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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민주 항쟁 유적
6월 민주 항쟁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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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 날개
6월 민주 항쟁 유적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낸 6월 민주 항쟁
헌법을 고치고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게 되다
한 대학생이 억울하게 죽은 곳,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민주헌법을 만들기 위한 단체가 만들어진 향린교회
민주항쟁의 진원지 성공회대성당
6일간 시위가 벌어졌던 명동성당
전국 각지에서 이루어진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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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민주 항쟁 유적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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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낸 6월 민주 항쟁
명동성당(서울 중구)“이제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게 되었으니 오늘은 찻값을 받지 않겠습니다.”“와!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1987년 서울의 한 카페에서 손님들은 차를 무료로 마실 수 있었어요. 정부가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을 바꾼다고 발표했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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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09-03
7
헌법을 고치고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게 되다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게 된 것은 6월 민주 항쟁의 결과에요. 요즘은 국민이 직접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요. 하지만 1972년~1986년까지 우리나라 국민은 대통령을 직접 뽑지 못했어요. 독재 정치를 이어가고 싶었던 사람들 때문이지요.가장 먼저 대통령을 직접 뽑지 못하게 만든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에요. 그는 1972년 헌법(유신헌법)을 바꾸어 대통령의 권한을 크게 키우고 대통령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뽑도록 했어요. 이에 국민들은 대통령을 직접 뽑고, 법과 현실에서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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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09-03
6
한 대학생이 억울하게 죽은 곳,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서울 남영동에 있는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한 대학생이 끌려갔어요. 그 대학생은 10시간 동안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다가 끝내 죽음을 맞이했어요. 이 대학생은 서울대학교에 다니던 박종철이에요.구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내부(서울 용산구)대공분실은 원래 간첩을 수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에요. 그런데 간첩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대학생이 잡혀가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니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어요.더군다나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대학생이 ‘억’하고 죽었다”라고 거짓말을 했어요.“고문으로 사람이 죽는 일이 다시 일어나선 안 됩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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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09-03
5
민주헌법을 만들기 위한 단체가 만들어진 향린교회
“행사장은 향린교회입니다. 8시까지 각자 흩어졌다고 모입시다.”5월 27일 새벽 6시 종로에 하나둘씩 모인 사람들이 비밀스럽게 행사장소가 적힌 쪽지를 받았어요. 어떤 행사였나구요? 헌법을 고쳐 대통령을 직접 뽑기 위해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만드는 것이었어요.이렇게 사람들이 비밀리에 모인 것은 혹시라도 경찰에 알려지면 일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장소는 종로에서 조금 떨어진 ‘향린교회’였어요. 이 교회는 서울의 명동에 있어요.향린교회와 6월 민주 항쟁 기념비(서울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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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09-03
4
민주항쟁의 진원지 성공회대성당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6월 10일 성공회 대성당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오고 42번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고문을 추방하고 4·13 호헌 조치의 무효를 요구하는 국민대회가 열린 것이에요.이날 잠실체육관에서는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노태우를 지명하는 대회가 열리고 있었어요. 여기에 대항하여 서울 곳곳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집회를 열고 시위를 벌였어요.6·10 국민대회가 열린 것이죠. 성공회대성당 뒤뜰에 가면 이날을 기념한 표지석이 하나 있어요. 표지석에는 ‘유월민주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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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09-03
3
6일간 시위가 벌어졌던 명동성당
“경찰을 피해 명동성당으로 갑시다.”6월 10일 을지로와 명동 일대에서 시위를 하던 학생과 시민은 경찰을 피해 경찰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명동성당으로 들어갔어요. 명동성당은 박종철 학생이 고문으로 죽은 후 국민이 모여 추모행사를 한 곳이기도 했어요.명동 성당에 모인 학생과 시민들은 경찰의 진압에 맞서 6일간 농성을 벌였어요.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서울 시내 대학생들이 속속 명동으로 모여들었고, 일반 시민들인 ‘넥타이부대’가 명동일대를 뒤덮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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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09-03
2
전국 각지에서 이루어진 집회
6월 민주 항쟁은 6월 10일 집회 이후 계속 이어졌어요. 6월 18일에는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경찰의 최루탄 사용에 항의하고 최루탄으로 부상다한 사람들의 회복을 기원하는 최루탄 추방 대회도 개최되었어요. 특히나 6월 26일에는 전국 33개 시군읍에서 180만여 명이 참석하는 ‘민주헌법쟁취 국민평화대행진’대회가 열렸어요. 시위는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6·29 선언’을 할 때까지 계속되었어요.6월 민주 항쟁 당시 시위 모습6·29 선언의 주요 내용은 국민의 인권을 높이고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을 바꾸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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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09-03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계성여고 학생을 만나볼까요?
기자: 안녕하세요? 6월 민주 항쟁 당시 명동성당 옆에 있던 계성여고에 다니셨죠?당시 여학생: 예, 지금도 당시 일이 생생하게 떠올라요.기자: 당시 성당에서 농성을 벌이던 사람들에게 도시락을 준 까닭은 무엇인가요?당시 여학생: 그분들이 배가 고프실 것 같아서요.기자: 어머니께서 정성껏 싸주신 도시락을 양보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텐데요.당시 여학생: 맞아요. 그래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신 분들이기에 여고생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6월 민주 항쟁 관련 유적지를 살펴보니 어떤 생각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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