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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 농민 봉기의 물꼬를 트다
활개 치는 세도 정치, 흔들리는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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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는 백성, 이들을 이끈 홍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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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 농민 봉기의 물꼬를 트다
순무영진도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조정에서는 우리 평안도 백성들을 쓸모없는 썩은 흙 취급을 하오.”“맞소! 오죽하면 세도가의 노비조차 우리들을 보면 천한 노비 대하듯 하겠소.”“이는 간신배가 임금을 겁박하여 나라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입니다. 군대를 일으켜 나라를 다시 바로 세웁시다.”조선 후기 평안도에 살던 홍경래는 백성들을 모아 봉기를 했어요. 이들이 조선 조정에 맞서 봉기를 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홍경래는 봉기를 통해 어떤 조선을 만들고자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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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08-30
5
활개 치는 세도 정치, 흔들리는 조선
1800년 정조가 죽고 순조가 왕이 되었어요. 힘이 약한 순조를 대신해 왕비의 아버지 김조순이 나라의 중요한 결정을 하였어요. 김조순이 조정의 권력을 장악하자 중요한 자리는 모두 안동 김씨 가문 사람들로 채워졌어요.안동 김씨 가문이 권력을 잡자 조선은 위로부터 나라의 기틀이 흔들렸어요. 이들은 관리 임명권을 독차지하고 돈을 받고 관직을 팔았어요. 안동 김씨 가문의 권력자에게 1만 냥을 바치면 지방의 관리가 될 수 있었고, 10만 냥이면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조정의 관리가 될 수도 있었어요.더 큰 문제는 돈을 바치고 관리가 된 탐관오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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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08-30
4
차별받는 평안도 백성들
홍경래가 살았던 평안도 지역은 청과 국경을 서로 맞대고 있어 군사적, 외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에요. 이 지역은 국방비도 많이 들어가고, 조선을 찾은 청의 사신을 접대하는 데에도 많은 비용이 들었지요. 그래서 평안도는 한성으로 세금을 보내지 않고 예산을 독자적으로 쓸 수 있어 나름 재정도 넉넉했어요. 또한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광업과 수공업이 발달했고, 특히 청과의 무역을 통해 상업도 발달했어요.그러나 평안도 지역은 고려시대부터 외적(거란, 몽골, 여진)의 침입이 잦았던 변방지역이었고, 벼농사를 비롯한 농업이 한반도 남쪽 지역에 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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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08-30
3
분노하는 백성, 이들을 이끈 홍경래
과거 시험에서 떨어진 후 홍경래는 10년 동안 집을 떠나 전국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당시 많은 백성들이 살아남기 위해 고향을 떠나 평안도에 있던 광산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광산으로 내몰린 농민들, 평안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던 사람들, 탐관오리의 횡포에 많은 재산을 빼앗긴 상인들. 이들 마음속에는 세도 정치를 이끌던 안동 김씨 가문과 탐관오리들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어요. 이들은 홍경래와 함께 무너져 가는 조선과 고통 받는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뜻을 함께할 것을 맹세했어요.1809년, 100년 이래 최악의 가뭄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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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08-30
2
거칠 것이 없는 봉기군
출정식을 마친 홍경래는 곧바로 군대를 이끌고 주변 고을의 관군을 공격했어요. 그리고 이웃 고을을 차례로 공격해 10일 만에 청천강 이북의 7개 고을을 점령했어요.홍경래는 성을 차지할 때마다 감옥의 문을 열어 억울하게 갇힌 백성들을 풀어주고, 관아의 창고를 열어 가뭄에 지친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어요. 또 백성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봉기군을 엄하게 이끌었어요.홍경래의 봉기군이 점령한 지역과 관군의 진격로홍경래가 백성들과 봉기하여 청천강 이북 지역을 단숨에 차지하자 조정은 난리가 났어요. 순조는 신하들을 모아 긴급히 회의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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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08-30
1
봉기군의 최후
조정에서는 많은 수의 관군을 모아 평안도로 보냈어요. 여러 고을을 차지한 홍경래의 봉기군은 관군을 기다리며 송림 평야에서 머물고 있었어요. 이곳에서 관군과 피할 수 없는 전투가 벌어졌지요. 전투 초반에는 봉기군이 이기는 듯했어요. 그러나 관군이 봉기군의 후방을 공격하면서 상황이 역전되었어요. 수백의 봉기군이 목숨을 잃었어요. 관군에게 첫 패배를 당한 것이에요.어쩔 수 없이 홍경래는 봉기군을 이끌고 미리 차지하고 있던 정주성으로 들어갔어요. 정주성을 포위한 관군은 봉기군에게 빼앗겼던 고을들을 하나씩 되찾아갔어요. 이 와중에 죄 없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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