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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08-31
7
조선과 처음 만나다
1886년 7월 4일 한 척의 배가 조선의 제물포항에 도착했어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한 지 한 달여 만이었어요. 이 배에서 푸른 눈의 한 외국인이 내렸어요. 그가 바로 호머 헐버트였어요. 23살 청년 헐버트는 이렇게 조선에 첫발을 내디뎠어요.‘아, 여기가 조선이라는 나라구나! 내가 잘할 수 있을까?’미국 동북부 출신의 헐버트는 엄격한 교육자 집안에서 자랐어요.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어요.이때 조선 정부는 미국 정부에 교사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어요. ‘조선’은 머나먼 아시아의 동쪽 작은 나라였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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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8-31
6
육영공원의 교사가 되다
헐버트는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어요. 육영공원은 1882년 조선이 미국과 조약을 맺은 이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국립학교였어요.헐버트가 육영공원 학생들과 처음 인사하는 어느 날이었어요. 학생들은 긴장한 듯 보였고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무거웠어요. 이내 헐버트는 용기를 내 서투른 한국말로 인사를 하였어요.“아~뇽 하세요. 나는 미쿡에서 온 헐버트임니다.”그 순간 모두가 우하하 하며 웃음을 터뜨렸어요. 분위기는 금세 부드러워졌지요.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어요.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헐버트헐버트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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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08-31
5
한글의 매력에 빠지다
헐버트는 조선에 오자마자 열정적으로 한글을 공부하였어요. 한글을 배우기 위해 자비로 한글 선생을 따로 고용할 정도였어요. 그는 점점 한글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급기야 한글 공부 3년 만에 한글 교과서를 저술할 정도의 수준까지 되었어요.헐버트는 어느 한글학자 못지않게 한글이 과학적이고 간편하며 독창적으로 만들어진 음성언어라는 점을 발견하였어요.“한글은 영어와 달리 발음기호가 없고, 자음과 모음의 조합이 간편하여 쓰기와 말하기가 세계 어느 언어도 따라 올 수 없을 만큼 쉽다.”『사민필지』 서문에서 헐버트는 한글의 우수성에 비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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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08-31
4
한글로 쓰인 교과서를 만들다
헐버트는 학생들에게 교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한글의 위대함과 학생들의 지식 함양을 위해 제대로 된 책을 쓰기로 했어요. 1889년 조선에 온 지 3년 만에 그는 한글로 쓴 교과서를 만들었어요. 책 이름은 ‘선비와 백성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뜻에서 『사민필지』라 하였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교과서였어요.헐버트는 『사민필지』를 통하여 세계의 다양한 환경과 정치, 학문 등을 소개하고 앞으로 조선이 나아가야 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어요.사민필지국립한글박물관『사민필지』는 각 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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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08-31
3
고종 황제의 특명을 받들다
1904년 대한 제국은 일본과 우리나라의 독립과 안녕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조약을 맺었어요. 그러나 일본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뿐더러 군대도 철수 하지 않았어요. 그것은 러일전쟁의 원만한 수행을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았지요.1905년 일본은 예상을 뒤엎고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자 노골적으로 대한 제국의 주권을 위협하였어요. 급기야 대한 제국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우리나라의 모든 외교권을 빼앗고자 하였지요.고종은 이 심각한 나라의 위기를 어떻게 하면 벗어날지 고민에 빠졌어요. 그러다 1882년 우리나라가 미국과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이 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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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08-31
2
헤이그 특사 활동에 기여하다
1907년 만국평화회의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고종은 특사를 파견하여 고종의 정식 허가 없이 을사늑약이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이루진 것임을 폭로하고자 하였어요.“대한 제국의 억울함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그런데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그 먼 곳까지 어떻게 갈 수 있을까?”고종은 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헤이그 특사로 임명하였어요. 그리고 은밀히 또 한 명을 따로 불렀어요. 헐버트였어요.“미국인 헐버트는 시종 우리의 대한 정책을 방해하는 자이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한국을 위해 반드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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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8-31
1
다시 코리아 땅을 밟다
해방 후 헐버트는 대한민국에 초대되었어요. 일본의 박해로 한반도를 떠난 지 40년 만의 일이에요. 그는 긴 여정을 견딜 수 있는 몸은 아니었지만 다시 조선에 갈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어요.하지만 반가운 마음도 잠시 한국에 돌아온 1주일 뒤인 1949년 8월 5일, 헐버트는 한평생을 통해 그토록 사랑했던 한국 땅에서 눈을 감았어요. 그는 평소 자신이 원한대로 미국 대신 한국에 묻혔어요.“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장례식은 외국인 최초의 사회장으로 대통령을 비롯한 사회 단체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장엄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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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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