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도가 박해를 받은 병인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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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고종이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그의 아버지 흥선 대원군이 권력을 차지하였어요. 흥선 대원군은 왕권 강화를 위한 여러 개혁을 추진하는 한편 서양 세력과의 무역을 금지시키는 정책을 펼쳤어요.
그런데 당시 청과 러시아가 조약을 체결하면서 조선이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게 되는 일이 벌어졌어요. 이에 조선은 서양 세력인 러시아가 조선을 침략해 올지도 모른다는 경계심을 가졌어요. 흥선 대원군은 혹시나 있을 러시아의 침략에 대비해 프랑스를 이용하고자 했어요.
그래서 프랑스 선교사(신부)들을 통해 프랑스 정부를 움직이려고 했어요. 하지만 선교사들이 이에 소극적으로 나서자 흥선 대원군은 크게 실망했어요.
때마침 국내에서 천주교를 반대하는 기운이 높아지자, 흥선 대원군은 1866년 9명의 프랑스 선교사(신부)와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했어요. 이 사건을 병인박해라고 해요. 병인년에 일어난 박해라는 뜻이지요. 박해가 어떤 뜻이냐고요? 박해는 약한 처지의 개인이나 세력을 억누르거나 괴롭혀 해를 끼치는 행위를 의미해요.
병인박해를 구실로 프랑스는 1866년 9월 강화도에 군대를 보냈어요. 이 사건이 바로 병인양요이지요. 병인년(1866년)에 서양 세력이 일으킨 소요(난동)라는 뜻이에요.
병인박해 당시 흥선 대원군은 양화진과 맞닿은 잠두봉에서 천주교 신자들의 목을 베는 형벌을 내렸어요.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던 잠두봉은 극형으로 얼룩진 비극적인 장소가 되고 말았지요.
당시 조선 정부는 프랑스와 전투를 벌인 후 천주교 신자들을 주로 잠두봉에서 처형하였어요. 그 이유는 프랑스 함대가 거슬러 올라왔던 한강의 양화진에서 신자들을 처형함으로써, 프랑스 함대의 조선 침략 책임을 신자들에게 돌리고 그 본보기를 보이려 했기 때문이죠.
누에고치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잠두봉은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당한 이후 절두산이라고 불렸어요. 머리를 자른 산이라는 뜻이지요. 100년이 지난 1966년, 절두산은 한국 천주교 순교 성지로 지정되어 성당과 박물관, 추모 공원이 세워졌어요.

절두산 순교 성지
현대사디지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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