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두산 순교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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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작은 이야기: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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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소문 밖 네거리는 조선 시대 공식 처형장이 있던 곳이에요. 당시 큰 범죄를 저지르거나가 반역을 꾀한 죄인들은 사형을 당했는데, 대부분의 사형수들은 주로 서소문 밖 네거리에 있는 처형장에서 사형이 집행되었어요.


서소문 밖 처형장은 현재 서울 서소문로와 의주로가 교차하는 서소문 공원 인근에 있었어요. 수도 한성의 문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줄 수 있는 효과도 있었고, 최종 판결을 내리는 관청인 형조나 의금부와도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여요.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면서 이곳은 첫 순교지이자 가장 많은 교인들이 순교한 곳이었어요. 그들은 포도청으로 끌려가 1차로 문초(죄인을 심문함)를 당하거나 형벌을 받은 뒤 형조나 의금부로 끌려가서 판결을 받았어요. 그리고 나서 감옥에 갇혔다가 감옥 관리들에 의해 끌려 나와 이곳 서소문 밖 네거리 처형장에서 목숨을 잃게 되었지요. 현재 이곳에는 당시 처형장에서 사용한 칼을 씼었다고 전하는 우물도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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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 성지에 우물




1801년 신유박해 이래 이곳에서 순교한 신자 중 확인된 사람들만 100명이 넘는다고 해요. 이 가운데 44명이 1984년에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 행사를 위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인정받게 되었지요.


한편 서소문 밖 순교 성지 근처에는 중림동 약현성당(옛 약현성당)이 있어요. 이 성당은 1898년에 완공된 명동성당(옛 종현성당)보다 6년 앞선 1892년 한국교회 최초의 서양식 벽돌 건축물로 완공되었어요. 한편 2019년에 서소문 밖 순교 성지에는 2019년부터 박물관이 개관되어 여러 천주교 유물들을 볼 수 있어요.


이처럼 한국의 천주교는 전래 이후 여러 차례 박해를 받았으며, 이와 관련된 유적이 전국 곳곳에 남아 있어요. 여러분들도 천주교를 비롯해 여러 종교와 관련된 문화유산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얼마나 있는지 한 번 살펴보세요. 아마 여러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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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 성지에 있는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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